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수리공에 대한 기억


img1436

[2005년 어느날, 흑백사진랩 서울포토, 이날 김성민(사진의 가운데)을 처음만났다.]

지난 여름 어느 날, 집나간 마누라보다 반갑다는 택배아저씨가 오셨다. 올 것도 없는데… 그 사이 내가 또 뭘 질렀나? 받아 보니 박스 값보다 테이프 값이 더 들었겠다 싶다. 구달형님은 뭘 또 이렇게 싸 보내고 그러실까! 지난 미팅 때 잠시 카메라 이야길 했었는데 집에 쓰던 구식 카메라가 어디 쳐박혀 있을지도 모르니 찾아보고 있으면 보내겠노라던 말이 떠올랐다. 두근 반 세근 반 … 알뜰하게도 싸 놓으셨다. 삭아서 레자가 부스러지는 그때 그 시설 그 가방에 카메라와 렌즈 그리고 스트로보와 일어로 된 카메라 메뉴얼까지 박제된 듯 누워 있었다. 유물을 출토하듯 그것들을 다시 세상으로 데려왔다. 꺼내 놓으니 제법 그럴싸하다. 적어도 십수년은 세상밖에 나온적이 없는 물건들이다. 묵은 냄새가 난다. 가방과 스트로보는 도저히 환생이 불가능하겠다. 카메라와 렌즈의 환생을 위해 이쑤시게, 면봉, 알콜, 융, 드라이버 따위를 꺼냈다. 오랜만이다. 이놈들아!

구석구석 닦고 밀고 벗기면서 머릿속에선 복잡한 계산이 시작되었다. 곰팡이가 단체로 놀러와 살림을 차린 렌즈는 비용이 들더라도 고치면 쓸만하겠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이다. 문제는 카메라다. 고쳐야 하나 말아야 하나. 수리금액과 비교해서 가치가 있을 것인지 한참 고민하다가 마음이 시키는데로 하기로 했다. 내 인생에서 ROI따위가 작동한 적이 있기나 했었던가! 오래전 기억을 더듬어 카메라 수리실을 찾아보니 고맙게도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 있다. 오랜만에 맞은 손님이어서 일까. 전화통을 붙들고 놓을 생각을 않는다. 반가웠던 모양이다.

“정샘! 이게 M3 속살이구마. 쥑이지요?”

제법 긴 시간 구식 카메라를 끼고 살면서 지금처럼 수리할 일이 있거나 점검해야 할 일이 생기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2005년 어느 날, 흑백현상소였다. 서울포토는 대구 인근에서 아날로그 사진가들이 찾는 사랑방이었다. 그곳에서 그를 만났을 때 나는 그가 이곳을 찾는 여는 사람들처럼 사진가인줄로만 알았다. 귀태가 흐르는 수더분한 서생의 폼새였다. 쟁이들이 풍기는 특유의 고집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람들이 카메라를 그에게 보여주며 봐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몇 주 후 지하상가 카메라샵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캔커피 하나 사 들고 찾은 그의 작업장은 카메라샵 한 쪽의 낡은 책상이 전부였다. 각지에서 보내온 라이카가 제법 쌓여있었고, 책상 위에는 해체된 카메라부품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정샘! 이게 M3 속살이구마. 쥑이지요?”

“…”

“요즘 물건들은 이런기 없어요. 이기 진짠기라…함 보소. 뿔(프라스틱)이 하나도 없어요. 전부 황동아인교!”

그의 눈은 호기심과 열정으로 가득차 있었고 빛났다.

“김실장! 이거 함 봐 주이소.”

“내삐리소.”

“예?”

좀 보기나 하고 말을 하던지…

“그래도 함 봐 주소.”

“그라지 말고 씩스 사소. 렌즈는 크론 3세대 하마 될끼라~~”

“한미카메라 수리실”

약속한 날에 카메라 수리실을 찾았다. 낡은 건물 맨 꼭대기층에 있는 작업실은 제법 깨끗하게 정돈되었다. 아저씨의 눈매가 제법 날카롭다. 카메라는 며칠 전에 이미 퀵으로 보냈었다. 오늘은 맡겨둔 카메라를 찾으러 온 것이다. 권하는 자리에 앉아 믹스커피 한잔을 받아 들었다. 아저씨의 입에서는 지난 역사가  끊이지 않고 쏟아진다.

“사장님! 언제 이사왔는교? 전에는 저 앞에 있었던 것 같은데…”

“아~~아시네요. 몇년 됬구마.”

“손님은 좀 있습니꺼?”

“이걸로 밥 못 묵은지 한참 돼요. ㅎㅎㅎ. 이래 선생님처럼 찾아주는 사람이 있으마 한번씩 오는기라요.”

“…”

“요새 누가 기계식 카메라 씁니까? 다 디카 쓰는데…”

“디카는 못 고칩니꺼?”

“그것도 카메란데 못 고치겠능교? 카메라 회사에서 다해요. 요새는”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수리장비가 비싸서 우리같은 사람들은 힘들어요. 그라고 요새 카메라 수리가 있능교? 다 바까뿌는데…”

“…”

“우리때는 고장난거 수리하고 필요하면 부품 교환하고 뭐 이랬는데 요새 수리는 수리가 아니지…다 교체지 뭐.”

이제 수리실이 생계를 감당하지 못하지만 쉬는 날이나 하릴없는 저녁이면 버릇처럼 이곳으로 발걸음이 향한다는 아저씨의 얼굴에서 지난 세월의 아쉬움과 그리움이 뚝뚝 떨어진다.

“정선생님! 이거 함 보이소.”

그가 보여준 것은 그 동안 수리한 모든 카메라의 수리메모와 수리방법등이 기록된 메뉴얼 박스였다. 빼곡히 쌓인 메뉴얼을 보는 순간 감동이 몰려온다.

“사장님. 이거 꼭 보관하시고 혹시 보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시면 연락 주이소.”

“와요?”

“이거 정말 중요한 기록이라요. 나중에 박물관에라도 기증하게요.”

자기만의 방법으로 자기만 알아볼 수 있는 방법으로 기록된 문서였다. 이것이 바로 ‘쟁이’의 산물이다.

” 정샘! 김실장 서울 병원 갔단다.”

“사장님. 혹시 김성민이라고 하십니꺼?”

“성민이요. 알지요. 알다마다요. 그놈 내 제자아잉교?”

“그래요? 김실장이 사장님처럼 이래 기록해 놓은 걸 제가 몇번 봤어요. 문득 생각이 나서…”

“아~~그놈 참~~~”

그는 이 양반에게서 도제식으로 카메라 수리를 배웠다. 예전 도제식이란 것이 먹여주면 다행이고 재워주면 고마운 것이었다. 월급이나 보상이란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일년은 바닥 닦고 이년은 책상 닦고 이런 식이었을 것이다. 배움이란 것은 그저 어깨넘어에 있다. 가르쳐 주는 사람도 가르치는 방법을 모르고, 제대로 가르쳐 놓으면 경쟁자가 되는 모순 가운데 있었으니 어쩔 수 없었을 법도 하다. 그도 역시 낮에는 카메라 샵들을 돌아다니면서 수리한 물건을 배달하고 수리할 물건들을 수거해 왔다. 겨우 끼니나 해결하면서 몇 년을 다니다가 이래서는 배울 것이 없겠다 싶어 모두 퇴근한 밤에 수리실에 들어가 개발새발 써놓은 매뉴얼을 보면서 몰래 수리를 배웠다고 했다.

“정샘! 김실장 서울 병원 갔단다.”

“왜요?”

“간암이라카데…”

“아니 어제 저녁에 검진해놨다 카더만.”

소화가 안되고 더부룩 하데서 친구 의사들의 도움을 받아 건강검진을 했던 모양이었다. 이 이야기를 어제 함께 모인 자리에서 그가 말했다. 그는 금방 돌아오겠다면서 서울로 갔다. 봄에 떠난 그는 여름에 돌아왔다. 다시 만났을때, 반쪽이었지만 자건거까지 타고 온 모습을 보고 우리는 안도했다. 내 카메라를 맡아주는 믿음직한 단 한사람의 주치의가 돌아온 줄 알았다. 전국에서 카메라가 몰려들었다. 그러나 그는 몇 대 만져보지 못하고 다시 병원으로 가야했다.

2006년 9월 28일 그가 입원한 병원 복도에서 그의 쾌유를 기원하는 전시회를 열었다. 전국의 사진가들이 그가 수리한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을 병원 복도에 걸었다. 전시준비를 마친 그날 밤, 그는 침대에 누운 채 그의 사진이 걸린 복도를 지나갔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그는 우리곁을 떠났다.

그가 떠난지 십여년이 지난 오늘 문득 고장난 카메라를 수리하면서 사라져가는 많은 것들에 관해서 생각했다. 대체되는 많은 것들 가운데 대체할 수 없는 것, 대체 되어서는 안되는 것들에 관해서 …….

[한 사진기수리공을 위한 특별한 사진전 관련 기사 링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01&aid=0001907947&sid1=001
http://giofox.tistory.com/24
http://durl.me/rsjtx

by PIUREE

카테고리:Essay태그:, , ,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