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있는 풍경_환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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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제법 우람한 나무들이 시립해 있고 멀리 수월관이 보인다.]

어수선한 마을과 공장을 지나고 부서져 울퉁불퉁한 시멘트 길을 몇 번 지나서야 산사를 찾는 듯한 분위기가 난다. 산길이다 싶은 길을 조금 더 달리면 훤하게 트인 너른 공간을 만나게 된다. 바로 이 곳, 팔공산 남쪽 끝 닿은 무학산 자락(경산시 하양읍)에 천년고찰 환성사가 조용히 앉았다. 이곳은 오며가며 들러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답사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조차 맘을 먹고 일정 한귀퉁이를 잘라 놓아야 놓치지 않을 곳이기 때문이다. 가까운 곳에 동화사, 은해사와 같은 대가람이 있어 빼먹기 쉽고, 그렇다고 이 절집만 보고 하루를 빼기엔 조금 서운한 감이 없지 않다. 동화사나 은해사를 찾는 길에 거조암과 함께 살짝 다녀가 봄즉 하달까. 내가 이 절집을 처음 찾았던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절 입구까지 잡풀이 무성했다. 불사가 분주한 근래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번다하지 않은 조용한 절집이었다. 한갓지게 어슬렁거리길 좋아하는 베짱이에겐 꽁꽁 숨겨두고 싶은 그런 곳이랄까.

산이 성처럼 절집을 둘러싸고 있다고 해서 환성사라 했다고 한다. 신라 흥덕왕 10년(825년)에 동화사를 창건한 삼지왕사가 창건했다. 현직 왕의 아들이자 왕의 스승이었던 분이 창건한 사찰이었으니 사세가 대단했을 것이다. 흥망성쇠에 예외가 있었더라면 철칙이라 했을리 없다. 대가람은 고려말 화재로 소실되고 말았다. 이후 인조 13년(1635년) 신감대사가 중창하고, 광무1년(1897년) 항월대사가 삼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지만 아직까지 사세는 지리멸렬하다. 현재는 보물 562호 대웅전을 비롯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84호 심검당(尋劍堂), 수월관(水月觀), 명부전(冥府殿), 일주문 등이 복원되어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 한토막을 들어보자. 삼지왕사가 이곳에 절터를 잡을 때 입구에 자라모양을 닮아 자라바위(혹은 거북바위라고도 하는 듯)로 불리는 큰 바위가 있었다. 스님은 이 바위를 보고 절의 번영을 예언했다. “이 바위가 있는 한 우리 절은 날로 번창할 것이로다.” 스님의 말대로 절은 날로 번창하여 콩나물반찬을 하려면 보통 시루로는 감당할 수 없어서 둘레가 수 십자나 되는 돌 시루를 만들어 콩나물을 해 먹이기도 했다고 한다. 나날이 번창하던 이 절에 고려대에 이르러 삼지스님에 버금가는 훌륭한 스님이 배출되기에 이른다. 이를 기념하여 장대한 일주문을 세우고 절 앞에 큰 연못을 조성하였으며 그 연못가에는 누각을 지어 이름을 수월관이라 했다. 달빛이 연못에 비치는 모습이 누각에서 바라보기에 아름다웠을 것이다. 이 스님도 입적하기전에 예언 한마디를 남겼다. “이 연못을 메우면 절의 운이 다할 것이로다.” 이 말은 대대로 잘 받들어졌다. 그러나 세월은 흐르고 기억은 희미해지기 마련인 법. 때는 바야흐로 고려말(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조선 초라고 하나 고려말에 불탔다는 이야기와 합을 맞추려 글쓴이가 고쳐 적는다.)에 이르러 게으른 한 스님이 주지가 되었다. 날마다 사람들로 넘쳐나는 것을 번거롭고 귀찮게 여긴 주지는 사람이 많이 드는 것이 자라바위 때문일 것이라 여기고 사람들을 시켜 자라바위의 목을 자르고 말았다. 정으로 바위의 목을 깨뜨리자 갑자기 연못의 물이 붉게 변했고, 절은 이런 변고를 보려고 더 많은 사람들로 붐비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행색이 남루한 객승이 묵어가길 청했다. 주지는 마뜩치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선 소홀히 대접했다. 그 객승은 “저 연못을 메우면 이 절은 더 이상 소란스럽지 않을 것이오.”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떠났다. 게으른 주지는 더 이상 소란스럽지 않을 것이란 말에 솔깃해서 사람들을 시켜 못을 메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몇 삽을 퍼넣자 못 속에서 황금송아지 한마리가 급하게 날아오르더니 구슬피 울고는 산 너머 동화사 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사람들은 이 일을 해괴하게 여겨 더 이상 못을 메우려 하지 않았다. 다급해진 주지는 절의 스님들은 시켜 못을 메우게 했다. 꼬박 석달열흘이 걸려 못을 다 메우자 별안간 온 절에 불이 붙기 시작하여 웅장하던 대가람을 홀라당 태우고 말았다. 다행히 대웅전과 수월관은 남았으나 이후로 사람들의 발길은 끊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자라바위나 일주문이 그대로 있으니 이 이야기는 제법 짜임이 있다. 설화는 크고 많을수록 좋다. 그것이 문명의 크기이고 힘이라고 생각한다. 방방곡곡 이야기가 넘쳐났으면 좋겠다. 이야기는 그 시절을 산 민초들의 삶과 생각이 투사된 덩어리다. 옛날이야기에 그칠 것이 아니라 채록하고 다듬고 알려서 살아있는 이야기로 전해졌으면 좋겠다. 후세들이 제우스와 프로메테우스에게서 보다 연오랑 세오녀에게서 꿈과 생각을 연역할 수 있길 기대한다. 그러나 환성사의 설화는 의도나 교훈이 불순해 보인다. 스님이 스님을 박대했다는 것이나 게으른 주지도 그렇고 황금송아지도 그렇다. 절에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닐 것인데 이로 인해 절이 망한것이 무슨 경계의 말인지 나로서는 도무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환성사 답사는 전설과 함께 시작한다.

주차장에 차를 박아넣고 내려서면 장대한 일주문이 막아선다. 언제쯤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처음 일주문을 만났을 때는 잡풀 가운데 거대한 네개의 돌기둥만 덩그러니 있었다. 전설처럼 다 타고 기둥만 남은 것일까. 지금은 지붕을 올렸는데 덩그러니 돌기둥만 있던 그때가 오히려 좋았다. 거개의 경우 일주문은 두 개의 나무기둥으로 지탱한다. 이 처럼 네개의 돌기둥으로 일주문을 지탱하는 경우가 부산의 범어사 경우처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규모나 크기에 있어 범어사의 그것을 압도하는 것은 주목할만하다. 길이가 3m에 이르고 지름이 대략 70cm가 넘는다. 본 모습이 남아있다면 장대했을 것이다. 나는 이곳을 어슬렁 거리길 무척 좋아했다. 잡풀 사이로 우뚝한 돌기둥을 흑백필름에 담는 작업은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었다. 우리는 돌기둥 앞에서 도시락도 먹었고, 깔깔거렸으며, 기념사진도 찍었다. 돌기둥에 기대어 전설을 이야기하던 그때가 무척 그립다. 그때는 지금쯤 내가 뭐라도 되어있을 줄 았았다.

일주문에서 수월관에 이르는 길엔 단정하게 박석이 놓여있고 제법 우람한 나무들이 도열해 있다. 일주문 옆에는 부도밭이 있고 새로이 조성해 놓은 연못도 있어 제법 그럴싸한 풍광을 연출한다. 자연미는 퇴색되었으나 사람들이 드나들어야 하니 이 정도의 변화는 반가운 축이라 하자. 소박한 돌담을 절개하여 통로로 삼고 전설속의 수월관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제법 장대한 2층 누각으로 당당하게 섰다. 팔작지붕의 누각 아래를 통과해 계단을 올라서면 가운데 마당이 있고 좌우 요사채를 거느린 대웅전이 정면에 있다. 수월관을 지나 마당으로 오르는 계단앞에서 누각끝을 지붕삼아 마당을 통해 바라보는 대웅전을 비롯한 중심영역의 풍광은 단연코 이 곳의 일경이라 하겠다.  마당으로 올라서면  전형적인 ㅁ자 구조의 가람배치를 하고 있는데 그 중심에 거꾸로 조립된 듯 심하게 변형된 탑이 있고 탑과 삼각의 방위에 두개의 노주가 아담하고 수수하다. 탑 앞에 하대석만 남은 석등대좌가 자리하고 있다. 몸돌과 머릿돌을 버렸어도 세월과 풍취를 간직한채 다소곳하다. 대웅전을 정면에 두고 왼쪽으로 심검당, 오른쪽으로 근래에 복원한 요사채가 자리하고 있다. 

환성사의 답사의 중심은 단연 대웅전이다. 보물 제562호인 대웅전은 조선시대 건물이다. 그러나 외부에서 보면 근래 건물같다. 1976년 보수하면서 외부는 개채하고 단청을 새로 올렸다고 한다. 이에 반해 건물내부의 단층은 고색창연한 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삼존불은 받들고 있는 아름다운 수미단은 이 건물의 백미라할 수 있다. 법당안에 부처님을 높이 모시기 위해 만든 단을 수미단이라고 하는데 정성을 다해 각양각색의 문양들로 꾸미놓은 수미단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려보자. 아름답기로는 백흥암의 수미단을 으뜸으로 치지만 환성사 대웅전의 수미단도 충분이 다채롭고 아름답다.

중심영역을 넘어서 몇몇 건물들이 있으나 모두 근래에 중창한 것으로 감상의 의미는 없다.

환성사에서 조금 떨어진(370 m)곳에 정갈한 성전암이라는 정갈한 절집이 있으나 늦은 오후에 도착한 터라 다녀오지 못하고 말았다. 다녀가시는 분들은 명부전 옆 공터로 난 길을 따라 잠시 다녀오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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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담을 절개하여 통로를 삼고 우람한 수월관이 당당하게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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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관을 지나면서 바라보는 풍광은 단연코 환성사의 제일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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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 긴 해를 지고 마당에 섰다.]
앞에 보이는 것이 ‘노주’다. 석등 이전의 형식으로 야간행사시 불을 밝히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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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에 심검당이 보인다. 중앙에 탑과 두개의 노주가 있고 오른편으로 보이는 것이 대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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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 해는 부드럽게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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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관과 새로 지은 요사채 사이로 어디에도 없는 요상한 탑이 섰다. 조립불량(?)이다.]
흩어진 석물들을 모아 탑을 복원해 두었다. 완전하지 않지만 나는 이런 모습이 훨씬 정겹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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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에서 바라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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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성사 전경, 절을 나서면서 돌아 보았다. 포근하고 아름다운 전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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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속의 우람한 그 일주문, 잡풀이 무성하더니 그 사이 정비가 많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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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 옆에 부도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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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계란 노른자 같은 해를 만났다.

2016. 2. 5(금) / GR

카테고리:Drifting, Essay태그:, , , , , ,

1개의 댓글

  1. 바쁘다는 핑계로 워낙 움츠려있었는데, 좀 돌아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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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좋은 사진 글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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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따끈따끈한 글이네요. 피울님 덕에 절로 견문을 넓혀 나갑니다.
    좋은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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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해박한 지식과 묵직한 사진 그리고 어김없이 작렬하는 글빨!!!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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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꼭 환성사에 눌러 사시는 분이 글을 써 놓으신듯한 느낌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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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피울님 절글 보다 불가에 귀의할 듯요..
    잘 봤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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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천천히 음미해보겠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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