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장


한잔하고 들어 온 늦은 밤, 요즘은 왜 술을 마셔도 잠이 오지 않는 것인가. 묵은 폴더를 뒤지는 것은 멜랑콜리한 밤을 채우기에 안성맞춤이다. 삐급 포스팅 꺼리나 찾아 보자. 사진들이 묵은 먼지같은 추억을 쏟으면서 한장 한장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대비하지 못한 채 과속방지턱을 넘듯 뭉클거리는 장면들이다.

아~ 이거!

한 장의 사진에서 눈길을 거두지 못하고 상념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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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 세브란스 병원 / Voigtlander Bessa R3A + Nokton 40mm f:1.4]

그 때 나는 초보딱지를 뗄까말까한 사진계의 뉴비였다. 지인의 수술보호자로 소환되어 소아병동을 지키게 되었고 수술이 진행되던 시간에 잠시 바람 쐬러 테라스로 나갔을 때 이 사진을 찍었다.

모자는 조금전 복도에서 만났었다. 테라스에서 이 장면을 만났을 때 나는 이미 병원이란 공간에서 장애가 있는 아이와 그 아이를 지키는 엄마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아이는 들리지 않는 세상과 부딪치며 살아갈 것이고 엄마는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의 크기만한 근심으로 장애를 가진 아이를 지킬 것이었다. 담너머 쏟아지듯 찬란한 세상이 마냥 궁금한 아이와 내려 앉은 해 만큼이나 깊은 심연의 근심을 품은 엄마가 맞이하는 담너머의 세상은 동상이몽이었겠다.

이야기가 담긴 사진을 찍고 싶다. 내가 아는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그대로 전달하고 싶었지만 뜻대로 마음대로 될 것 같았으면 난 이미 쿠델카였거나 어윗이었을 것이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아이와 엄마를 다시 만나면서 사진에 담긴 이야기에 대해서 생각했다. 사진가가 대상에 얼마나 개입할 수 있는 것인지, 독자가 사진의 이야기를 알 수 있기나 한 것인지…모르겠다. 이 이야기가 사진가의 개인적 의미 이상은 아닐 것이지만 거리를 헤메고 낮선 골목을 후비고 다닌 짧지 않은 지난 시간을 매개하는 열쇠같은 것이라면 나름의 의미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난 여전히 이야기를 이미지에 담아 전달하는데 장애를 겪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끝내 닿지 못할 천공의 성일지라도 쉽게 놓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진으로 말하고 싶은 욕망은 또 그렇게 이글거린다.

누구에게나 ‘계기’는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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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

  1. 이렇게 또 한장의 사진은 읽혀집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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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 그리 길지 않은 글임에도 가슴 깊이 와서 박히는 문장들과 아련한 사진 한장. 많이 말하고 많이 보여주지 않아도 가슴을 울리기에 충분한 것 같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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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좋은데~ 제 필담이 짧아서 말이 써지지가 않네요. (제맘 아시겠죠? ^^;)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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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아…신촌 세브란스 병원
    이 여덟자가 사진의 모든것을 말해주네요!
    사진도 글도 넘흐 므찌심니다!!!
    많이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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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읽고 … 그리고 듣고 … 사진에서 세상을 배우는 능력을 배워가고 싶습니다.

    사실 저는 그냥 있는 그대로 그냥 진짜 그대로 담아내기만 해서 … 이야기가 담긴 사진은 좀 더 새롭고 즐겁기도 하고 … 가슴 한켠이 좀 아리기도 합니다 ^^

    좋은 이야기 …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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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담너머 쏟아지듯 찬란한 세상이 마냥 궁금한 아이와 내려 앉은 해 만큼이나 깊은 심연의 근심을 품은 엄마가 맞이하는 담너머의 세상은 동상이몽이었겠다.’

    여러번을 읽게되는 구절입니다.
    아련합니다…
    좋은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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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정의 과잉이긴 하지만 장면에서 느껴지던 엄마의 뒷모습에 저도 같이 한숨을 내쉬었더랬죠.. 우리 사회가 좀더 긍정적인 부분을 향해 나간다는 여러 지표가 좀더 확실해 지는 날이 얼른 오길 기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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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저는 소설이 아닌 이상 감정이 너무 오버하는 것을 경계하는 편이지만, 라페스타님의 감성은 참으로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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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작위적인 과잉은 좀 불편하지만, 라페스타님의 글은 뭐랄까 만화적 상상력이 엿보인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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