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치게 사랑해서


역사가 있는 풍경_ 감은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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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말머리를 더 몰아 감포 앞바다로 향한다. 이곳에 가면 장군의 기상이 넘치는 우람한 두개의 탑을 만날 수 있다. 감은사지 삼층석탑이다. 이 탑은 그대로 ‘장대하다.’ 여러분들은 돌덩이가 말을 걸어오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는가! 무언가 속삭이는 듯해서 동작을 멈추고 저절로 귀를 기울이게 되는 그런 경험이다. 아차 하고 돌아보면 휑한 바람만이 너른 들로 몰아쳐 지나간다. 명작은 따로 설명이 필요치 않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은 충분하기 때문이다. 탑의 피부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튼실함이 그대로 내 힘줄로 전이되는 느낌은 오르가즘이다. 그 그늘에 들어 오뉴월의 굵은 땀을 식힌다.

폐사지에 서면 감당할 수 없이 꽉 찬 여백을 만난다. 무너지고 스러진 것은 사연과 슬픔이 없지 않을 것인데 아직 다하지 못하고 남은 말은 남은 흔적이 되었다. 텅 빈 공간에서 눈을 감았다. 천년의 시간을 만나야지.

법민은 춘추와 문희 사이에서 태어났다. 정치적이고 영민한 아버지는 가야핏줄이 섞인 아들을 지키고자 일찌감치 당으로 보냈다. 얼마 후 아비 춘추는 왕(무열왕)이 되었고 후일 아들이 이룰 통일의 초석을 다졌다. 당군을 따라 돌아온 법민은 죽은 아비를 이어 왕(문무왕)이 되었다. 약한 자가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강한 자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외소한 통일이라고 비판을 받을 지언정 역사는 살아남은 자의 것이다. 당의 힘을 빌어 고구려와 백제를 멸한 왕은 신라까지 날름 먹으려는 당을 몰아내고자 진력하였다. 그 간절한 염원을 담아 사천왕사를 열고 불력을 힘을 빌었다. 왕은 나라를 다스린 지 21년 만에 죽으면서 바다에 장사하라고 유언하였다. 왕은 평소에도 “내가 죽은 뒤에는 원컨대 나라를 수호하는 큰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킬 것이다.”고 말하였다.

왕은 불력의 힘을 빌어 왜구를 몰아내고자 하였다. 동해 바닷가에 절을 짓기 시작했으나 완성을 보지 못했다. 정명(신문왕)은 아버지 왕이 돌아가자 즉위하여 부왕의 유지를 이었다. 절을 완성하고 아버지 왕을 기리기 위하여 감은사라 했다. 지금도 남아있는 금당터 바닥은 60cm 높이의 텅 빈 공간이다. 절의 남쪽에 대종 천과 연결된 수로를 만들고 웅덩이도 만들었다. 동해용이 된 아버지가 드나들면서 편히 쉬시라는 효심이다. 더불어 거대한 두 개의 탑을 올렸다. 감은사터 3층 석탑이다.

이 탑은 남아있는 탑 가운데 가장 우람하다. 자부심과 당당함이 넘친다. 생각건대 아들은 아비를 닮은 탑을 지었을 것이다. 동해용이 되겠다던 부왕의 기상을 닮은 탑이어야 했을 것이다. 기록을 살펴보면 문무왕의 기상은 역시나 탑을 닮았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고려와 백제를 멸하고 당을 몰아냈으며 죽어서까지 왜구로부터 나라를 지키겠다던 왕의 생애는 그대로 영웅의 삶이었다. 아들 신문왕은 부왕의 서원이 서린 대왕암을 바라보기 좋은 곳에 이견대를 지어 감은사와 삼각 축을 만들었다. 유신의 혼령에게서 만파식적을 얻은 곳도 바로 이 곳 이견대다.

부자의 위대한 이야기가 서린 이곳에서 유구함에 대해서 생각했다. 텅 빈 공간에 유산으로 남은 바람의 시를 생각했다. 오줌으로 완성된 여인의 욕망에 대해서 생각했다. 오줌 꿈을 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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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leica M6 + Summicron 35mm 5th + 400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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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에서 빌려온 법민의 출생이야기다.

제29대 태종대왕의 이름은 춘추요 성은 김씨이다. 용수각간으로 추봉한 문흥대왕의 아들이요, 모(母)는 진평대왕의 딸 천명부인이다. 비는 문명황후 문희니 곧 유신공의 막내 동생이었다. 처음에 문희의 언니 보희가 꿈을 꾸었는데, 서악에 올라가 오줌을 누니 서울에 가득 찼었다. (그 이튿날) 아침에 동생과 꿈 이야기를 하는데, 문희가 듣고 말하기를 “내가 이 꿈을 사겠다.” 하였다. 언니가 “무엇으로써 사려하느냐?” 하니, 말하기를 “비단 치마를 팔면 되겠어요?”언니가 좋다고 하였다. 동생이 옷깃을 벌리고 받으려하니 언니가 “어젯밤 꿈을 너에게 준다.”고 하였다. 동생은 비단치마로 갚았다. 열흘 후에 유신이 춘추공과 같이 정월 오기일(午忌日)에 자기 집 앞에서 공을 차다가 일부러 춘추공의 옷을 밟아서 옷끈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우리 집에 들어가서 달자고 청하니, 공이 그렇게 하였다. 유신이 아해(보희)에게 꿰매드리라 하였는데, 아해가 말하기를 “어찌 사소한 일로 가벼이 귀공자를 가까이 하겠습니까?” 하고 사양하였다. 유신이 아지(문희)에게 명하였다. 공이 유신의 뜻을 알고 드디어 상관하였다. 그 후부터 (공이) 자주 왕래하였다. 유신이 누이가 임신한 것을 알고 꾸짖기를 “네가 부모에게 고하지도 않고 아이를 배었으니, 이 무슨 까닭이냐?” 하고 국 중에 말을 퍼뜨리며 누이를 태워 죽인다고 하였다. 하루는 선덕왕이 남산에 놀러가는 것을 기다려 나무를 마당 가운데 쌓고 불을 지르니 연기가 피어났다. 왕이 바라보고 무슨 연기냐고 물으니, 좌우가 아뢰기를 아마 유신이 누이를 태우려고 하는 것 같다고 하였다. 왕이 그 이유를 물으니, 그의 누이가 남편 없이 임신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였다. 왕이 “이것이 누구의 소행이냐?” 하였다. 마침 공이 앞에 모시고 있었는데 얼굴빛이 크게 변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이것은 너의 소행이니 속히 가서 구하라.” 하였다. 공이 명을 받고 말을 달려가서 죽이지 못하게 하는 뜻을 전하고 그 후에 곧 혼례를 행하였다. _ 삼국유사, 태종 춘추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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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Nikon F3 + nikkor 35mm + 400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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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 김에 탑에 대해서 간단하게 알아보자. 자세하게 설명할 내공이 없음을 양해하시라.

탑은 애시 당초 분묘였다. 그러니까 무덤이었던 거다. 최초의 탑이 석가세존의 무덤을 장식하는 과정으로 출발하였다고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설이고, 하루아침에 생겨나는 문화와 풍속이 있을리 만무하다.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면서 이 시대에 발전을 이루었을 것이다. 문화는 전래와 전승을 통하여 고유의 색을 입는다. 중국에서 전래된 목탑양식은 황룡사9층 목탑으로 완성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신라 목탑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목탑은 규모가 크고 보존이 어렵다. 우리나라와 같은 작은 나라에서는 전승 발전되기에 재정적으로나 규모면에 있어서 어울리지 않았다. 우리에게 더 어울리는 방식이 필요했을 것이다.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석탑이 발단한 까닭은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 석탑은 흔하게 구할 수 있는 화강암을 사용하여 두 갈래의 형태로 발전하였다. 중국의 전탑을 모방한 모전석탑과 우리가 흔히 만나는 독창적인 석탑의 형태이다. 모전석탑은 형태적으로 전탑을 모방하였으나 재료가 화강암이다. 전래된 방식을 따르되 재료와 규모에서 우리의 방식을 찾아 발전시킨 것이다. 이후 정형석탑의 형식으로 흡수되면서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석탑은 전탑이나 모전석탑과는 달리 우리 고유의 형태로 발전한다. 기존의 목탑을 모방하여 그 의미는 살리고 규모와 구조는 단순화 시키는 독특한 형태로 발전한 것이다. 흔히 구할 수 있는 석재를 활용하고 크기를 줄였기 때문에 융성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석탑의 양식은 세계적으로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독창적인 것이라고 한다. 화강암을 기본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그 시원을 대략 600년경으로 추정한다. 현재 남아있는 석탑으로 가장 오래된 탑은 정림사지5층 석탑이다.

석탑은 기본적으로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의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기단부는 하층기단, 상층기단으로 구성되는데 백제계 탑에서는 일부 단층기단으로 만들어진 탑도 있다. 기단에서 덮게(받치는)는 갑석이라 하고 바깥 기둥을 ‘우주’ 안쪽 기둥을 ‘탱주)라고 한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 건물의 벽을 상징하는 면석이 있다. 탑신부는 몸돌(탑신)과 지붕돌(옥개)로 3, 5, 7, 9등 홀수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몸돌에는 우주가 새겨져 있다. 탑의 규모가 클 경우 몸돌을 이어 만들기도 했으나 대부문 통돌을 사용하였다. 지붕돌은 목탑의 지붕에 해당된다. 윗면을 경사지게 다듬고 끝은 살짝 치켜 올렸는데 전통 기와지붕의 선을 살려 아름다움을 한껏 뽐낸다. 돌을 마치 흙이나 나무를 다루듯 자유자재로 다듬은 솜씨에 탄복할 따름이다. 상륜부는 다양한 상징들이 찰주에 꿰어져 탑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아쉽게도 이 찰주가 세월을 견지지 못하고 무너져 내려 상륜부가 살아있는 탑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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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UREE

카테고리:Drifting, Essay태그:, , , , , , , , ,

1개의 댓글

  1. 그러니까, 이제서야 폐사지의 의미를 이해했습니다.
    룸비니의 마야데비사원도 묘하게 폐사지 분위기를 풍겼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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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재미지게 잘 봤습니다.. 저도 경주의 사적들을 찬찬히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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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일전에 석탑 갖구선 술자리에서 이야기 하다가~ 친구놈에게 쿠사리를 먹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옥개석이라는 단어를 몰라서 어물 어물~ 거시기 뭐시기 하고 있었더란~
    근데, 지금 올려주신 그림을 보니 말입니다. 정작 제가 말하고 싶었던 부분이 옥개석이 아니라 옥개받침이었습니다. ㅋㅋ

    네~ 녀석이 지적질을 좀더 깨알 같이 했다면~ 녀석도 살이 되고 피가 되는 술자리였을 텐데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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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저도 가장 좋아하는 절터가 감은사지입니다. 탑에서 느껴지는 당당함이란 비단 그 크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 아니지요. 모전탑 얘기하니 문득 대학교 때 교수랑 싸워 이겼던 일화가 떠오르네요. 교수님은 분황사탑을 전탑이라, 저는 모전탑이라 하며 대립했고 당연히 다음 수업시간에 저의 윈으로 확인되었.. 그래서 학점을 안주셨나 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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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사진에 대한 지식, 역사 지식에 건축물 지식까지!!!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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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이건 뭐 사진만 좋은게 아니라 그냥 한국사 수업인데요. 잘 배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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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오래전 지났던 곳이라 꿈인지 생신지 가물합니다. 좋은 글과 좋은 사진 새겨서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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