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있는 풍경_불굴사


팔공산 자락_불굴사

고졸한 고택이나 사찰 어슬렁 거리길 좋아한다. 새벽이어야 제맛이긴 할테지만 요즘은 게을러져서 쉽지 않다. 어디를 가든 그곳에 가면 그곳만의 ‘기운’이 있다. 흙, 바람, 물, 나무, 돌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조화는 때마다 곳마다 달라서 풍류한 이들을 유혹한다.

팔공산 남쪽 기슭(경산시 와촌면) 골짜기 깊숙히 불굴사가 있다. 절집이 눌러 앉은 곳은 웬만하면 바람과 물이 좋다. 이른바 명당이라 혹자는 절집이 들어서서 명당이 되었다고도 하더라만 어쨌거나 푸석한 도심에서 반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이렇듯 고졸한 휴식처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오후가 무거울 무렵 불굴사에 닿았다. 산중턱의 바람이 칼칼하다. 늘어졌던 세포들이 쪼그라드는 느낌은 생명의 맛이다. 법당 턱 밑에 차를 박아놓고 느릿하게 걸었다. 명절앞에 절집은 평온하고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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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입구 주차장, 시계불알처럼 오후가 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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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그림자를 드리우는 해가 따뜻하다. 제법 꼬불한 길을 올라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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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6월 현재 적멸보궁 계단은 무척 아름다웠다. 그나마 절집에 남아 있는 제대로의 모습이라고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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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현재 적멸보궁의 계단, 기어코 이 따위로 만들어 놓고야 말았다.]

이 절집을 가끔이나마 찾아 드는 이유가 볼품없이 훼손되고 말았다. 스님들 필수과목으로 ‘미학’을 포함해야 한다. 스텐과 방부목을 뒤집어 쓴 역사가 궁박하다. 어후~저게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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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 불굴사 삼층석탑 보물 제429호]

잘생긴 탑도 하나 있다. 신라 탑인데 무려 보물이란다. 비례도 좋고 보존상태도 비교적 양호해 보인다. 탑의 규모가 작고, 지붕돌의 치켜올림이 급한 것이 특징적으로 보인다만 문외한이라 더 이상의 안목은 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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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해 놓은 석등, 제법 운치를 풍기는 석등이다.]

복원해 놓은 석등도 하나 있다. 흩어져 있던 석물들을 성기게 다시 엮어 놓았다. 제법 운치있는 석등이다. 석물의 내력으로 볼 때 번성했을 때는 무척 우람했을 것이다. 유구한 내력을 간직한 채 천년을 뒹굴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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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보전에서 바라 본 전경]

원효나 의상이 이 땅에 만들어 낸 절집이 백만 개도 넘을 듯 하지만 여기 하나 더 추가한다고 해서 그 내력이 어찌될 것 같진 않다. 원효(617~686)와 김유신(595~673)의 이야기를 간직한 이곳은 신라 신문왕 10년(690)에 창건되었고,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50여채의 건물과 12암자를 거느린 대가람이었다고 한다. 영조 때 큰 홍수를 만나 매몰되었다가 몇 번의 중창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하는데 구석구석 남은 석물들의 흔적들로 미뤄볼 때 뻥카는 아닌 것 같다.

전해오는 이야기 한토막을 들어보자.

조선시대 절집은 양반들이나 세도가들의 놀이터 정도였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절도 예외는 아니어서 유생들의 횡포에 크게 곤욕을 치루었단다. 그러던 어느 날 점잖은 선비가 들어 객을 청했는데 기운이 범상치 않아 보이는 선비인지라 승려들이 고충을 토로하며 유생들이 찾아오지 못하게 할 방법이 없겠냐고 간곡히 물었다. 선비가 말하길 산 너머 솔밭에 가면 큰 거북돌이 있을테니, 그 거북의 눈을 빼면 더 이상 손님이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승려들이 그 말을 믿고 거북돌의 눈을 빼버렸다. 어찌 되었을까?

천둥과 번개가 치고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더니 결국 산사태가 일어나 절이 모두 묻혀버리고 말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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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굴사에서 200여미터 가파른 돌산을 오르면 원효와 김유신이 수행했다는 석굴이 있다. ‘원효굴’이라고도 한다는데 지금은 ‘홍주암’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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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암 가는 길]

이런 계단을 조금 오르면 암벽등반(?)을 해야 한다. 거의 수직벽이지만 오르는 계단을 잘 만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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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암 석굴]

석굴엔 조악한 마애부처님과 금강역사가 조각되어 있고 기도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막걸리병 소주병이 멋지다. 부처님께서 소주를 좋아하신다는 건 처음 알았다.

김유신이 마시면서 삼국통일의 의지를 다졌다는 약수(아동제일약수)도 있다.

무속인들이 이곳을 많이 찾는 모양이다. 무속행위를 하지 말라는 간판이 커다랗게 붙어 있다. 불전에 올려진 술병들을 보니 벌써 여럿 다녀간 모양이다. 풍수적으로 팔공산 갓바위가 양의 기운이라면 이곳 불굴사가 음의 기운이라고 한다. 갓바위 가서 기도하고 이곳에 들러 기도를 하면 그 기도를 들어 주신다고 하는데 제법 맛있는 이야기다.

다녀가는 무속인들이나 기도하는 분들이 지킬것만 지켜 준다면 흉물스럽게 늘어선 입간판들을 없앨 수 있지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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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암 꼭대기 독성각에서 바라본 전경]

꼭대기엔 ‘독성각’이라는 작은 전각이 있고, 이곳에선 제법 시원하게 조망이 터진다. 지긋한 장년의 아저씨 세분이 무언가를 감추면서 급하게 자리를 피한다. 어떤 무속행위를 마치는 중이었던 모양이다. 다른사람들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야 무슨 상관일까. 그저 다 좋자고 하는 것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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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왔다. 해우소 들렀다가 조금 떨어진 환성사로…

2016. 2. 5(금) / GR

카테고리:Drifting, Essay태그:, , ,

1개의 댓글

  1. 풍경도 좋지만, 석등이 특히 좋네요.
    저런 등을 만나면 ‘이걸 어째야 하나’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가 돌아오곤 한 기억이에요.
    집 근처의 길상사나 보문사 둘 다 계절의 아름다움은 있어도 절 자체는 그닥 볼게 없어서 안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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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역시나…(2)

    글과 사진이 넘 감동입니다!!
    특히나 글은 정말이지 ~ ㅎ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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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불굴사의 스님들은 우리의 옛것을 보존하시겠다는 불굴의 의지가 없으신지~ T.T

    난간 때문에 가슴이 아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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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역사 공부가 저절로 되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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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역시나…(3)
    좀 내비두면 좋겠는데 자꾸 뭔가 바꾸니까 참 속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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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니까요. 걍 좀 내비두지 말입니다^^
      낙상할까봐 그랬나본데 그래도 속상하더만요.

      그러고 보니 교토에서 만난 절집들이 생각납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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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요즘 절은 절 같지가 않아서 적잖이 실망하게 되는 것 같아요. 돈 있으면 돈 있는대로 새걸로 바꿔대서…잘 보존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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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급급하게 마감한 이 글처럼 … 그들도 급급한게 아닌가 합니다. 외소하고 빈약한 사유라고나 할까요! 풍류가 필요한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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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홍주암 부조불좌상이 인상적이네요. 부처님의 얼굴은 그리 잘 새긴 편은 아닌 것 같은데 옷주름은 또 아주 세련된 기법인 것 같고 흥미롭습니다. 시간될 때 한번 들러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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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제목보고 오타난 줄 알았어요..
    불국사보다 소박하지만 한적하고 조용한게 더 좋아보입니다.
    덕분에 또 하나의 역사를 배워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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