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가을의 이야기, 2016


KONICA MINOLTA DIGITAL CAMERA가을에 물든 잎사귀들이 그들에겐 소멸의 아픔이고 멍이겠지만, 인간에겐 아름다움이고 동경이다.
지극히 인본주의적인 접근이며, 그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에게 가을은 풍요롭고, 가을은 아름답다.

사진기를 처음 손에 쥐었던 2001년의 여름부터, 나는 16번의 가을을 맞이하였다. 16번의 가을을 담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었다.
그러나, 내 눈으로만 가을을 마주했을 뿐, 정작 가을을 많이 담지는 못하였다.

쉬운 일이 뭐가 있겠느냐만은 ‘픙경사진’ 이란 참 어려운 종목이 아닌가 싶다.
‘풍경사진’ 의 덕목은 기다림과 반복이라고 한다. 기다림은 조급함을 버림으로서 받을 수 있는 댓가요. 반복이란, 찾아간 곳을 찾고 찾고 또 찾는 부지런함 속에서 이루어진다.
물론 나는 그 둘다 행하지 못하였다.

바쁜 삶을 습관적으로 살아왔던 모양인지, 나는 밥한그릇을 삼키는 시간이 채 십분도 걸리지 않는다. 누군가는 나에게 말했다. 너는 밥을 마시냐고… 몸에 배어서 그렇다. 그때는, 빨리 먹어야 하는 것이 생존을 위한 길이었다. 하긴 내인생의 습관을 좌지우지하는 경험이 고작 4년의 생활에서 굳어진 것이라니, 참 우습기 그지없다. 지금쯤이면 그런 좋지 않은 습관을 고칠 때도 된 것 같은데, 나는 끝없는 자기합리화를 반복했던 모양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나는 참 성질이 급하다. 그것이 어쩔 때는 ‘부지런함’의 덕목으로 환원될 때도 있기는 하지만, 급하게 서두르다 보면 종종 일을 그르칠 때가 많다. 윤오영의 ‘방망이 깎던 노인’ 을 좋아하고 그 수필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싶지만, 정작 몸은 따르지 않는 것이다.
지긋이 한 곳에서 빛을 읽고, 선을 읽고, 사람을 읽어야 하지만 그렇게 지체하는 시간이 아깝다. 아직까지는 그 시간에 더 많은 곳을 가보고 싶은 것이 분명하다.
나와 같이 기다림을 잘 못하는 사람들은, 결국 우연적인 순간만을 갈망하며 끊임없이 표류할 뿐이다.

김영갑 선생님은 제주의 성난 파도를 담기위해 당신의 몸을 밧줄로 갯바위에 꽁꽁 묶고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 갯바위의 바다낚시꾼을 하나둘씩 제 입속으로 삼켜버린다던 파도 앞에서, 그는 꿋꿋히 셔터를 눌렀던 것이다. 그쯤되면 제주를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나 싶을 정도의 시간을 제주에 쏟았고, 결국은 제주의 풍경에 있어서 누구도 쉽게 왈가왈부할 수 없는 경지에 올랐다. 사람의 궤적을 읽을 수 있는 도구가 있다면, 제주에서 그의 궤적은 여러번 덧칠된 아주 진하고 굵은 선과 면으로 표현될 것만 같다.
나는 3번 이상 어떤 공간을 가본 것이 손에 꼽는다. 물론 직장과 집 그리고 일상을 제외하고 말이다. 이렇게 해서 무슨 풍경 사진을 찍겠는가… 아니, 이렇게 해서 무슨 사진을 찍는다 하겠는가…

그러나 놀라운 것은 나이를 먹어가며 사람이 변해간다는 것이다.
가치관도 변해가고, 생각도 행동도 변해가는 것 같다. 그 방향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평가할만한 기준은 없다. 새로운 것을 찾아 헤메였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면, 지금은 뭐랄까 익숙한 시간과 장소가 좋다. 많이 돌아다니지 않더라도, 그저 한 곳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꽤나 좋다. 물론 아직까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같은 곳에서 3번 만난 가을이 있다.
도산서원과 주산지, 2번은 순전히 사진을 찍으러, 그리고 마지막 한번은 결혼전에 아내와 다녀왔다.
그래, 좋은 추억이었지… 그 시간을 증명할만한 사진이 필요하다.
그러나,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 좋은 사진이 남아있을리 만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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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ICA MINOLTA DIGITAL CAMERAminolta a7d / 도산서원, 2005

주산지를 가면서 청송을 알게 되었고, 청송사과를 알게 되었다. 갈 때마다 농장을 돌며 한입씩 베어물고는 트렁크에 사과를 잔뜩 실었던 기억이 난다. 청송의 사진은 얼마 남아있지 않지만, 청송 사과에 대한 갈망은 그 풍경보다 선행하여 나에게 각인되었다. 나는 분명 사진보다 먹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사진을 소비하는 사람일까?, 생산해내는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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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7-3s두번째 찾았던 주산지의 날씨는 완전히 ‘꽝’ 이었다…
앙상했던 외톨이 나무와 운무를 본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운무는 일교차가 크고 날이 어느정도 맑아야 볼 수 있기에, 그것을 보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몇번을 가야 그럴듯한 주산지를 담아낼 수 있을까?
주산지의 절경을 사진을 통해 보게 되거든, 이발소 사진이라 폄하하지 마라…
풍경사진은 결코 쉬운 장르가 아니다.
취향의 차이는 존중의 관점에서 같이 바라보아야 한다.

20161117-2sBronica SQ-Ai / 주산지.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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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나주에서 3년간의 외톨이 생활을 했던 적이 있다.
연고도 없는 곳에서 미처 가보지 못했던 남도의 모습들을 참 많이 구경했었다.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가을이라면, 단연 정읍의 내장산이다.
내장산 국립공원 입구에서 내소사까지 가는 길은 무척 아름답고 평온했다.
굳이 내장산을 오르지 않더라도, 내소사까지 걸어가서 사찰 한바퀴 돌아보는 것도 좋다.
아쉬운 점이라면 내장산 인근에 숙소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이른 시간의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산책하는 것이 가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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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60651Panasonic GH1 / 내장산, 2011

가족들과 꼭 한 번 함께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그 바램은 4년이 지난 후에 이루어졌다.
이날은 슬쩍 내린 비에 촉촉해진 가을의 색이 한결 더 돋보였다.
나는 이렇듯, 촉촉한 날의 물들음을 가장 선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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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1003398Leica M (typ240) / 내장산,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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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이 부담스럽다면 성동구에 위치한 서울숲도 좋은 공간이다.
한적하고 넓은 공원이다.
서울이지만 서울같지 않은 녹지…
그러나 근처에 솟은 마천루들 덕에 다시 여기가 서울임을 자각하게 된다.
처음 가본 서울숲에는 보슬비가 내렸고, 그덕에 깨끗한 공기와 진한 가을색을 담을 수 있었다.
이런 것이 이른바 우연의 산물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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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0-0008sLeica MP / RVP50 / 서울숲,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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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을 그리워하며, 올해도 서울숲 나들이에 나섰지만 날씨도, 빛도 원하는 상태가 아니었다.
시국이 망조라서 그러할까…
이럴 때는 차라리 카메라를 접어두고 산책이나 했어야하지만, 아쉬운 마음에 비싼 필름을 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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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2-0033sKonica Hexar AF / RVP50 / 서울숲,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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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가을의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도 좋겠지만,
다가올 가을에 더 많은 기대를 하고 살아가는 것이 더 행복한 모습일 듯 하다.
내년의 가을은 어디서, 또 누구와 함께 맞이하게 될 것일까…
녹녹치 않은 각자의 삶속에서 이런 설레임들은 분명 큰 힘이 될 것이다.

올해의 가을은 이미 지나가버린 듯하다.
그러나 조금더, 조금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아직 보내지 않은 가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다음주, 교토에서…
그곳에서 올해는 제대로 맞이하지 못한, 지나간 가을을 잡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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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

  1. 역시 글도 사진도 술술 읽히고 봐지는게 너무 좋습니다.
    “기다림과 반복” 제가 너무 좋아하는 조합입니다.
    저도 이걸로 삼각대들고 오밤중에 그리고 새벽에 삶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곤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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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 너무 좋은 색과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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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가을이 활짝 열렸네요..
    교토의 가을 사진도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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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아~~묵혀 둔 슬라이드필름을 챙기고 싶네요.
    멋진 사진과 글.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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