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am 3:45


초저녁 종로께에서 시작된 술자리는 밤이 깊어도 끝날 줄 모르고 을지로로 또 논현동으로 그렇게 강을 넘나들며 술한잔 한잔 얹고 또 얹다가 그래도 술이 모자랐는지 누군가의 호기로 인해 새벽 3시가 넘어 알콜에 재여진 몸을 이끌고 찾았던 노량진 수산시장…

지난 밤 늦은 시간까지 수많은 사람들과 그 수만큼의 사연들로 북적였을 시장은 상인들도 손님들도 철수한 파장이라 어둡고 한산했다.

평상시였으면 문에 달라붙어 서로 자신의 가게로 들이려는 이모들의 호객행위로 이동조차 쉽지 않았을텐데 이 시간의 시장을 찾은 취객들은 아무래도 달가운 손님이 아닐터…

호객은 커녕 몇안되는 불켜진 식당들도 대부분 비어있었고 졸음을 참느라 연신 하품중인 이모들의 심드렁한 표정만이 우리를 맞고 있었다. 그리고 그 표정에는 모두 한마음으로 저 이상한 술꾼들의 마지막 술자리가 우리가게가 아니었으면 하는 염원이 담겨 있는 듯해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렇게 환영 받지 못하는 손님이라니…풉~’

그래도 그나마 표정이 나은 이모를 찾아 평소엔 와보지 못했던 외진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술이 두어순배 더 돌고 취기에 잦아진 요의가 느껴져 화장실을 찾아 가게를 나섰다.

낮선 건물의 지하에 자리잡은 화장실에서 시원스레 볼일을 마치고 나오는데 어디선가 노래자락이 흘러 나온다. 오래된 축음기 소리마냥 앵앵 거리는 소리에 이끌려 들어온 방향과 반대편 복도로 들어서자 노래는 좀더 뚜렷이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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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 백설희 할매의 ‘봄날은 간다.‘ 의 2절이다..

그래 봄이었다… 흐드러지게 피어대어 밤이 밤인줄도 모르게 밝게 비쳐주던 벚꽃들도 져내리고 그렇게 노래가사마냥 가버리는 그 짧고 찬연했던 봄날의 끝자락이 노래를 통해 전해졌다.

그리고 바닥에 흘러내리는 붉은 핏물과 노래 소리를 따라 가다 도착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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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자락에 붉은 핏물을 실어 보내던 원천…

아뿔사 나에게는 아직 마무리 짓지 못한 전날이 누군가에게는 이제 막 시작하는 새날이었다.
신성한 작업장을 침범한 한량에게 꼿히는 날카로운 시선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빠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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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돌아 나오는 길에 손질을 마친채 얌전히 상품이 되어 있는 녀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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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이 되기 위해 대기중인 녀석들과 상품조차 될 수 없이 격리된 망가진 녀석에게 뜬금없이 내 자신이 투영되는 통에 괜시리 울컥한다.

그러나 감상도 잠시 화장실에 빠져 죽었냐는 일행의 전화에 부랴부랴 남겨진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식당으로 돌아가는 그 길목에는 부지런한 사람들의 새로운 날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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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봄날 끝자락의 새벽녘.. 취했으나 말짱하고 말짱하나 비틀거렸던 한량의 화장실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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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

  1. 이젠 신건물로 바뀌어 이 풍경도 못 보네요. ㅠ
    아직까진 좀 남아있을려나요.
    근데 예전 유달식당옆에서 보던 풍경과 닮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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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달식당이 우리 우락 삥땅친 초입 지하인가요?
      아님 경철형 단골가게 맞은편의 일층?? 기억에 저기는 거진 노량진역 가까운 깊숙한 곳.. 새우랑 소라같운 거 파는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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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마도 유달식당 근처가 맞을꺼에요.
      우럭삥땅 식당(아마 진주식당), 경철형 단골식당(충남식당)은 굴다리 초입이고 유달식당은 예전 주차장쪽 초입 지하였슴요.
      거기서 화장실을 갈려면 저런 곳을 지나야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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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라페스타님이 은근 리얼리티 포토그래퍼에요. 이런 삷의 현장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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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주변의 갖은 일상을 맹숭맹숭하게 쳐다보고 살아온거 같아서 내심~
    (아니~ 사실~ 라파님 처럼 용기 있게 그리고 옹골차게 주변을 담을 용기가~ T.T)

    덕분에 활기차게 아침을 열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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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새벽 3시의 음주 촬영임에도 사진에서는 전혀 취기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저도 죽도시장에서 술 한잔 걸치고 저렇게 찍어보고 싶어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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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세상에,,, 화장실을 가면서도 작품을 만드시네요,,,
    저도 시장에서 생선을 즐겨 담는데,, 노량진 생선들이 때깔이 아주 좋아보입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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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화장실을 가면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는 열정,
    새벽녘에도 노량진까지 가서 한 잔 하실 수 있는 체력,
    정말 대단하시네요^^
    이젠 없어진 풍경이라는 것에서 많은 아쉬움을 느낍니다.
    백설희씨의 ‘봄날은 간다.’가 이번 작업을 이끈 것 같네요. 시간날 때 한 번 들어보아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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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거 x100으로 찍은건데 그날 내내 목에 걸고 다녔는데 얼마나 취했으면 목에 건채로 술을…
      이젠 열정도… 체력도 쉽지 않아진… 봄날은 간다는 정말 죽여주는 곡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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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음주촬영 전문가.
    ㄷㄷㄷ

    아~~~여전히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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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아주 사람 잡으려고 작정하신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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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여기요. 여기. 소문듣고 왔습니다.
    라페스타님 사진일기 왕팬 여기 왔습니다. 역시 최곱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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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감성이 엄청나군요!! ㅎㄷㄷ
    넘 좋습니다!!
    저도 감성의 살 좀 찌워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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