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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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부처를 인도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부처는 네팔 남부의 작은 부족 국가 카필라바스투에서 태어났습니다. 두 번째 네팔로의 여행을 계획하며 꼭 들러보고 싶었던 곳, 룸비니(Lumbini)는 바로 부처의 고향입니다.

룸비니로 가기 위해서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Kathmandu)에서 비행기나 버스를, 포카라(Pokhara)에서는 버스를 이용해야 합니다. 저는 이동 시간을 줄이고자 차를 한 대 빌렸습니다. 덕분에 깎아지른 벼랑으로 이어지는 싯달타하이웨이를 여섯 시간 동안 달리게 되었습니다.

룸비니의 첫 인상은 거대한 평원 위에 존재하는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소 한 마리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그야말로 그림같은 곳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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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룸비니 중심가에서 숙소를 찾았으나, 곧 대성석가사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대부분 만실이었고, 남은 곳은 비쌌거든요. 대성석가사는 네팔에 있는 유일한 한국 사찰입니다. UN의 룸비니 개발 계획에 따라 설치된 사원 지구(Monastic zone)내에 있는데, 룸비니에서 가장 큰 사찰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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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석가사에서는 작은 금액을 지불하면 하루 세끼 식사와 숙박을 제공합니다. 그래서 한국인 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많이 묵습니다. 한국에 있는 절들에 비해 워낙 커서 위축되는 기분도 들지만, 고요한 사찰을 연상하셔도 좋습니다. 참고로, 네팔에서 거의 유일하게 고추장과 김치를 무한 리필로 드실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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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풀고 동네 산책을 나섰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룸비니는 전형적인 시골마을이고 조용한 농촌마을이기도 합니다. 절 앞에는 노점상도 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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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지구를 돌아보기 위해 인력거를 탔습니다. 절들을 모두 볼 계획이었는데, 한 시간만에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저처럼 덩치가 큰 사람이 비쩍 마른 아저씨의 인력거를 타고 가니, 뭔가 그림이 이상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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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거 대신 대성석가사에서 자전거를 빌렸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인근 절들을 열심히 돌아다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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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와 미얀마, 중국의 절을 돌아보고  마야 데비 사원(Maya Debi Temple)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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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어머니인 마야 데비 왕비의 사원이자 부처가 태어난 곳입니다. 기원전 300년 경에 세워진 곳으로, 부처를 씻겼다는 구룡못(Puskarni Pond)과 당시의 기단들이 있고, 그 유명한 아쇼카석주도 여기에 있습니다. 매년 수천만의 신도들이 성지순례로 찾아오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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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 나무 사이를 천천히 걷다 나무아래 앉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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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룸비니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대부분 아는 곳입니다. 서유기에 나오는 서역천축국 – 손오공과 저팔계, 사오정이 삼장법사를 모시고 간 곳이 바로 룸비니입니다. 그래서인지, 손오공의 후예들이 어슬렁거리고 있더군요.

원숭이들을 놀리다가 돌아보니 보리수나무 아래에 한 소녀가 앉아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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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열살 쯤 되었을까, 한 소녀가 참배객들에게 뭔가를 해주고 있었습니다. 다가가보니 사람들이 소녀에게 고개 숙이면 이마에 티카를 찍어주거나 손을 맞잡고 뭔가 축복을 하고 있더군요. 제가 멍하기 보고 있으니, 저를 불러서는 제 손목에도 몇 가닥의 실을 감아주고 축복을 내려줬습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손짓 발짓하며 얼마를 주면 되겠냐 물어보니, 그냥 주는 거라며 돈은 필요없다고 합니다. 미안한 마음에 인사하고 돌아섰는데, 며칠 후 만난 한 스님으로부터 이 소녀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 소녀는 마야 데비 사원에 있던 힌두교 사두(성직자)의 손녀라고 하더군요. 애초에 마야 데비 사원은 수천년동안 네팔 사람들에게 힌두교 성지였다고 합니다. (조금 복잡한 얘기지만, 힌두교에서는 부처도 힌두교의 수많은 신 중에 하나로 여깁니다.) 그러다가, UN의 개발 계획이 수립되고 이곳을 지키던 힌두교 사두들이 밀려나면서 그 자리에 이 소녀가 앉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흥미로운 것은, 네팔 정부는 이곳을 불교 성지화하기는 했지만, 힌두교 신자들의 출입이나 의식을 막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불교 신자들, 힌두교 신자들, 심지어 이슬람 신자들까지 와서 각자의 종교에 따라 의식을 행하고 예를 드리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그 예의 한가운데에 소녀가 있었습니다.

소녀는, 불교 신자가 오면 염주나 실을 건네면서 축복해주고, 힌두교 신자가 오면 이마에 티카를 찍어주면서 축복해주고, 이슬람 신자와도 손을 잡아주면서 6년 째 이곳을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가지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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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면은 집으로 돌아가던 사람들입니다. 저녁 무렵, 지평선까지 뻗은 길 위에 서서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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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비니에서의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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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

  1. 아직도 마음이 부처님 고향에 남아계시는 것은 아니신지~ ^^;

    처음 사진에서 보여주셨던 차에 앉아~ 마치 제가 따라가는 듯한 느낌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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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전생을 믿고 내세를 믿는 그래서 현생에 아등바등하지않는다죠?
    내려놓음을 배울수 있는 여행을 하신 스탈님 넘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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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네팔은 카트만두와 포카라 외에 가보질 못해서 너무 아쉽기만 합니다…
    아… 룸비니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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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역시나 멋진 글과 사진.
    전 가끔 그래요.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인연이 된 것이.
    행복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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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읽고 나니 마치 제가 다녀온 듯한 느낌이네요. 언젠가 가보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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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난 이 포스팅을 보면서.
    카메라 세대는 목에 걸고 다녀야 겠구나 싶네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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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저 어린 소녀는 어떤 신념으로 저 자리를 저렇게 지키고 있는걸까요?
    그런데 저 대성석가사는 대부분 시멘트로 만든 절인가요? 회색인게 나무는 아닌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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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녀의 눈을 마주했는데, 아주아주 맑았어요. 그 눈빛으로 평온하게 마주쳐오는데 현자를 보는 기분이었죠. 어쩐지 울고싶어졌던 것 같아요.

      건축용 목재가 흔하지 않은지 돌을 많이 사용했더군요. 채색도 할거라고 했는데 최근 모습이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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