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삼강주막


rollei35se_091002_003

경상북도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에 있는 조선 말기의 전통주막 ‘삼강주막’

경북 출신이 아니면 지명조차 생소할 듯한 예천군. 그 곳에 있는 삼강 주막에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모 예능프로에서 소개되면서 유명세를 치루고 있는 것인데, 사실 그 전에도 마지막 남은 조선시대 주막이라고 소개한 몇몇 기사를 통해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사진으로 본 주막은 원형 그대로의 낡고 소박한 모습이 아닌 민속촌 처럼 복원된 느낌이 너무 강하였기에 굳이 먼 걸음을 하고 싶진 않았었다.

어느날 길을 걸어 가던 중, 차 한 대가 멈추더니 나를 불렀다. 무엇인가 했더니 내비게이션을 지인에게 빌려서 놀러를 가는데 사용법을 잘 모르겠다며 목적지를 좀 찍어줄 수 있겠냐는 중년 아저씨의 부탁이었다. 그래서 어딜 가시느냐 여쭈었더니 바로 삼강주막을 가고 싶다는 것이 아닌가. 그 분은 스크랩해온 신문기사까지 보여주시며 꽤나 들뜬 표정이었다. 덕분에 잊고 있던 삼강주막이 다시 떠올랐다. ‘나도 한번 가보긴 해야겠네.’ 그렇게 생각만 하고 지내다 추석 전 날 즉흥적으로 잠시 다녀올 수 있었다. (정확히는 전 부치는데 걸리적 거린다며 밖으로 내몰린…)

rollei35se_091002_006

삼강 주막이 위치한 삼강나루터. 낙동강과 그 지류인 내성천, 금천이 만나는 곳이라 삼강(三江) 나루터라 하고 이 강을 건너는 다리가 없던 시절에는 이 곳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 했으니 자연스레 많은 길손들이 머물 수 밖에 없는 목이다. 이들을 대상으로 술과 밥을 파는 주막이 생겨났을거고 입소문도 제법 났을테다. 어찌보면 오늘날의 고속도로 휴게소와도 같은 곳이었을텐데 주막이라고 하면 왠지 우악스럽게 팔뚝을 걷어 붙히고 술상앞에 앉아 막사발에 술잔을 벌컥벌컥 들이키며(입에선 술이 줄줄 새어 흘러야 제격..) ‘주모!! 여기 술 한병 더~!!’ 를 외치는 수염 덥수룩한 사내들과 요염한 눈웃음을 치는 주모가 엉덩이를 살랑거리며 술상을 들고 왔다갔다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사극이나 애니메이션 혹은 전래동화의 삽화라든지 이런 것에서 자연스럽게 각인된 고정관념이리라.)

rollei35se_091002_008

삼강주막에서 가장 오래된 이 건물은 1900년대에 지어진 나름 100년이 넘은 것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34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흑백으로 찍어두니 그럴싸하지만 복원하면서 새로 발라 너무나 색이 선명한 황토벽은 조금 어색하단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처마 밑에는 복원전의 옛 모습들을 찍은 사진들이 걸려있다. 맨 오른 쪽 사진은 마지막 주모 유옥련 할머니가 담배를 태우는 모습이 담겨져 있다.

rollei35se_091002_005

보부상 숙소라며 복원해 둔 건물. 뭐 어쩔 수 없단 생각도 들지만 저 반듯한 목재와 깨끗하고 편편한 황토벽은 크게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궁궐이나 사찰이 아닌 이상 조선시대 서민들의 집, 특히나 주막에 저렇게 각지고 반듯한 목재가 사용되기는 힘들었다. 그리고 아무 곳에나 걸리는 저 현수막.. 비단 여기 뿐이 아니라 사찰이든 길거리든 넘쳐나는 현수막은 정말 시각 공해가 아닐 수 없다.

rollei35se_091002_009

뒤에 있는 컨테이너와 쇠파이프 구조물들이 참 맘에 안들지만 어쨌거나 나름 주막의 풍경이 이러했지 않을까 싶다. 요즘 처럼 세상이 바쁘지도 않고 복잡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물건 팔러 다니는 보부상들이나 먼 길 가는 나그네들이 좋은 풍광을 만나면 ‘하루쯤 늦으면 어떠랴.’하면서 강바람에 취해 술에 취해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냈을 것도 같다. 찾아온 관광객 대부분이 그 때처럼 촌두부와 부침개, 도토리묵 따위를 즐기고 있었다. 가격은 싼 편이었다.

rollei35se_091002_002

뒷간이다. 군시절, 훈련을 나가면 숙영지에 설치하던 간이 화장실 같은 그런 방식이다.

rollei35se_091002_007

강둑에서 바라본 삼강 주막

삼강주막이 방송을 탄 이후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고 있으니 회룡포, 용문사와 함께 예천을 찾으면 둘러볼만한 관광코스가 추가됨으로써 예천군 입장에서도 삼강 주막의 가치는 클 것이다. 하찮아 보이는 이런 곳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문화와 옛 것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는 방증이기도 하지만, 방송이 대중에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다만 예전과 달리 지나는 길손이 자연스레 쉬어가는 주막이 아닌, 일부러 찾아야 하는 관광지로서의 복원된 주막이 얼마나 자생력을 갖추고 오랫동안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단순히 촌두부 한 점에 막걸리 한 사발 마셔보고자 여기까지 찾을 사람들이 언제까지나 이렇게 많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니 말이다.

2009.10.02. 예천

ROLLEI 35SE / KODAK 400TX / Coolscan IVED

카테고리:Drifting, Essay태그:, , , , ,

1개의 댓글

  1. 주모 할머니 계실 때 몇 번 다녀온 곳입니다만
    늘 그렇듯이 거꾸로 개발 덕분에 폭망한 곳이라 안타까움이 큽니다.
    덕분에 좋은 기억을 더듬었습니다.

    Liked by 1명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