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의자


의자! 더 정확하게는 빈 의자다. 카메라든 사람치고 의자 한 번 안 찍어 본 사람이 있을까 싶다. 사실 의자는 카메라든 사람에게만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법정은 불일암 뜨락에 성긴 의자를 만들어 놓고 ‘빠삐용’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빠삐용처럼 당신께서도 의자에 앉아 인생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하셨다고 하니 그 의자는 성찰이다. 담배 파이프와 쌈지담배가 궁핍하게 앉은 소박한 의자를 남긴 고흐에게도 의자라는 오브제는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그에게는 아버지와의 추억을 매개하는 시간의 의자였을 것이다.

의자
–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데다가
의자 몇 개 내 놓는 거여

시인에게 의자는 피붙이의 상징이었다. 그늘 좋고 풍경 좋은 곳에 내 놓은 의자 몇 개는 뒷배가 생긴 마냥 푸근하고 좋다. ‘서있는 사람은 오시오. 나는 빈 의자. 당신의 자리가 돼 드리리다.’ 노래하던 가수에게 의자는 휴식이었다. 힘들과 외로운 사람들 무더기로 와도 괜찮다고 하니 무척 너른 의자였던 모양이다.

의자는 권력과 욕망의 상징이다. 자리의 우두머리를 서양에서는 의자아저씨(chairman)라고 하는 것으로 봐서 의자의 상징성은 동서양을 막론한다. 구들과 마루문화가 근간을 이루는 우리에게서 조차 의자의 상징성이 조금도 훼손되지 않는 것으로 봐서 더욱 그렇다. 그러고 보니 인간사 욕망의 시작과 끝이 의자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 놀랍다. 쉼도 일도 권력도 의자가 매개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의자에 앉아서 먹고 마시고 움직이고 일한다. ‘의자가 인생을 바꾼다’ 의자회사 광고 카피다. 상징을 포괄적으로 함의하고 있는 것 같아 맘에 든다. 상징은 체계가 없는 구체적 은유다. 결핍, 치유, 휴식, 욕망이 한 덩어리가 되어 의자에 투사되었다. 이것은 모순의 모순이다. 때문에 인간사를 관통하는 메타포를 그대로 담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인간은 이성(합리)적으로 사고하지만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선인의 통찰에 공명한다. 의식의 흐름을 이성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애시당초 성립하지 않는다.

소로우네 집엔 의자가 세 개 있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한 것이고, 또 하나는 우정을 위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사교를 위한 것이라고 했단다. 우리가 생뚱맞거나 낮선 곳에 널브러진 낡은 의자에 환장하는 것이 서정적 심상의 발로만은 아닐 것인데 이 마당에 저마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셔터를 끊은 사진가들의 흔적들을 모아 보았다.

독자들에겐 어떤 느낌과 의미가 될지 기대된다.

.

.

y0075081

2016. 1. 23 / 제주 광평마을 / Ricoh GR / 소자 作

 1월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 겪었던 이래로
제주시내에 이렇게 폭설이 내렸던 적이 없었을 정도로
눈이심하게 많이 내렸던 날이었습니다.
직장까지도 결국 걸어서 힘들게 힘들게 갔던 날

살고 있는 동네에서 가끔 지나다 보면 이 의자가 항상 있었는데
이 날도 이 의자는 꿋꿋하게 서 있었습니다.
폭설에도 꿋꿋하게

.

.

r0022171

2016. 06 / 포항 / Ricoh GR / 피울 作

빈 의자, 버려진 의자만 보면
셔터를 누르게 되는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답 없음’

.

.

l1006994

2016. 10 / 제주 서귀포 / Leica M8 + Color skopar 28mm / 소자 作

이 정도는 되어야 같이 앉을 수 있지 말입니다 !

.

.

68120214

속초 동명항 / Nikon AF600 + pro image 400 / 라페스타  作

.

.

l1002988

서울 중계본동 /  Leica M7 + Summirux 35mm / 라페스타  作

.

.

20161109-img406

공감e  作

.

.

000035

2016. 9 / 서울, 구로시장 / Leica M3 + elmar 50mm f3.5 + superia200 / daydayday 作

.

.

img_9496_size

Summicron 35mm + kentmere400 / 화수부두 / 행복한 바람 作

.

.

2016-11-15-0010s

GR1v / 28mm GR lems 1:2.8 / HP5+ / 문래동, 2016 / Quanj 作

.

.

000015

2016. 7 / 서울, 쌍문동 / Leica M3 + elmar 50mm f3.5 + superia200 / daydayday 作

.

.

l1000143

Monochrom (typ246) / 50mm noctilux-m, 4th 1:1.0 / 구의동, 2015 / Quanj 作

.

.

hejh1912-2

서울 구로동 /  Fuji XF1 / 라페스타 作

.

.

ec90

2015. 4 / 진해 / 손용덕 作

카테고리:Essay태그:, , , ,

1개의 댓글

  1. 겁내 좋네요.
    앞으로도 이런 포스팅 계속 부탁드립니다.

    좋아요

  2.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더니…

    좋아요

  3. 넘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

    좋아요

  4. 낯익은 사진이 보여서 깜짝 놀랬어요.. 가문의 영광입니다..ㅋ

    좋아요

  5. 담번엔 뭐 하실지 알려주세요. 미리 좀 찍어두게;;;

    좋아요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