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끕 in Kyoto #1


“우리 해외 출사 갑시다.” S가 쏜 뜬금포에 맞장구를 쳤다. 우리가 한 일이라곤 그게 다였던거다. 히죽거리면서 노는 건 우리가 무척 잘하는 종목이다. 마이코는 이미 연인이고 교토산 알콜은 거덜났다. M 필름 크랭크의 황동이 녹아날 만큼 난사질을 하고서야 모래성을 허물었다. 며칠 후 S는 개략의 일정과 항공스케줄을 담은 메뉴판을 돌렸다. ‘같이 갈 사람 여기여기 붙어라’ 헐~~진짜!

일년 전에 벌어진 일이다.

그 사이 우리는 변신과 전환을 이루었다. 모두들 배고프고 목말랐던 모양이다. 결핍은 필요를 낳듯 시작은 망설였지만 결정이 되자 기민했다. 각자의 위치를 알아서들 잡았으며 남는 것은 주고 부족한 것은 보태는 겸양을 잊지 않았다. 우리 나이쯤 되고 보면 함께 하는 것이 더디고 어렵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도 안다. 세상의 모순과 역설을 온몸으로 겪은 노회함이다. 널부러진 조각들이 블록을 짜 맞추듯 하나씩 자리를 잡았다. 삐끕사진은 달포만에 닻을 올렸다.

삐끕사진가들이 맺은 묵언의 약속들이 사케처럼 그사이를 스며들 것이다. 이번 여행은 삐끕출항을 자축하는 의식과도 같은 것.

늦은 가을에 만난 교토는 사람들로 넘쳐 났지만 고요하고 정갈했다. 삐끕여행사의 빡센 일정사이 막간에 툭툭 던지듯 담은 교토 거리, 그 단상을 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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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역 인근] 공항버스에서 내렸다. 아니 탈때인가! 이리저리 끌려 다니느라 위치파악 따위는 사치다. 교토에서 먹은 첫 음식은 삼각김밥이다. 편의점표 계란말이는 심지어 두명이서 나눠 먹으란다. 담엔 따로 먹을 것을 짱박아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여행사의 악명이 그저 생긴 것은 아닐 것이다. 교토의 첫 느낌은 ‘어 낯설지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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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역 인근] 오래되고 낡았다는 것이 폐기 사유는 아니다. 지하철이고 전철이고 닦고 조이고 기름쳐서 반들반들 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뭉개고 새로 만드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아저씨 당신도 여행 좀 다녀오셔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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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역 인근] 활자는 사고를 지배한다. 때론 너무나 선명해서 불편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분명 교토에 있다. 교토에끼데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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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안] 첫 컷에서 실패하고 두 번째 시도에서 딱 걸렸다. 나는 쭝궈니까 생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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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아게역(?)] 첫 목적지 난센지로 가는 길이다. 남의 나라 절간을 왜 가나 싶지만 삐끕여행사는 고객지향적이지 않다. 가자면 가야지 뭐. 말 안 들으면 미아 만들 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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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아게역(?)] 페이퍼를 보는 아저씨와 스마트 폰을 보는 청년이 대비가 재미있다. 어딜가나 비슷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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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칸도] 정원을 걷는 노부부의 걸음을 한참 따라갔다. 체온을 느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은 부부는 알고 있는 것 같다. 할머니는 거동이 제법 불편하신 것 같았고 그나마 나은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보호하고 있었다. 의지하고 있다는 것…잠시 아내와 아이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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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길 언저리] 오후 네시만 넘으면 땅거미가 진다. 오래된 택시에게서 이국의 정취를 느겼다. 클래식한 택시는 교토와 어울렸다. 하늘이 기분 좋게 내려앉았다. 거리 느낌이 좋다. GR의 RAW파일 관용도가 제법 쓸만하다. 하늘과 골목의 노출차가 무척 큰 상황이었으나 자연스럽게 살리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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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길 언저리] 넘쳐나는 사람들을 피해서 사진을 찍는 일은 사진가의 숙명이다. 느낌대로 교토를 담으려면 넘쳐나는 사람들이 잠시 끊어지는 틈을 놓쳐서는 안 된다. 손은 생각보다 빨리 움직인다. 사진가는 보여주고 싶은 것을 찍는다. 그러니까 독자들은 보여주는 것만 보게 되는 것이다. 사진의 오른쪽 끝 팔꿈치는 자르지 않고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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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길 언저리] 제자리가 아닌 것이 없다. 오래되고 낡은 것은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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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길 언저리] 사쿠라이 선생, 지나치는 아저씨는 관심이 한 개도 없는 것 같소. 그런데 왜 이 벽보는 벽을 채우는 아트같이 느껴지는가! 마치 제자리에 붙은 듯 상그럽지않다. 호박나이트 찌라시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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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길 언저리] 땅거미와 함께 내리는 빛이 환상적이었다. 교토를 지배하는 이미지는 클래식한 거리, 톤 다운된 색, 깨끗하고 부드러운 해넘이였다. 꼬리를 길게 빼서는 늘어질 듯 하다가 순식간에 저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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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길 언저리] 국밥집에서 나오는 아줌마와 빨간 우산의 대비가 재미있다. 아~물론 국밥집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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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길 언저리] 고풍스럽고 아담한 가게들이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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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길 언저리] 일행들과 길어 엇갈려서 한참을 찾고 기다리고 하는 사이 해는 길게 꼬리를 드리운다. 교토 첫날이 저물고 바쿠스의 시간이 열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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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길 언저리] 조금전 육천원짜리 군고구마를 두개 사서 일행들과 나눠 먹었으나 여전히 배고프다. 얼마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고구마보다 싸고 많았다. 딱 오방떡이다. 지붕을 노랑으로 한 것이 의도라면 이 친구는 뭘해도 될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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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길 언저리] 모든 길이 이렇듯 한적할 거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사진은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준다는 것을 다시한번 상기하자. 행인을 기다리는 시간 따위는 기대하지 않았다. 간판으로 빈 곳을 채웠다. 만족이 아니라면 차선이라도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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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쿠모토초 어드메(?)] 여행을 다녀와서 어딘지 설명도 못하겠다. 이럴려고 간 것인지 자괴감이 들지만 어쨌든 교토 거리다. 작은 차들이 제자리에 들어 앉았고 거리에 사람들은 더 없이 평화롭다…는 사진가의 이미지일 뿐. 프레임 밖은 여전히 인산인해. 쭝궈들이 프레임 안으로 끼어들까 노심초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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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쿠모토초 어드메(?)] 어슬렁을 염원하는 멤버들의 성화에 얻어걸린 골목길이다. 물론 어딘지 어떻게 간 것인지 나로선 알 길이 없다. 료안지로 가는 길이지 싶은데 어슬렁 거리기에 안성맞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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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쿠모토초 어드메(?)] 일행들 몰래 찍고 빠질랬더만 들키고 말았다. 사진가들이 달려드는 바람에 놀라지나 않으셨는지…난 여전히 중국말을 했다. 아름다운 골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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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시야마(?) 일까!] 매표소 아저씨 어디 소속이요? 매표소 턱에 놓인 꽃병을 보라. 빌어먹어도 풍류는 온전히 즐기는 작의 몫인 것을…격조있는 삶은 일상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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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 라이카 스토어 교토, 이런 건 안가르쳐줘도 어찌 이리 잘 아누…쓸려 다닐 정도로 사람들이 많은 거리다. 사진에서처럼 한적할 거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예뻤지만 규모는 생각보다 작았다. 이층은 갤러리로 꾸며 놓았고 쉴 수 있는 의자도 몇 개 있다. 이른 아침에는 기온거리에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루 종일 어슬렁거려도 좋겠다. 운이 좋으면 뒷골목에서 마이코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아! 물론 그림의 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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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수가 없다.] 아마도 비를 흠뻑 맞으며 돌아오던 토리세이발 지하철. 만찬을 늘어지게 즐기고 돌아오는 길은 촉촉하게 비가 내렸다. 낭만적인 밤이다. 오부리 한자락 뽑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싸구려 미러볼이 돌아가는 전철역 밑 바에서 흘러나오는 분냄새는 제법 관능적이었다. 다시 가야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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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일탈이다. 일상의 질서에 매여 시계불알 같은 오늘이 버겁거나 식은 가슴이 서럽거든 떠나라. 일상에 매여 있는 내게 여행은 가슴뛰는 일탈이며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다. 떠남은 만남을 전제함으로써 존재한다. 누굴 만나건 어떤 일이 벌어지건 나는 그 시간 안에서 자유롭다. 다시 자유가 버겁거든 질서로 돌아오라. 여행은 그래서 비장하지 않아도 좋다.

나는 삶이 정주가 아니길 바랬다. 여행(旅行)이란 글자가 품은 뜻 그대로 끝임없이 흘러 바다에 닿을 수 있길 …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면 그 누군가가 ‘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숲을 보려면 나무에서 멀어져야 하듯 떠남으로서 더 큰 나를 만났다. 몸을 움직여 땅을 밀고 나갔고, 생각을 움직여 관념의 땅을 밀고 나갔다. 떠나면 몸이 움직이고 생각이 움직인다.

낯섬으로 떠난 곳에서 두고 온 수 많은 일상을 만났다. 여전히 바둥거렸고 휘청거렸다. 그들은 수많은 나였고 나는 수많은 그들이다. 시계불알 같은 일상의 지루함을 관조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두고 온 일상과 화해했다. 일상의 찬란함을 발견하면서 상처는 치유되고 에너지는 충전되었다. 그래서 결국 다시 돌아 올 이유를 얻었다.

여행 안에서 나는 일상을 관조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로소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아웃포커싱 되었다. 만나고 생각하고 쓰고 먹는 것이 달라졌다. 어제보다 찬란한 오늘이다.

휘청거려도 굴러도 괜찮다. 난 삐끕이니까…

by PIUREE

카테고리:Drifting, Essay태그:, , ,

1개의 댓글

  1. 교토 자체에 대한 호기심은 적었지만 함께 하는 분들 덕분에 행복했던 삼일간의 여행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 같은 좋은 분들의 여행에 동참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PIUREE님의 시선으로 교토를 천천히 다시 한번 음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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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체 여행이 익숙치 않아서 함께 할 시간을 많이 가지지 못한 것이 무척 아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형님을 얻었습니다. 더 큰 수확을 말할 수 없습니다. 고마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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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작가만의 독특한 시선과 구도, 또 그의 여행을 바라보는 관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정말 멋진 수필입니다.
    또한 위트와 날카로운 지적을 포함하는 맛깔나는 글솜씨로 읽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습니다.

    다 보고난 총평은…

    ‘인자 저는 쪽 팔려서 글이나 사진 안올릴랍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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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전 만남은 헤어짐을 전제로 한다고 생각했는데
    헤어짐은 만남을 전제로 한다는 글에 부족했던 제 생각을 바꾸게 되네요.

    휘청거려도 굴러도 괜찮다. 난 삐끕이니까.
    정말 맘에 드는 문구입니다.
    맞아요. 우린 삐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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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개구지셨던 맞짱구가~ 한편의 예술로 바뀌는 과정을 낱낱히 목격하는 기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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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조금 다른 동선이었지만 제 여행도 조금은 더 정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그리고,

    뭉개고 새로 만드는 것 만이 능사는 아니다 … 오늘 동네 보도 블럭 또 뒤집고 다시 만드는 것 보고 저도 그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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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허걱, 저는 어딜 갔다 온걸까요.
    저는 저도 못 찾고, 떠났던 이유도 모르고, 다시 돌아올 이유도 모른체 이미 부산에 있는 저는…..
    역시 본사는 래베루가 다르군요. 어디 여긴 다신 얼씬도 못할 것 같습니다.
    교토 여행을 계기로 피울님을 비롯해서 여러분들을 만나뵙게 되어 영광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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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신명나는 춤사위를 관람한 느낌입니다.
    교토에서의 기억이 새록새록 올라오네요.
    좋은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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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저도 언젠가는 다시 가야겠습니다. 교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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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나이스입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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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찍힌 사람은 몰라도 찍은 사람은 알고 있다는,
    찰나의 스토리군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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