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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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쓰여진 사진은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책과 혼연일체가 된 좋은 사례다. 강운구 선생이 찍었다.]

사진쟁이가 글쟁이에게

요즘 출판되는 책들을 보면 사진이 제법 많이 사용되는 것 같다. 여행이나 에세이류에 특히 사진이 많이 사용되는데 양에 비해 맛있는 책을 찾기는 쉽지않다. 사진 쟁이라서 치우침이 없지 않을 것이지만 사진이 문장만큼 신중하게 다루어지지 않고 있음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

나는 오랜 동안 사진을 찍어왔다. 글을 잘 썼더라면 사진을 찍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이십여 년, 카메라는 내게 펜이었고 필름은 내게 원고지였다. 나는 글에 기댄 사진이나 사진에 기댄 글(마뜩치는 않지만)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수준이하의 사진으로 심심한 공간을 채우듯 만들어진 책을 보면 화가 난다. 문맥이 엉망인 문장을 글이라 할 수 있는가? 글이 엉망인 책을 만나면 던지고 싶듯이 사진 역시 마찬가지다. 애써 만든 문장에 같지도 않은 사진을 붙이는 것이나, 애써 만든 사진에 쓰레기 같은 글을 붙이는 것은 만행이다.

책 표지나 띠지에 쓰이는 저자 프로필 역시 마찬가지다. 내용과 관계없을 뿐만 아니라 어울리지 않는 사진을 사용한 경우가 허다하다. 오지 여행기나 에세이에 현장에서의 리얼한 사진이 쓰인다면 나쁘지 않겠다. 영정사진이나 선거 포스터에나 쓰일법한 증명사진을 대문짝만하게 봐야하는 것은 정말이지 괴롭다. 마케팅 수단으로 기획한 것이라면 그 사람은 다른 일을 알아보는 것이 좋겠다.

글을 쓰듯이 사진도 쓰는 것이다. 책을 읽듯이 사진도 읽어야 한다. 화장과 조탁에 의존한 글이 조악하듯 기교와 보정이 심한 사진도 그렇다. 자극적이고 감각적인 글이 진솔하고 소박한 글에 비해 빨리 물리고 씹는 맛이 덜하듯이, 사진도 그렇다. 글을 위한 글이 읽히지 않듯이 사진을 위한 사진은 뻑뻑해서 삼키기 힘들다. 글이 함부로 난도질되면 안 되는 것처럼 사진 역시 사진 이외의 것으로 편집되거나 분식되면 안 된다.

책에 사진을 쓰고 싶거든 선수에게 맡겨라. 그게 안 되겠거든 깨끗하게 포기하고 글로 승부를 보는 게 좋겠다. 가장 좋은 방법은 글공부 하듯 사진도 그렇게 공부하는 거다. 읽을 수 없는데 어찌 쓰겠는가!

필자 같은 친구를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카테고리:Essay태그:, ,

1개의 댓글

  1. 아니 일연님의 책을… 저는 욕은 존나리 들어먹지만 좀더 판타지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 있는..
    그러면서도 서문에 이책에 있는 내용은 진짜진짜다라고 말하는 김부식 작가님의 사기를 더 잼있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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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피울님은 글도 되고 사진도 되고…
    언제가 공감가는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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