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속으로


 

 

1편 다시보기  통영, 한국의 나폴리

2편 다시보기 통영, 막연한 기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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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가에서 마시는 술은 이상하게 취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속설을 증명하려는 것인지, 실제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바닷가에서는 조금 더 들이키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보낸 지난밤의 생각과 아침 속사정은 조금 다르다.

새벽 5시에 눈을 떠야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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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김밥집과 횟집, 생선국 집이 많아 관광객이 몰리는 중앙시장과 달리, 서호시장은 건어물과 조리하지 않은 해산물을 주로 취급하는 전통적인 어시장에 가깝다.

아직 해도 떠오르지 않은 새벽, 전혀 시장 볼 자세가 되어있지 않은 나에게,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던지는 아주머니의 소심한 호객행위는 달콤한 세레나데와 다름없다.

“아재요, 찾는 거 있습니꺼? 사진은 또 뭐하로 찍는데… 그라지 말고 이거 좀 보고 가이소”

“예, 시락국 한 그릇 하고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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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시장 속을 쭉 가로질러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돌아보면 사잇길에서 만나는 시락국 가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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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 훈이 시락국을 찾는 이유는, 칼칼한 시락국과 함께 고를 수 있는 대여섯 가지 반찬을 마주하고 있자면 지난밤의 일들이 다시 한번 꿈같이 떠오르기 때문이랄까? 마침내 한입 뜨는 순간, 새벽 5시경에 이미 오늘 하루를 다 보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게다가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밤을 보낸듯한 얼큰한 모습의 갯가 거친 사내들 얼굴을 마주할 때면, 묘한 동질감과 함께 측은지심의 연민이 불쑥 치고 들어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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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커피를 한 잔 하고, 이제 진짜 통영속으로 들어갈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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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만약에 내가 가는 곳을 안다면, 나에게 그 길을 알려주면 좋겠다.

언젠가 내가 길을 잃어도 너의 눈으로 그곳에 찾아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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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언젠가 길을 잃었을 땐 역시 천국보다 낮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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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진도의 추억은 언제나 늦여름이다. 성수기에 북적거리던 기억은 이미 아련하고, 늦더위를 타박하며 한적하게 보내는 가을의 전주곡만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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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을의 소매물도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보석과 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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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집에 짐을 풀 겨를도 없이 주인에게 물때를 물어본다.

4시쯤이면 등대섬길이 열릴 것이라는 말에 급히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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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만 해도 비포장이었던 등대섬 가는 길. 둘레길의 열풍으로 이곳에도 산책로를 따라 데크가 놓여있다.

힘들지 않다는 남자 친구의 말을 믿고 굽 있는 구두를 신고서 등대섬으로 나섰다가 부러진 구두 굽을 부여잡고 원망의 넋두리를 쏟아내던 몇 년 전 어느 여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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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물때가 들어서 4시에 길이 열릴 것이라던 민박집 주인장의 물때 예보는 틀렸다.

(조금 물때 : 바닷물이 가장 적게 들고 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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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올 수 없는 곳이니 조금만 더 민박집 주인장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1시간 가까이 지나서 물길이 조금 빠진 듯했지만 기어이 길을 내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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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턴도 없이 나선 길이라 더 기다리기는 어려웠다. 이번에는 먼발치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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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숙소로 돌아오려면 한참인데 순식간에 바닷속으로 사라지는 해.

등대섬에 가겠다는 욕심으로 더 머물렀다면 낭패를 볼 뻔했다.

둘레길에서 바라보는 석양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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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부터 배가 들어오는 것을 보니, 주말이다.

문득, 민박집 주인장이 알려준 등대섬으로 가는 잘못된 물때 정보가 떠올랐다.

소매물도의 주인이 누구고 원주민이 또 누구이며, 그 갈등이 어떻게 이어져 가고 있는지는 IMF 이전으로 넘어간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몇몇 사람이 공동소유로 섬을 샀지만 IMF로 인해 관리를 하지 못해 그 소유가 대리로 관리를 해주던 사람으로 넘어갔다는 소문을 들었고, 그전까지는 별 탈 없이 지내던 원주민들이 소유권이 바뀌면서 점점 합의하에(?) 밀려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예전에 원주민들은 작은 농사와 낚시, 민박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7년 전에 왔을 때 묶었던 원주민 민박집 아들의 물때는 틀리는 법이 없었다. 낚시터면 낚시터, 등대섬으로 열리는 길의 시간 등.

농어를 몇 마리 잡아왔는데 같이 먹자며 밤중에 방문을 두드리던 아들의 얼굴이 아직도 생각난다. 회와 함께 나누던 소주를 들이키며, 당시 이 섬과 어울리지 않게 무허가로 지어 올리던 펜션을 가리키면서 “저거 허가가 안납니더. 이 청정해역에 저렇게 해서 사람 들어오면 섬도 죽고 바다도 다 죽는데…” 하던 말도.

하지만 그 펜션은 허가가 났고, 몇몇 펜션이 더 생겼다. 그때 그 민박집에 아들과 노모는 아직 소매물도에 사는지 찾지를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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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려오는 인파를 피해 선착장 옆쪽 한적한 곳에서 바다를 보며 망중한을 보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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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시장 낚시점에서 산 싸구려 낚싯대를 드리워 놓고 세월을 낚는다. 와인도 한 잔 더하면 바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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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에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멍게와 소라, 해삼을 파는 분들이 대부분 원주민이다.

애매하게 끓어오르는 감정은 소란스러운 관광객들에 묻혀버리고, 어쨌든 나도 한 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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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천국보다 낮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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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낚시꾼들에게만 아름아름 소문났던 섬이, 과자 광고로 다소 유명해지긴 했지만 접근성이 좋지 않아서 이렇게까지 사람이 많이 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당일 둘레길 산책로가 소문나면서 주말이면 매시간마다 통영과 거제에서 배가 들어왔다 나간다. 고요함을 넘어선 적막함이 좋았던 평일 밤은 온데간데없고, 아침부터 두런두런거리며 무례하게 민박집 안으로 불쑥 들어와 이것저것을 캐묻는 사람들까지 있으니 더 이상 섬에서의 고독은 즐길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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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배를 타야 하는 둘레꾼들은 한두 시간 안에 줄지어 섬을 훑고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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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을 돌아 밀물처럼 빠져나간 인파 대신 다시 평온이 찾아왔다. 통영, 그 속에 들어가서는 꼭 두어 밤을 보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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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작은 섬에서 바라보는, 커다란 응어리가 바닷속으로 잠기는 풍경은 조금 특별하다.

고립된 장소에서 느끼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암울함과, 별 다를 것 없는 좁은 섬에서 반복될 일상의 지루함이 한없이 작은 몸을 짓누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이유 때문에 육지에서 느끼는 번뇌와는 결이 다른 평온함이 온 세상을 감싸는 기분도 함께 느낄 수 있다.

오늘 문득 “농어 두어 마리 잡아왔는데, 회 안드실랍니꺼?” 하던 음성이 떠오른다.

따뜻한 봄이 오면 통영,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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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속으로…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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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

  1. 통영 100%~ 아니 알쏙 200% 활용기~ 감사합니다.
    잘 활용해 볼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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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통영의 구석구석을 알려주시네요^^
    통영도 다시 한 번 가봐야겠습니다. 매몰도 못가본 것이 참 아쉬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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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낮술과 천희면 족할 듯 합니다.
    천국보다 낮술이죠 ~~네~~~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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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좋네요.. 특히나 소매물도는 저에게도 이젠 기억으로만 남은 섬이 되겠네요..
    욕지도도 좋은데 이젠 매물도 대신 욕지도를 파야겠네요.
    더 그마저도 늦기전에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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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욕지도는 아무래도 섬이 크니까 느낌이 조금 다르지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근데 들어가본지 오래고 사진도 거의 없어서 이야기에 넣지를 못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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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아~~좋습니다!!
    섬으로의 여행 별로 안좋아하는데 선입견을 바꾸어주시는군요!
    그리고 술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갑자기 술이 땡기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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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아 통영 여행은 이렇게 해야하는군요. 문득 지금 와이프랑 연애할 때 소매물도를 찾았던 기억이 납니다. ‘얼마 안걸려.’ 라는 제 말에 별 생각없이 따라 나섰다가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힘들어하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아마 다시 가자고 해도 안갈 것 같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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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소매물도는 2박! 등산화는 필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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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소매물도에서는 2박을 해야하는 것이었군요.
    아…. 다시 갈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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