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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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라이카, 십수년이 지나 다시 만난 기념으로 찍었다. M4-P]

‘첫 라이카…재회…인연’

“피울님 M4-P 제가 가지고 있어요.”

L형이 말했다.

“네?”

놀라서 묻는 내게 L형이 상기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피울님이 쓰던 M4-P 제가 가지고 있다구요.”

그러니까 십일년 전 잠시 내가 맡았던 아이가 한손을 더 거쳐서 L형 품에 있었던 것이다. 첫 라이카였다. 녀석을 처음 만나던 날을 잊을 수 없다. 구석구석 청소도 하고(심지어 볼커 홈을 일일이 다 후비며…) 아직 렌즈도 없는 카메라를 밤이 늦도록 가지고 놀았다. 결국 끌어안고 잤더랬다.

“담에 뵐 때 가지고 나갈께요. 보고싶으면 말하세요.”

젠틀한 L형을 만난 건 달포전이었다.

“L형 카메라 가져오셨어요?”

“아~~물론이죠.”

통돼지가 익어가는 식탁에 앉아 녀석을 받아 들었다. 럭셔리한 옷에 긴이치 소프트 버튼 게다가 깔삼한 3세대 50mm 크론을 물고 있다.

“필름 들었어요?”

“아뇨”

서서히 와인딩 레버를 당겼다. 부드럽게 녀석을 장전하고 음미하듯 셔터를 끊었다. 여전히 탱글하고 부드럽다. 세월이 무색하다. 컨디션이 오히려 더 좋아진듯하다. 녀석의 목소리는 ‘틱’ 이 아니라 ‘틱~~~ㅇ’이다. 나는 녀석의 날카로운 금속성 여운을 무척 좋아했다. 빈카메라를 쏘면서 노는 버릇은 녀석과 놀면서 생긴 것이다. 녀석을 돌려주려는 손끝이 떨린다.

카메라는 기록의 도구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서 삶의 기록이 되기도 한다.

by PIU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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