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on Canonet GIII QL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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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on의 컴팩트 RF카메라 Canonet GIII QL17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방학 동안 토익 공부는 하지 않았지만 내가 끼고 살던 책이 있었으니 이 바닥에서 바이블이라 통하던 ‘바바라 런던의 사진’이었다. 알던 내용도 다시 보고 존 시스템처럼 단박에 이해가 되지 않던 부분은 몇번이고 다시 읽으며 독파해나갔다. 이 책의 모든 것을 방학 기간동안 마스터하리라는 욕심이 들던 때였다.

그런데 늘 그렇듯 환자들의 생리란 뻔해서 존 시스템 보다는 카메라의 종류를 언급한 부분에서 보았던 레인지 파인더 방식의 카메라가 느닷없이 궁금해지는 것이 아닌가. 아버지 친구분의 라이카 M6를 만져본 적이야 있었지만 내가 직접 써본게 아니니 그 찰나의 기억은 그리 선명하지 못했다. 뭐라도 하나는 써봐야 느낄거 아닌가. 학기 중이었다면 곧바로 남대문으로 달려갔겠지만 방학을 맞아 집에 내려와있는 와중이었으므로 그럴 수도 없다. 물론 가봐야 헐벗고 굶주리고 다니던 내 형편에 살 수 있는 물건도 없겠지만.

그러고보니 지역에 ‘나름’ 인지도 있는 카메라 가게 하나가 떠올랐다. ‘그래 거기나 한번 가보자.’ 별 기대는 안했지만 심심하기도 하니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가게에 들어서니 마침 중년의 아저씨 한 분이 사장님과 열심히 장비 얘기 중이다. 들고 있는 카메라는 당시 캐논의 대히트작 EOS-5의 한단계 아래 보급기였던 EOS-55였다.

‘아 이번에 내가 백두산에 가서 천지를 좀 찍으려고 해서.. 이거 갖고 찍을 수 있겠는교?’

번들처럼 흔하디 흔하던 캐논 EF28-105 줌렌즈를 들어 보이며 그 분은 사장님께 질문했다. 장사하는 사람한테 저렇게 물어보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기가 무섭게 사장님이 썰을 풀어댄다.

‘아이고 선생님, 이번에는 작품 제대로 찍으러 가시나보네요. 이 렌즈도 나쁘지 않은데 천지 가보시면 아시겠지만 28미리로는 이게 다 안들어와요. 워낙에 넓으니까. 이걸로는 좀 그렇고 이거 함 보이소. 이거 갖고 가면 마 끝이지예.’

사장님은 꽤나 비싸던 EF20-35 F2.8L렌즈를 꺼내보였다.

‘이거 하나믄 마 풍경은 끝입니다. 이거 빨간 줄 보이시지예? 이게 캐논서 제일 좋은 L렌즈 표시 아입니까? 선생님 정도 활동하셨으면 이제 렌즈도 좋은 거 하나 장만하셔야지요.’

‘이기 비싸다 아이가. 너무 비싸가지고.. 좋기야 한데..’

‘아따 선생님요. 28미리가꼬 천지 한방에 안들어와가 후회하고 다시 갈라캅니까? 그 돈 생각하면 비싼 것도 아니지예. 그리고 카메라야 나중에 바꿔도 렌즈는 평생쓰는거 아인교. 백두산까지 가시는데 맘 먹은 김에 좋은 걸로 사가서 찍으이소.’

‘생각해보니 그거는 또 그렇네요. 그럼 그거 하나 주소. 그리고 삼각대는 내거 이걸로 가져가도 괜찮겠지요?’

‘선생님 내가 장사할라고 하는게 아이고 솔직히 천지 올라가면 바람이 진짜 장난이 아입니데이. 이것도 뭐 카메라 올릴 수는 있지예. 근데 이래 약해가지곤 바람 불어가 휙 넘어가뿌면 비싼 카메라 렌즈 다 깨묵는다 아입니까? 삼각대는 알면 알수록 좋은걸 써야지. 초보들이야 뭐 아는교. 서이 가가 서이 사진 찍을 때나 세우는게 삼각대인줄 알지. 작가들 함 보소. 머할라고 그 사람들이 짓조 같은거 쓰겠는교. 삼각대도 하나 하소. 하는김에.’

적당히 띄워주고 협박(?)하고 회유하여 결국 사장님은 EF20-35 L렌즈와 짓조 삼각대와 많이 사셨으니 싸게 준다며 카메라 가방까지 하나 파실 수 있었다. 옆에서 바라보며 ‘아 나도 학교 때려치우고 카메라 장사나 해볼까. 나도 잘할 수 있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한건 올린 사장님 기분이 좋을테니 나에게도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천군만마를 얻은 표정으로 아저씨가 가게를 나가고 나서야 사장님은 나에게 관심을 주신다.

‘어 학생은 뭐 살라고?’

‘그냥 구경 좀 하려구요.’

‘뭐 찾는거 있나?’

‘RF카메라 중고 뭐 없나 싶어서요.’

‘젊은 사람들이 그런 것도 쓰나? 우리는 몇개 없는데 그런거.’

그런거 뿐 아니래도 지방 카메라 가게가 그렇듯이 물건이 많지는 않았다. 그저 ‘눈 먼’ 매물이 하나 없나 싶어 왔던 것인데 역시나 별게 없다. 그런데 쇼윈도 쪽에 먼지를 케케묵은 작은 RF카메라가 하나 눈에 띄었다. 바로 캐논 GIII QL17이었다. 먼지가 뽀얗게 앉은 것이 딱 봐도 사기 싫게 생겼었지만 가격이나 물어보기로 했다.

‘이거는 얼마예요? 파시는거예요?’

‘이거? 이거를 뭐 얼마를 받아야되노..’

애초에 별 팔 생각이 없었던 물건이었던지 잠시 고민하시던 사장님은

‘학생이니 내 싸게 줄게. 7만원!’

그리 비싼 가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달 용돈이 20만원도 채 안되던 나에게 7만원은 나름 큰 돈이었다. 깎아야한다.

‘에이 이거 먼지도 많고 상태도 그냥 그런데 5만원 해주세요.’

‘5만원은 안되지~ 우리도 매입한 가격이 있는데.. 학생이니까 그럼 6만원.’

‘아 5만원 해주세요. 어차피 이거 제가 안사가면 또 누가 사갈 것 같지도 않은데.’

나름 솔깃한 멘트였으리라.

‘그럼 5만 5천원! 됐재? 더는 안된데이.’

이 정도면 OK!

‘네 그럼 제가 살게요. 케이스랑 이런건 주시는거죠?’

당시만 해도 남대문에서 니콘 FM2 따위를 사면 서비스랍시며 노란 니콘 스트랩과 정품은 아니겠지만 레자로 된 케이스를 대부분 줬었기에 뱉은 말이었다. 하지만 먼지 케케묵은 이 카메라에 맞는 케이스가 있으리라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의외로 새 것같은 레자 케이스가 있었고 사장님은 ‘학생이니까’를 자꾸 강조하며 그것도 끼워주셨다. 그렇게 나에게도 처음으로 RF카메라가 생긴 것이었다. 집에 와서 엄마 매니큐어 지우는 아세톤으로 구석구석 닦아주니 새것처럼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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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부터 80년대 초까지 일본의 카메라 제조사들은 이와 비슷한 컴팩트 RF 카메라들을 우후죽순 쏟아냈다. ‘가난한 자의 라이카’로 유명한 야시카 35GN부터 올림푸스 35시리즈, 미놀타의 하이매틱 시리즈 등이 대표적이었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35미리 전후의 붙박이 광각 단렌즈가 탑재되고 셔터스피드 우선AE 등의 자동노출이 가능해 사용이 간편했고 플라스틱이 본격적으로 공산품에 많이 사용되던 시절이 아니라 바디의 대부분이 금속으로 만들어져 나름 탄탄한 내구성을 자랑했다는 점이었다. 이 기종들은 80년대 들어 AF가 되는 본격 똑딱이들이 등장하기 전까지 대중적인 카메라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 중에서도 캐논의 GIII QL17은 약 120만대나 팔려나갈 정도로 히트를 친 기종이다. 초반에는 일본에서 생산되나 후에는 대만에서 생산이 되었고 내것도 대만제였다. 중고가는 일본산이 조금 더 비싸다고 하나 롤라이35의 독일제냐 싱가폴제냐 정도의 갭은 아니다. 그 놈이 그 놈인 수준이다.

이 카메라의 최대 장점은 모델명 QL에서 알 수 있는 신기한 Quick Loading 방식이다. M4 이후의 라이카 M바디의 퀵로딩 스풀도 편하다지만 QL17은 그냥 자동카메라에 필름을 넣듯 빨간점까지 필름을 뽑아 뒷두껑을 닫아준 후 와인딩 레버를 감기만 하면 실패없이 로딩이 된다. 필름 넣기에 서툰 일반인들을 배려한 아주 편리한 방식이다. 이후에는 왜 이런 방식의 카메라가 나오지 않았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 카메라에 캐논이 꽤 많은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은 시차보정이 되는 프레임 라인이 내장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M형 라이카에서나 볼 수 있는 이런 장치를 보급형 카메라에서 구현 해줬다니 놀라운 일이다. 노출은 셔터스피드 우선 AE가 가능하고 반셔터를 누른채로 있으면 AE-LOCK도 가능하며 렌즈셔터 방식이라 소음도 진동도 아주 작으며 덕분에 전 셔터스피드 영역에서 플래쉬 동조가 가능하다. 셔터스피드 우선 AE 외에 매뉴얼로도 사용할 수 있고 이 때는 노출계가 OFF되는 대신 완전 기계식으로 작동된다. 나름 기계적 신뢰성도 갖춘 셈이다.

처음에는 제법 예쁘고 클래식컬한 모양 때문에 애지중지하며 자주 들고 다녔다. 하지만 결국 몇롤 찍지 않고 장식품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는데 결정적 이유는 4군 6매의 40mm f1.7 렌즈 성능의 한계 때문이었다. ‘가난한 자의 라이카’ 부류에 속하는 카메라들에 대한 사람들의 후한 평가는 지금도 여전한데 사실 ‘가성비’로 놓고 보면 부족하지 않은 기종들이지만 보급형이니 만치 그 한계는 명확했다. 이 녀석으로 찍은 필름을 확대기에 걸어놓고 보면 니콘 렌즈와 차이가 제법 났다. 선예도, 콘트라스트 모두 부족했고 역광에서도 강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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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1.04 안동, 자전거를 끌고오던 다정한 형제를 만났었다 / KODAK TM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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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1.05. 안동, 안동포 짜는 마을. 사기치고 찍었던.. 어렸었다. / KODAK TM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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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입 초반을 제외하곤 별로 찍지도 않아서 예제 사진을 찾기가 좀 힘들었다. 그나마 쓸만한 것이 이 두 컷이 전부로 학교 앞에서 술을 마시던 중 ‘야 우리 지금 안동 안갈래?’ 라는 동기의 말에 무작정 청량리역으로 달려가 막차를 타고 내려갔던 안동에서 3일동안 돌아다니며 찍었던 사진들 중에서 골랐다. 그 이후로는 이 녀석을 제대로 써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렇게 별로 사랑받지 못하던 GIII QL17은 몇년이 지난 후, 군시절 절친했던 계원에게 선물로 주면서 내 곁을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싸구려 카메라를 잊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한 장의 사진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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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1월 어느날, 대구 / KODAK TMX

할머니께서는 우리가 당신을 찾아왔다가 돌아갈 때면 항상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개울가 바위 밑에 가셔서 누군가를 향해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하셨다. 아마 돌아가는 길에 우리 가족 안전하게 잘 가라고 산신령이거나 누구에게 간절히 비셨을 것이다. 늘상 있었던 일이므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던 장면, 그 장면을 무심코 눌렀을 때 내 손에 있던 카메라가 바로 GIII QL17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한참 후 우연히 옛 필름들을 들춰보다가 이 컷을 스캐너에 걸었다. 당시엔 확대 인화조차 하지 않았던 컷이었기에 어떻게 찍힌 건지 좀 궁금했다. 잠시 후 4000픽셀로 스캔된 이미지가 모니터를 가득 채웠다. 그러나 곧 그 이미지는 뿌옇게 흐려지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종종 걸음이 만들어낸 눈 밭의 발자국을 보며 한참을 눈물을 흘렸다. 당신께서는 언제나 우리가 간절했구나. 이 사진에서만큼은 해상도니 콘트라스트니 뭐니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이 장면을 남겼음이 너무 소중했고 할머니가 건강히 살아 계실 때 왜 더 많은 사진을 남겨두지 못했나 하는 후회만이 가슴을 후볐다.

환자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나에게도 버릇, 혹은 목표란 것이 있다. 어떤 카메라나 렌즈를 새로 구입하게 되면 이것으로 일명 ‘일면’이라든지 ‘베스트갤러리’라든지로 대표되는 ‘걸작’ 하나는 만들어야겠다는 욕심이다. 타인의 시선이 중요한 것만은 아니지만 그래도 비싼 돈을 주고 샀으니 본전 생각이 나는건 어쩔 수 없나보다. 사진으로 돈벌어 먹고 사는 프로가 아닌지라 나에게 본전이란 그런 것이다.

그런면에서 보자면 5만 5천원 주고 산 GIII QL17은 본전의 백배쯤은 남겨준건가? 아니 그런 물질적인 가치로는 환산할 수 없겠다. 이곳을 통해 처음 공개하는 사진이라 어딘가에서 ‘일면’이나 ‘베갤’을 간 적도 없고 갈 사진도 아니겠지만 내게는 다시는 얻을 수 없는 귀중한 사진이다. 내 가슴에 와서 박힌 할머니의 모습을 아로새겨준 소중한 카메라로 기억되고 있는 카메라가 바로 GIII QL17이다.

사진 한장으로 기억되는 카메라라니. 녀석은 나의 장비 편력에서도 특이한 케이스로 남았다.

카테고리:Essay, Review태그:, , , , , , ,

1개의 댓글

  1. 사진도 좋고 글도 재미있고 점점 피요님 팬이 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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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침부터 이러실껍니까.
    사진보다는 장비에 자꾸 탐닉하는 저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글과 사진입니다.
    감사합니다.

    Liked by 2 people

  3. 음. 나는 앞으로 어떻게 쓰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진도 글도 아름답습니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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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제게도 너무나 소중했던 할머니가 계셨어요.
    안동에 갈때면 항상 손주 주실려고 챙겨둔 알사탕을 제 손에 줘어 주시던…
    그 시절엔 사진을 하지 않던 때라 남겨진 사진 하나 없는게 얼마나 서럽고 억울한지…
    너무나 부러운 사진 한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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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흔하디 흔한 일상과 늘상 자주 보는 가까운 사람들이야말로 정말 소중한 존재들이지요. 사진찍는 우리가 오히려 더 주의 깊게 봐야할 대상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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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돌아가신 할머니가 보고싶네요. 좋은 사진 한장도 못찍어드리고… 투정만 부렸던…
    카메라는 사연을 싣고 세상을 누비는 군요.
    본전 이상의 감동을 느끼고 갑니다.
    좋은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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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주변의 소중한 가족을 담는 것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감동적인 사연, 좋은 사진 잘 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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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어르신들의 마음을 진즉 헤아려 드리지 못한게 마음에 걸리는 일상입니다.

    마음 녹히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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