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여 안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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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를 사랑하는 일은 깊은 물 속에 잠겨있는 일과 같아서
점점 어두워지고 마음에는 한없이 시퍼런 멍이 든다고 말하던 당신.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때 당신은 처음으로 내게 진실을 이야기했고
그 진실의 무게로 힘겨운 나를 두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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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이별은 아니리라 믿었지만 그것은 실제로 영원한 이별이었다.
당신은 나에게 더 해야할 말이 있었다.
그것을 하지 않은 채 떠나가버렸기 때문에
나는 당신을 다시 찾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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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낡은 추억들이 먼지를 켜켜이 뒤집어쓰고 쌓여 있을 <잃어버린 기억들의 창고> 앞에 서 있다. 먼길을 돌아 여기까지 왔다. 낮이면 오래 걸었고 밤이면 깊은 잠을 잤다. 달은 몇번이나 제 모습을 바꾸었다. 달의 변덕을 참아가며, 나는 걷고 또 걸었다. 누군가가 잠시 나의 동행이 되어주기도 했다. 우리는 참 쉽게도 사랑에 빠졌고, 다음 순간 끝없이 서로을 의심했으며, 곧 헤어졌다. 그 지겨운 되풀이를 참아가며, 나는 걸었다. 그리고 이제 이 문 앞에 서 있다.
문을 열면, 긴긴 잠에 빠진 낡은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을 것이다.
기억들은 더 많은 나이를 먹고 추억이 된다.
그리고 추억들은 하나의 마을을 이루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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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여 안녕한가
깊은 물 속에 잠겨있는 당신, 안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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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어느 부분에서 멈추었다가, 한 번 튀고 다시 돌아간다.
내가 잃어버린 기억 속에 있는 것은 내가 잃어버린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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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지 않아 그 추억은 바닥날 것이다
한줌도 안되는 알갱이에 먼지만 자욱하여
그것으로 내눈이 멀고
두세번 서성대는 것
어느 누가 먼지를 털고 낡은
추억의 끝에 마침표를 찍지 않더라도
스스로 닳아지는 모든 피조물과 같은것
이제 나는 낯익은 먼지 속에서 콜록거리며
마침표를 찍으러  간다
돌아보지 않도록
떠날 수 없도록
적어도 추억으로는
추억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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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날이 너무 많아 내 속에서 추억은 자리를 찾지 못하고
어제의 일도 먼 과거가 내일로 옮겨다니며
서로의 어둠을 잡아먹고 살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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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바뀌어도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고 언젠가 한번 만났던 사람
언젠가 한번 보았던 곳에서 언젠가 했던 말을 하며
그 조합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멀리서 지켜보는 또 하나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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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될까?조차도 눈앞에 보여

이미 너무 많은 삶을 알아 그 삶을 모조리 읽어내고 암기하고 있어,
나는 너를 모두 알고 그래서 떠나고 마치 한권의 소설을 읽고 던져버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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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더이상 나를 울리지 못해 바라건대 제발 너의 자리로 돌아가
아주 먼 옛날처럼 가슴 깊이 묻혀 다시는 지상으로 나오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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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길, 지상에서 단 한번 있었던 나의 사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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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될 줄 몰랐다.
흐린 먼지들이 공중을 떠돌다가 가만히 내려 앉는다.
나는 눈을 비비며 추억을 잊지 않으려고 눈물을 참는다.
이렇게 오래 참아야 하는 건지 몰랐다.
처음 너를 만나 아무런 의심도 없이
내 마음 깊은 곳에 너를 위한 빈 자리 하나 만들던 그때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간다. 알고 있다.
추억들은 눈물에 씻겨 간다. 아직은 참을 수 있다.
너, 한번도 앉지 않은 빈자리에 말간 햇살들이 잠시 머물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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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스쳐가는 이들의 즐거운 발자국 소리가 너를 깨워도
눈뜨지마라, 다시는 지상으로 오르지 마라
투명한 나의 눈물이 너의 마음을 두드려도
믿지마라, 그날 너를 남겨둔 채 내가 서둘러 밖으로 나왔을때
나는 너를 버렸다. 내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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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깊이 사랑했고 많은 날들을 사랑에 잠겨 보냈다.
당신은 무척 행복했지만 나는 밤마다 당신이 떠나는 꿈을 꾸었다.
시간은 흐르고 당신은 나로 인해 가끔 불행했다.
어느날 당신은 내 손을 잡고 당신이 무언가를 잊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의 눈이 자꾸만 그것을 생각나게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당신의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나는 당신이 잊고 있었던 것을 찾기 위해 혹은 잊고 있었던 것을
영원히 잊기 위해 떠나는 길을 막지 못했다.
당신이 잊고 있는 것이 나의 사랑이라고 끝내 말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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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의 사랑이란 한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다.

눈 앞의 풍경들이 바뀌고 모든 일상이 변화한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낯선 선택을 강요받고, 그 선택에 따라 세계는 어느 한쪽으로만 열린다. 당신을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길을 가르쳐주는 지도도 없다. 가슴은 쉬지않고 뛰고 기쁨은 너무나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리고 그런 여행이란,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 언젠가 끝이 난다. 여행이 끝나면 피로함과 추억만 남는다. 사랑은 그렇게 지나가버리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이제는 떠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어느 순간 또다시 짐을 꾸리고 있는 당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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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흘러다니는 사람들도 저마다 나름대로의 운명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당신과 전혀 상관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제 마음 내키는 대로 흘러들어와서 어느 날 훌쩍, 미처 짐을 꾸리지도 못한 나를 끌고 여행길에 올랐다가, 다시 어느 날 갑자기 제 마음대로 떠나가버린다.

기억하라. 사랑은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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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축제 같은 것. 어느날 우연히 이루어진 소풍과 같은 것. 한껏 흥이 올랐다가 저절로 사라져버린다. 사라지고 나면 그것으로 그 뿐. 처음부터 사랑은 그렇게 사람과 상관없이 흘러가는 것이다. 그래도 그런 류의 사랑은 그런대로 견딜만 하다.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진 것이라면, 얼마든지 복종할 마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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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이상하리만치 텅 비어 있었다. 가을은 이미 깊어질 대로 깊어져서 나무들은 그들의 잎을 하나도 남김없이 떨어뜨렸다. 지금 당장 하늘에서 펑펑. 흰 눈송이들이 쏟아져 내린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십일월이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내 몸속 깊은 곳에서 바스락 바스락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색깔을 잃고 향기를 잃고 물기를 전부 잃어버린 채 하릴없이 땅에 떨어진 낙엽처럼 쓸쓸했다. 내 팔에 매달려 있는 두 손은 어느 순간 바삭, 하고 부서질 것 같았다.
나는 교정의 잔디밭에 엎드려 릴케를 읽고 있었다.
여섯시가 조금 넘었고 사람들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는가. 글씨들이 흐려 보이더니 릴케의 시집 위로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졌다. 빗방울이 <두이노의 비가>를 적시고. 바삭바삭하게 말라 있는 내 손을 적시고. 마지막으로 나의 온 몸을 적실 때까지. 나는 잔디밭에 그대로 엎드려 있었다. 이대로 비를 맞다가 잠이 들어버릴 수는 없을까. 잠이 들어 그대로 이 세상을 떠나버릴 수는 없을까. 그래서 어디 먼 바다 깊은 곳에 물고기가 되어 다시 태어날 수는 없을까. 나는 비에 젖은 채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바다를 택할 수 있다면. 그래. 따뜻한 바다가 좋을 거야. 나는 열대어가 되는 것이 좋을 꺼야. 푸른 줄무늬가 딱 하나만 들어간 작은 오렌지색 열대어. 부드러운 해초 속에서 잠을 자고 아름다운 산호숲에서 놀아야지. 사랑도 해야지.
아주아주 단순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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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그런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상실되어 있다.
상실된 부분이 채워지는 순간, 그 나머지 것들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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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같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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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그런 사랑을 해본 적이 있는가. 나는 그렇게 유령 같은 사랑에 시달리고 있었다. 형체도 없고 소리도 없고 시작도 없고 끝도없는 죽음 같은 사랑. 나는 사랑을 하였지만 그것은 나의 사랑이 아니었다. 사랑은 희미하게 내 주위를 떠돌고 있었을 뿐. 나를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그것을 지켜볼 수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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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가.
나는 그것을 향해 손을 내밀 수도 없었다.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나는 사랑 속에 빠진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부터 한 걸음 혹은 그 이상을 떨어져서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것은 마치 사랑이 아닌 것처럼 내눈에 비쳐졌다.
나는 객관적이고 냉정한 마음으로 나의 사랑이 제멋대로 놀아나는 것을 보았다. 제발 그러지 말아라. 내가 아무리 빌어도 그것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생명으로 충만한 사랑이 아니었기 떄문에 나는 그것이 얼마 못 가 힘을 다하고 사라지리라고 믿었다. 그래서 언제나처럼 심심한 일상으로 돌아오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유령 같은 나의 사랑은 그것조차 허락해주지 않았다.
참을 수 없는 밤이 되면, 나는 때떄로 그것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이제 끝을 내!
그러나 그것은 잔인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끝을 낼 수는 없어. 처음부터 시작이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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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출구가 없는 미로 속에서 길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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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세월 흘러 너를 우연히 다시 만나니..
나는 변하지 않았는데 너도 변하지 않았구나
그러니 우리 가까워지지도 멀어지지도 못하겠구나
사랑을 하여도 금세 이별이겠구나
수천번의 봄이 되풀이 되고 수억의 꽃봉오리 피고져도
내가 있는 풍경 속에서 너도 늘 그렇게 슬픈거구나

먼 세월이 흘러 너를 우연히 다시 만나니..
나도 변하지 않았는데 너는 변하였구나
그러니 우리처음으로 돌아갈 수가 없는거구나
갈기갈기 찢어진 그리움을 너도 이제 모르는구나
수천번 네 이름을 부르며 그토록 긴 시간을 통과했는데
나없이 너도 혼자 이렇게 아름다워졌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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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나의 추억들을 가지고 갔다. 당신이 나의 꿈을 가지고 갔다. 당신이 나의 운명을 가지고 갔다. 당신이 나의 별들과 달과 해를 가지고 갔다. 당신이 나의 무지개와 나의 꽃들과 나의 바다를 가지고 갔다. 당신이 나의 자유를 가지고 갔다. 당신이 나의 사랑을 가지고 갔다. 한번도 나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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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이 흐르면, 지금의 이 슬픔도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결국 내가 영원히 소유하고 싶었던 것은 처음부터 이 세상에 없었던 것이 될 것이다.

황경신, 나는 하나의 레몬에서 시작되었다

2016년 가을, 교토京都 | D5 | Analog Efex Pro 2

카테고리:Essay태그:, , , , , , , , , , , , , , ,

1개의 댓글

  1. 황경신님의 글과 너무 잘 어울리는 사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봤어요.

    Liked by 1명

  2. 우왕~~~종합선물인가요. ㄷ
    고생 많았습니다.^^

    좋아요

  3. 아~ 넘 좋아요. 캔맥주라도 한잔 해야할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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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이제 겨우 맘잡고 열심히 살아보려는데
    또 가슴에 불을 지피다니…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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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사진은 글과 함께 읽어야 더 좋구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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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원래 스타레스님 사진은 좋은 것은 다 알고 있었습죠.
    그런데, 글이 오늘따라 엄청난 내공을 뿜어 내시길래~ ㄷㄷ
    하지만 마지막 엔딩크레딧을 읽은 후~ 털썩~

    근데, 둘다 잘 어울어 지니 좋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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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경신씨의 글을 워낙 좋아하는데, 어쩌면 정서적으로 많이 닿아있다는 생각을 했네요.
      별다르게 편집 없이 그냥 툭툭 썰어넣었는데 대충 어울리는 걸 보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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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방구석 세계여행 다시한번 알히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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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덕분에 몸편히 잘 다녀왔는데, 이렇게 여행 이후의 감정까지 다독여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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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아침에 보았는데도 아려지는 글과 사진입니다. 밤에 안본게 그나마 다행이예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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