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세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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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깡~~~’

담배 타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끼얹듯 달려드는 휘발성 냄새는 남자만의 것이지 싶다. ‘마초적 남성성’ 녀석의 정체성이다. 녀석의 문법은 직설이고 그래서 단호하다. 내숭이나 은유 따위는 1g도 함유하지 않았다. 녀석은 이름 그 자체로 ‘남자’다.

서랍을 뒤적이다 찾은 김에 불을 당겨보기로 했다. 지난 겨울 손난로에 쓴다고 사다 놓은 휘발유가 남아 있었다. 바짝 마른 스폰지를 들어 보니 여분의 돌도 그대로 들어있다. 새돌로 갈고, 똥꼬를 찔러 흥건하게 휘발유를 먹였다. 휘발성 냄새가 방안에 가득하다. 딸깍, 딸깍, 딸깍 … 눈을 감았다.

– 너거들, 내 며칠 남았는지 알제?
– 알고있지 말입니다.
– 뭐 사줄끼고?
– 저번에 말씀하셨지 말입니다.
– 그래 그래 잊아뿌지 마라이~~

전역을 달포쯤 앞둔 어느 날 짬장 녀석이 전역선물로 받고 싶은게 있냐고 물었다. 지포를 사 달라고 했다. 사용하고 있던 것이 있었지만 한 두개쯤 더 있어도 나쁠 것 없다. 녀석들에겐 부담도 적고 뽀대도  나는 것이다. 살면서 누군가에게서 특별히 선물따위를 받아본 기억이 많지 않다. 엎드려 절 받는 꼴이라 궁상스럽지만 그랬거나 말았거나 의미있는 리츄얼이었다.

전역 후 일주일만에 택시 핸들을 잡았다. 맹탕 복학 날짜나 기다리고 앉아 있을 형편이 아니기도 하려니와 주 특기 살려 돈도 좀 벌어 볼 심산이었다. 한 새벽에 교대를 받으면 가장 먼저 하는 ‘의식’이 담배와 지포를 꺼내 미터기 밑에 가지런이 올려두는 일이었다. 지포는 수중에 있는 물건 중에서 뽀대 있는 거의 유일한 물건 이었다. 이제 길게 숨 한번 고르고 시동을 걸면 출동 준비가 끝난다. 낡은 스텔라 택시는 파에톤이 헬리오스의 아들임을 증명하기 위해 하늘을 달리던 태양마차처럼 질주한다. 이 고물차가 이름 그대로 내겐 별이었거나 자유였다.

미어 터지는 길바닥에 갇혀 아침 대목을 홀라당 날리게 생긴 어느 날도 지포는 조바심 내는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다. 조물닥 조물닥 몸에 일부라도 된냥 편하고 익숙하다. 딸깍, 딸깍, 딸깍…그러다보면 마치 주문에라도 걸린 것처럼 조바심이나 두려움 따위가 가라않곤 했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덕분에 인연을 만들 뻔도 했다.

– 오빠! 담배한대 펴도 돼?
– 네
– 오빠 알바하지?
– …

날이 다 샌 흰 새벽이었다. 놀다 왔는지 퇴근 길인지 젊은 여자들이 소복하게 올라탔다. 서울말씨에 향수 범벅을 한 그녀들이 마냥 고맙다.

– 오빠 불 좀 줄래요.
– 여기요.
– 오호~~오빠 라이터 좋은거 쓰네~~
– …
– 지금 해장할만한데 없어요?
– 콩국 좋아합니까?
– 뭐에요? 안 먹어 봤는데…
– 맛있는데 묵어 볼랑교?
– 멀어요?
– 가는길에 있어요.
– 좋아요. 오빠도 같이 가요.
– ㅎㅎㅎ
– 에이 같이 가요. 미터기 켜 놓고 한 그릇 먹고 갑시다.
– …

그 후 그녀들을 몇 번 더 만났다.

어쩌다 보니 훌러덩 이만큼이나 세월을 건너와 버렸다. 손가락 발가락을 다 걸어도 모자라니 오래된 이야기다. 아끼던 물건에 묻은 이야기는 그 세월을 고스란히 이고지고 여기까지 따라왔다. 아직 뜨겁던 시절의 이야기다.

담배를 끊은지 22년 되었다.

by PIU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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