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도깨비시장


2008년 군산

2년만에 다시 군산에 왔다. 전날밤 허름했지만 깔끔했던 여관에서 눈을 붙힌 뒤 새벽에 피곤한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2년전에 찾지 못했던 역전앞(역전 혹은 역앞이 맞는 표현이지만 ‘역전앞’이란 표현이 더 와닿는다) 도깨비 시장을 이번에는 꼭 구경해야겠다.

머리맡에 놓아둔 카메라 가방을 뒤적이며 뭘 들고 나가나 고민하다 Hexar AF 하나만 달랑 꺼내 들었다. Leica Summicron 35mm를 다분히 카피 설계한 우수한 성능의 단렌즈가 고정으로 붙은 이 카메라라면 시장에서 크게 부담스럽지 않으리라. 저울질하던 니콘은 다시 가방에 쑤셔 넣었다.

도깨비 시장

전국의 시장들 중에 도깨비 시장이라는 별명이 붙은 곳이 이 곳 군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의 남대문 시장 수입상가나 대구 교동시장도 그러하며 포항역 앞의 반짝 새벽 시장도 도깨비 시장으로 불린다. 도깨비 방망이로 뚝딱! 하면 물건이 나오듯 신기한 물건들(미군부대에서 나오거나 밀수된 수입품들이었다)이 많아서 혹은 새벽에만 반짝 섰다가 ‘도깨비처럼’ 사라지는 시장의 특성들 탓으로 생긴 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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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는 군산역이 아니라 군산 화물역 앞에 선 도깨비 시장. 앞서 언급했듯이 포항역 앞에도 새벽이면 이렇게 장이 잠시 서지만 이 곳과 비교하기엔 아주 작은 규모로 군산 도깨비 시장은 상설 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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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 앞 너른 도로는 수많은 상인들과 장보러 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내가 시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뜨기 시작하여 사실상 끝물이 가까워지는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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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판에는 싱싱한 해산물들이 무척 많았고 서해안 답게 돌게가 특히 흔했다. 이러니 어느 식당을 가도 돌게장이 밑반찬으로 나왔던 거였다. 촬영만 아니었다면, 다음 일정만 없었다면 돌게를 넉넉히 사들고 돌아와 쪄먹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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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에서 산 물건들을 자전거 안장에 얹고 계신 노신사분. 잘 다려진 깨끗한 셔츠와 바지를 차려입고 장에 나오신 어르신들을 보면 그 분들의 올곧은 성품과 정갈하고 소박한 생활 습관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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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인 8월이라 이른 아침임에도 제법 더워진다. 장을 본 어르신들이 그늘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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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세트장처럼 보였던 오래된 건물. 군산은 왜정 당시 호남의 쌀이 대량으로 반출되는 거점으로 많은 일본인들이 거주하였기에 그들이 살았던 일본식 가옥(적산 가옥)들은 물론 세관 건물,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 등 많은 근대 문화유산이 남아 있는 곳이다. 군산을 제대로 작업해보고 싶은 욕심은 언제나 마음 한 켠에 자리하고 있으나 군산과는 전혀 정반대의 동쪽 끝 변방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물리적 거리의 극복이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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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면집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식당. 맥주 막걸리 해장국 그리고 안주가 무료란다. 사실 전라도를 찾게 되면 너무나도 많은 맛집 때문에 괴로운 고민을 해야한다. 하루 3끼라는 시간적 제약과 그리고 무한정 집어넣을 수는 없는 위장의 한계를 고려하면 모든 곳을 다 가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결국 우선 순위와 동선을 고려하여 점심은 여기, 저녁은 여기, 이런식으로 ‘식단표’를 짤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누군가를 데리고 가서 ‘어때? 맛있지?’ 하며 만족시켜줘야할 그런 여행이 아니라면 꼭 그런 곳을 찾을 필요는 없다. 그저 마음 맞는 동행과 원없이 셔터를 누르며 돌아다니다 눈에 띄는 저런 집이 있다면 해장국을 시켜두고 반주를 즐겨보는 것도 훌륭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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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제법 높이 오르고 슬슬 차량의 통행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좁은 도로 위에 판을 벌려 놓은 상인들이 물건을 앞으로 당기기 바쁘다. 이제 장을 정리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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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도로전용 단속 차량.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도로는 그 용도와 가치로 보자면 반드시 필요한 인간 사회의 핏줄과도 같겠지만 그 기능을 하지 않을 때 지구상의 지표면에 그보다 더 쓸모 없는 죽은 공간이 또 있을까. 도로가 그렇게 쓸모 없는 시간일 때, 도로로서 기능을 시작하기 전에 도깨비처럼 나타나 시장으로 변신하는 이 곳의 모습은 수십년간 반복되어 온 자연스런 역사이고 전통이 되어 가고 있다. 그것을 모를리 없는 단속 차량은 그저 무력시위 중일 뿐, 서로에게 긴장감은 없다. 곧 장은 알아서 사라질테고 단속 차량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내일 새벽, 역 앞에는 도깨비처럼 다시 장이 설 것이다.

2008.08.10. 군산 / Hexar AF / Kodak 400TX / Coolscan IVED

카테고리:Drifting, Essay태그:, , , ,

1개의 댓글

  1. 와 … 무척 아주 대단히 좋네요.
    애기들 언능 키우세요.
    전력질주 해 봅시다.
    좋은 꼭지 많이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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