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꺾어야 맛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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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3 / 제주, 용눈이오름 / Ricoh GR]

‘아직도 살게 있냐?’

할 일이 … 해야 할 것들이 쌓이고 쌓였는데 모니터 앞에 앉으면 다시 시작이다. 조금 전 변기에 걸터 앉아 돌아다닌 그 길을 되밟는 것이다. 되돌이표 악보처럼 돌고 돌고 또 돈다. 상뻘짓이다. 먼저 활동 중인 동호회 커뮤니티를 뒤진다. 떠들기보다 공감해 보자고 다짐한 터라 글을 읽고 리플다는 것을 부지런히 하려고 한다. 리뷰, Equipment 메뉴는 그 가운데서도 빼놓지 않는다. 물론 이 모든 활동은 장터부터 다녀와야 한다. 한 바퀴 다 돌고나면 사이트를 빠져나가기 전에 다시 장터에 들러준다. 덕후족 말석에라도 끼려면 이 정도 센스는 었어야 한다. 이제 단골 샵들을 뒤질 차례다. 그래봐야 한두 번 거래한 것이 전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집이 (비교적) 믿을만한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 있다. 괄호안을 힘 줘서 읽어야 하는 것쯤은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안다. 한 가지를 아주 열심히 하다보면 행간이나 이면을 들여다 보는 눈이 생긴다. 들락거리는 샵들은 클래식 카메라를 전문으로 취급하거나 Leica만을 주로 취급하는 곳들이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나름의 전문성과 신뢰를 획득한 곳들인데 (비교적) 취향에 맞다. 때때로 샵이나 수리점에 대한 네거티브한 평판이 바람결에 실려오곤 하는데 이런 신호는 흐물해진 뉴런을 고추세운다. 현란한 말빨과 분칠한 카메라 사진에 속지 않으려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실패에서 배우지 못하면 참혹하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아직도 살게 있냐?” 장터나 샵을 전전하는 것은 사야할 것이 있다거나 사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지도 않을 거면서 살 것도 없으면서 뭣 하러 장터나 샵에다 전을 깔았냐고? 안목은 가만히 앉아있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에~~또 꽃을 꺾어야 맛은 아니지 않는가! 나는 거기서 논다. 누가 방해하지도 않고 누굴 방해하지도 않는다. 때때로 생경한 카메라가 올라오면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며 안목을 키운다. 이러고 놀다가 영혼의 울림이 그곳으로 인도하면 겸허히 그분을 맞지만 대부분은 단지 보고 즐기는 것에 그친다. 경제적으로나 실용적으로나 규범과 능력범위를 함부로 벗어날 수 없다. 주제파악을 못하면 골로 가는 것은 한순간이다. 사진 찍기엔 이미 너무 많은 카메라를 가졌고 그렇다고 수집가적 취향도 아니다. 단지 카메라를 보고 또 보고, 흥미꺼리가 생기면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내력을 공부하는 재미로 난 충분히 즐겁다. 이곳들은 그러니까 내게 놀이터이자 성소인 셈이다.

덤이 없는 인생은 팍팍해서 재미없다. 애초에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카메라에 관심을 가지다 보면 직업적 성찰과 영감을 얻는다거나 인간의 본능, 유행의 트랜드, 기술의 발전, 경기의 흐름 따위를 읽기도 한다. 제법 쏠쏠한 부가가치다. 예를 들면, 쫄딱 망한 코닥과 선전하고 있는 후지필름의 대조적 흥망성쇠를 보면서 기업의 혁신과 전략적 선택에 관한 교훈과 영감을 얻는다거나, 당장 숨통이 끊어질 것 같던 필름산업이 가늘게 나마 명맥을 유지해가는 생명력이라거나, 디지털 천지에서 아주 소수이긴 할 테지만 필름 유저가 새로이 생긴다거나 하는 것을 관찰하게 되는 것 등이다. 스마트 폰 카메라 성능향상을 보면서 보급형 똑닥이 카메라 시장의 몰락을 예견하거나, 최신형 카메라의 복고적인 디자인을 보면서 현대인의 소외와 향수를 읽는다거나, 장터에 출몰하는 매물들의 흐름을 보면서 아저씨들의 주머니 사정을 읽는다거나 … 이런 공부는 직업적 꺼리와 지구인적 소양을 키우고 넓히는 소중한 재료가 된다. 뻘짓 찬란한 덕후라고 나무라지 말아다오. 이러다 또 때가 되면 심심해 질 것이다. 그때까지 ‘장터 뒤지지 않기’ 따위의 유치찬란한 다짐은 하지 않겠다.

by PIU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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