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보다 #3


좋은 사진을 위한 잡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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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 제주 / GR]

> 어떻게 볼 것인가?

찍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보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여기서 ‘본다’는 것은 독자나 관객의 관점이 아니라 사진가의 관점이다. 볼 수 없는데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사 구석구석 어디에나 열외는 있는 법. 프레이밍에 천재성을 보이는 지인이 있었다. 감각, 끼…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찍어내는 사진들을 보면 기가 막혔다. 타고난 재능이란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이 친구는 찍히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찍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다행이지 뭔가! 부럽지 만 뭐 괜찮다. 그 친구는 안 찍고 난 찍는다.

한걸음 들어가 보자. ‘사진가적 관점으로 본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거개의 경우 사진을 본다고 하면 뭐가 찍혔는지, 시선을 끄는 피사체가 무엇인지, 그것이 인상적인지 정도만 확인되면 사진에 대한 판단을 하게 된다. 이 순간 지금까지의 흥미는 사라지고 더 이상 관심을 진행시키지 않는다. 그러니까 다 본 것이다. 전쟁의 참상을 다룬 다큐멘터리일 수도, 자연을 담은 아름다운 풍경일 수도, 쭈쭈빵빵 모델을 담은 사진일 수도 있지만 ‘참혹하다’ ‘멋있다’, ‘아름답다’, ‘재미있다’ 정도의 감상에서 그친다. 이런 감상은 아주 짧은 시간에 완성되고 만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가 찍은 사진엔 내가 없다(셀피 가지고 달려들면 같이 죽자는 이야기?). 가족사진에 가족이 모두 담겨져 있지 않았다고 아내나 아이들은 불만일지도 모르겠다. “너희들 눈에 내가 있다. 마주보고 있는 사진밖에 내가 있는데 안보이냐!” 변명이랍시고 하는 말인데 믿기지 않을 만큼 멋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내가 한 말이다. 믿어 달라.

사진을 감상할 때 특히 그가 사진가라면 여기서 한걸음 더 들어가야 한다. ‘내가 이 사진을 찍는 사진가라면’이라는 가정을 두고 사진을 봐야한다는 거다. 여기서 ‘찍은_완료형’이 아니라 ‘찍는_진행형’이라는 것에 주목하자. 어떤 결정적 조건이나 상황에서 셔터를 끊을 것인지, 움직일 것인지 기다릴 것인지, 몇 컷이나 눌러야 할 것인지, 카메라를 들고 실제로 프레이밍을 하는 시늉을 한다든지, 이 때 빛은 어땠는지, 카메라 세팅을 어떻게 할지, 프레임 밖의 상황은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 뒤꿈치를 들어도 보고, 앉아도 보고, 태양의 위치, 바람이나 비를 느껴도 보고, 디지털 작업인지 아날로그 작업인지, 최종적으로 왜 이 컷을 선택했는지, 그리고 이런 하나하나가 사진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생각해 보고 시뮬레이션 해보는 거다. 사진에 무엇(결과)이 찍혔는지도 중요하지만 왜 찍는지(원인), 어떻게 찍을 것인지(방법과 수단)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왜’, ‘어떻게’는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인지라 더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요소인지도 모르겠다. 과정은 결과의 씨를 이미 잉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는 프레임 구석구석을 촘촘하게 보는 것이다. 주 피사체(가장 큰 덩어리)에 시선을 몽땅 빼앗겨 나머지 공간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거다. 그 공간에도 빼곡하게 무언가가 들어차있다. 벽이거나, 숲이거나, 껌껌한 벽지거나, 배경지거나, 눈밭이거나, 산 능선이거나, 실루엣만 남은 사람들이거나,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하나도 놓치지 말자. 사진 한 장을 그림이나 영상으로 재현할 만큼 글로 묘사해 내려면(가능할지 모르지만) 수십 장의 문장이 되어도 부족할 것이다. 이렇듯 한 장의 사진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촘촘하게 봐야한다. 이렇게 훈련을 하면 ‘구성_한 장의 이야기’에 대한 각성에 이르게 된다. 비로소 사진이 늘게 될 것이다.

같은 피사체를 여럿이 찍어보면 같은 사진이 한 장도 안 나온다. 이것은 내게 언제나 경이로움이다. 우리들의 시선과 표현방법은 이렇듯 다양하다. 이런 다양성을 하나 또는 몇 개의 잣대로 가늠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좀 더 나은 사진을 찍고 싶다면 ‘보는 훈련’부터 시작하자.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알려 주는)것이 교육(education)이라면 훈련(training)은 알게 된 것을 잘하게 하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반복 숙달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이 면허증을 획득하게 하는 과정이라면 훈련은 ‘직진만 삼일 째’란 스티커를 떼게 하는 과정이다. ‘보는 교육’이라고 말하지 않고 ‘보는 훈련’이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육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결핍이 있는 사람은 알아서 찾는다.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것은 비교할 것이 없을 만큼 즐거운 일이다. 이에 반해 훈련은 그렇지 않다. 따분하고 재미없고 힘든 시간이다. 드러나지 않으니 생색내기도 어렵다. 으스대지도 못한다. 때문에 제법 강한 의지가 없으면 한고비 넘기가 쉽지 않다.

보는 훈련이 안 되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지금까지 풀어놓은 글에서 ‘보다’를 ‘읽는다’로 바꿔서 읽어봐 주면 좋겠다. 나는 사진을 ‘찍는다’라고 하지 않고 ‘쓴다’라고 한다. 나는 사진을 ‘본다’라고 하지 않고 ‘읽는다’라고 한다.

요약:
‘본다’에서 ‘읽는다’

카테고리:uncategorized태그:,

1개의 댓글

  1.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봤던 영화를 또보고, 내가 원하는 영화를 직접 만들어보는게 영화덕후의 단계라고 박찬욱 감독이 그랬죠.
    그런 면에서 사진은 너무 간단해서 좋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완전 잘못된 생각이었죠.
    시간이 가면 갈수록 알면 알수록 어려운 것 같아요.
    그냥 아무생각없이 좋아하는 영화(사진)을 보고만 좋아하던 시절이 오히려 행복한 단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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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올려주시는 글들 감히 댓글을 달지는 못하고 조용히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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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좋은 말씀 맘에 새길께요.. 아 그리고 마지막 줄 오타 있습니다. 읽는다여야 할거 같은데 잃는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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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앙. 생각 좀 하면서 사진을 써야겠어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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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옆나라에서 칼밥 먹던 아저씨들이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모습이 없는 것을 보고, 소리가 없는 것을 들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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