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1


사진가에게 역사적인 사건의 현장에서 그 순간을 함께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아마도 그런 중요한 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 받았다는 측면에선 분명한
행운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 사건이 누구나 기뻐하고 환희하는 순간이 아닌 가슴 아프고 속상할 비극적
사건의 순간이라면  그 순간이 함께한 사진가에게 여전히 행운일까?

2008년 2월 대한민국의 국보 1호 숭례문이 불에 타버렸다.

국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무방비 상태에서 허망하게 불에 타 무너져 내렸다.
대한민국 사회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인식의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이었고
한나라의 국격이 불에 타오르고 무너져 내린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그 곳에 내가 있었다.

한번도 소중하다는 느낌은 커녕 그 앞에서 기념사진 찍는 외국인들을 보며
저게 뭐라고 찍냐며 힐난의 시선을 보내던 나인데…

붉게 타오르고 우지끈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서까래를 보면서 일렁이는 불길속에
내 마음도 일그러지고 도무지 원인을 알수없는 안타까움과 애끓음의 묘한 밤이었다.

화재 당일 절친한 후배 K와 서울역에서 만나 점심을 함께했다.
식사 후 스트로보를 구입한다는 후배K와 함께 남대문시장 카메라점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5부터 개방되어 조선시대  복식의 수문장이 지키는 남대문앞에서
외국인 관광객 요청으로 사진도 두어장 찍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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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눈앞에서 보게될 마지막 남대문일 줄은 그때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그리고 후배 K와 홍대에서 간단한 테스트 촬영을 마치고 저녁겸 술한잔 하러 선술집에 들어서서
주문을 마치고 언몸을 녹이던 중 티비 뉴스에서 숭례문 화재 속보를 보게 되었다.

당시 화면에선 지붕위 기와 사이로 작게 흰연기만 모락 모락 피어 오르던 상황이었다.
나와 K는 동시에 눈이 마주쳤고 이어서 “우리 저기 가자” 라고 동시에 말을 꺼냈다.

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차량 통제가 시작된 광화문 이순신동상앞에서부터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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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도착했을 때 잠시 사그러졌던 불길은 문화재청과 소방방재청의 소화방법 이견으로
지체된 틈을 타 처음보다 더 거센 불길로 숭례문을 집어 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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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당시 매고 있던 Contax G1 과 G28 Biogon 2.8 과 필름 여섯통으로 새벽까지
눈앞에서 국보1호와 더블어 함께 타오르고 무너져 내리는 국격을 기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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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꽤 오래 찍었고 서울의 지금은 철거되거나 재개발 되어 남아있지 않은 많은 공간과 장소들의 사진을 남겨왔지만 내게는 남대문 사진이 없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덕분에 시내에 나가면 마주치는 게 동대문, 남대문이니 흔하디 흔한 풍경인데다
무려 국보1호로 지정된 유적이니 앞으로 사라질 걱정따윈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에서다.

서울 소개화보나 웬만한 달력에선 전문가의 솜씨좋은 작품으로 늘 마주하니 내 스스로
사진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도 한적 없었다.

그런데 이제 그 내손으로 남긴 사진 한장 없는 남대문이 그립다.
전문가의 솜씨좋은 남대문이 아닌 투박하고 보잘 것 없겠지만 온전히 내 시선과 느낌으로 담은

바로 그 남대문의 사진이…

그렇게 모두에게 아쉬움과 충격이었던 숭례문의 화재는 나에게 더이상 스스로 판단하지 말고
가치있다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기록하는 습관을 만들어 주었다.

다시 첫 문장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그  ‘역사적 현장의 환희와 기쁨이 순간이 아닌  슬픔과 비극적 현장이어도 그 순간을 함께하는
여전히 사진가에겐 행운인가?’

나의 답은  “그렇다.”  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더이상 마주하고 싶은 행운은 아니다.

화재이후 문화재청과 관할 구청인 종로구청등등 많은 담당 부처의 어긋난 공조로 인해
조기진화에 성공하고도 2차 발화로 인해 전소되다시피한 화재를 두고 늦장대응, 안일한 관리등이
질타를 받았고 이 사건으로 우리 사회의 곳곳의 
안전 방재 시스템의 점검과 재정비의
기회가 되었지만 8년이 흐른 지금 우린 그 뒤로도 
여전히 쉽게 망각하고 동일한 실수로
소중한 인명과 재산을 잃는 큰 사고를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결정적 사건의 현장과 마주하는 꿈을 꾸고 있다.
또 다시 
언제 이와 같은  많은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순간이 행운이라며 내앞에 펼쳐질 지 모르겠다.

나는 그저 많은 이의 비애가 소수의 행운으로 작용되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
안전한 사회, 그리고 일상의 소중함 그 가치를 이해하는 사회가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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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

  1. 어후 ~~~귀한 기록입니다.
    어째 좀 찡하네요.

    무너져내린 숭례문 앞에서 망연자실했습니다.
    이후 기록이 좀 있을텐데 찾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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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그때를 회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불길에 휩싸여 떨어지는 서까래를 눈앞에서 목격하셨으니, 오죽하셨을까요…
    저도 남대문 사진이 없습니다.
    개판으로 재건한 이후의 사진만 몇장 존재해요…
    쓰러지면 다시 피어나야할진데… 정말 아쉬운 남대문입니다.
    저 불길에서 일어난 연기가 마치 깊은 한숨처럼 제 마음을 파고듭니다.
    기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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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이때부터였죠. 억장도 무너집니다.

    Liked by 1명

    • 어느 정도의 희망을 맛본 뒤의 본격적으로 대한민국이 무너지는 신호탄이랄까.. 우리의 무너진 억장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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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아… 새벽까지 혼자 거실에 남아 뉴스를 보며 ‘안돼..안돼..’ 하다가 지붕이 무너지던 순간 ‘아….’ 하고 아무 말도 못하던 그날 밤이 떠오릅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사건이지만 남겨주신 이미지는 심지어 ‘멋있어’ 보일 정도로 ‘좋은 사진’이네요. 정말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Liked by 2 people

    • 누구에게나 어떤 특별한 의미를 가진 대상이 아니었음에도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위기감과 불안감을 느끼게 해줄만한 상징적 사건이었던 거 같습니다. 모두가 노력해서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는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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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하나부터 열까지 뭐 하나 제대로 지켜줄 수 있나 싶은 나라에 살고 있는게 가슴 아프지만 … 언젠가 좋은 날이 오겠죠. 그 날이 오길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Liked by 1명

    • 그러게요.. 지난 사진이지만 긴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늘 일어나고 일어날 것만 같은 불안감이 하루 빨리 없어지는 세상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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