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


역사가 있는 풍경_춘추

지난 감은사 탑 이야기에서 한걸음 더 들어가 보자. 오늘 주인공은 감은사 탑 주인의 아버지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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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서악동에 있는 태종무열왕릉. 잘 조성되어 있어 한 나절 보내기 나쁘지 않은 곳이다. 인근 주민들이 산책코스로 많이 이용하는 것 같다. 입장료가 있다. 1000원]

춘추는 51세에 왕(태종무열왕)이 되었다. 그가 운명의 부름을 받기까지 인내한 시간은 노심초사였을까 분골쇄신이었을까. 준비된 왕이었지만 재위기간은 길지 않았다. 8년의 재위기간동안 백제를 멸하고 통일의 기틀을 다졌다. 아들 법민(문무왕)은 결국 아비를 이어 삼한일통의 숙원을 이루었다. 이 대업의 과정에 한순간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유신이다. 운명적 인연은 역사의 부름을 받고 그 변곡점에서 별이 되었다.

질곡의 운명을 타고난 출생.

그러니까 진흥왕(춘추의 증조)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동륜과 금륜이다. 형인 동륜은 어린 아들 백정(5세)을 남기고 태자 책봉 6년여 만에 죽고 만다. 이에 동생 금륜이 태자가 되고 아버지 진흥왕 사후 왕(25대 진지왕)이 되었다. 그런데 이 양반이 주지육림에 난봉꾼이었던 모양이다. 불과 4년 만에 왕좌에서 쫓겨나고 만다. 쫓겨난 왕의 아들이어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진지왕의 아들들(용수, 용춘)은 왕위를 잊지 못하고 동륜태자의 아들 백정이 등극하였다. 이가 바로 진평왕(26대)이다.

이 양반의 주특기는 다름 아닌 족보 꼬기. 첫 번째 작품이 자신의 딸 천명공주와 진지왕(선왕이자 삼촌)의 아들 용수와 짝짓기 신공을 펼친 것이다. 이 둘 사이에서 춘추가 태어난다. 일설에 의하면 아들이 없는 진평왕은 이때만 해도 용수에게 왕위를 주려던 속셈이었던 모양이다. 왕좌의 게임에는 항상 변수가 있는 법. 덕만이 자라면서 맑고 지혜로운 천성을 드러내 보이자 왕이 변심을 하게 된다. 남자만 왕 하란 법 없으니 덕만이 네가 해라. 이렇게 후사를 정하고 짝을 맞춰 주는데 배필자리가 다름 아닌 용춘 이었다. 그러니까 이제 덕만은 춘추에게 이모이자 육촌 누나이자 숙모가 되는 거다.

용춘과 덕만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다. 씨뿌리기에 실패한 용춘은 스스로 물러났다. 여기서 진평왕의 두 번째 작품이 탄생한다. 이미 천명과 결혼한 용수에게 덕만을 모시라고 한다. 선덕으로써는 두 번째 결혼이다. 졸지에 춘추에겐 양어머니가 생겼다. 안타깝게도 용수와의 사이에서도 덕만은 아이를 갖지 못한다. 그 사이 용수는 아내 천명공주와 아들 춘추를 아우 용춘에게 맡기고 세상을 떠난다.

덕만은 즉위(27대 선덕여왕) 후 다시 용춘을 남편으로 맞았다. 세 번째 결혼이다. 노력을 했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결국 아이를 얻지 못하고 용춘은 다시 물러났다. 지덕체를 겸비한 맑고 지혜로운 여왕이었으나 남편과 자식복은 없었던 불행한 여인 덕만은 연인이었을지도 모를 측근 비담이 모반을 일으킨 그 와중에 파란만장한 삶을 갈무리 한다. 이때 춘추는 한걸음 앞으로 바짝 다가온 운명의 부름을 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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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인 족보를 한눈에 볼 수 있게 정리해 보았다. 물론 지금의 기준으로 가치재단하는 분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운명적 만남

춘추(603년생)는 유신(595년생)보다 여덟 살 아래다. 두 사람이 엮이는 결정적 계기는 꿈과 오줌과 여자였다.

가야출신의 아웃사이더 유신에겐 모멘텀이 필요했을 것이다. 생사고락을 함께 할 친구여도 좋고 동지여도 좋다. 천공의 성으로 안내해 줄 비빌 언덕도 필요했을 것이다. 다행히 유신에겐 사람을 보는 탁월한 안목이 있었다.

언니 보희가 꿈을 꾸었다. 서악에 올라가 오줌을 누니 서울에 가득 찼었다. (그 이튿날) 아침에 동생과 꿈 이야기를 하는데, 문희가 듣고 말하기를 “내가 이 꿈을 사겠다.” 하였다. 언니가 “무엇으로써 사려하느냐?” 하니, 말하기를 “비단 치마를 팔면 되겠어요?”언니가 좋다고 하였다. 열흘 후에 유신이 춘추와 같이 집 앞에서 공을 차다가 일부러 춘추공의 옷을 밟아서 옷끈을 떨어뜨렸다. 집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수작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피로 맺은 신뢰를 넘기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유신이 보희에게 꿰매드리라 하였으나 사양하였다. 이어 문희에게 명하였다. 춘추는 유신의 뜻을 알고 드디어 상관하였다. 그 후부터 춘추는 유신의 집에 자주 왕래하였던 모양이다.

유신이 누이가 임신한 것을 알고 짐짓 꾸짖기를 “네가 부모에게 고하지도 않고 아이를 배었으니, 이 무슨 까닭이냐?” 하면서 말을 퍼뜨리길 누이를 태워 죽인다고 하였다. 하루는 선덕왕이 남산에 놀러가는 것을 기다려 나무를 마당 가운데 쌓고 불을 지르니 연기가 피어났다. 왕이 바라보고 무슨 연기냐고 물으니, 좌우가 아뢰기를 아마 유신이 누이를 태우려고 하는 것 같다고 하였다. 왕이 그 이유를 물으니, 그의 누이가 남편 없이 임신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였다. 왕이 “이것이 누구의 소행이냐?” 하였다. 마침 춘추가 앞에서 모시고 있었는데 얼굴빛이 크게 변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이것은 너의 소행이니 속히 가서 구하라.” 하였다. 공이 명을 받고 말을 달려가서 죽이지 못하게 하는 뜻을 전하고 그 후에 곧 혼례를 행하였다. (이 때 만들어진 아이가 동해바다 용이 되신 문무왕이다.)

준비된 왕

꿈 해몽에 식견이야 있을 리 없으니…오줌은 욕망의 상징이다. 거개의 해몽에서 오줌 꿈은 길몽으로 해석된다. 더구나 생명의 시원인 여자가 눈 오줌이 세상을 휘감으니 강력한 권력, 대업의 성취를 상징한다 하겠다. 욕망의 해소는 인간의 통속적 소망이 아닐 수 없다.

혈연으로 맺어진 춘추와 유신은 이 후 찰떡궁합 승승장구의 길을 걷는다. 춘추가 왕실 내에서 입지를 다져가는 동안 유신은 군부를 장악한다. 특히 외교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 춘추는 당과의 동맹을 이끌어 냈다. 아들 법민(문무왕)과 인문도 당으로 보내 견문을 넓히게 하고 외교적 역량을 키우게 한다. 비담의 난을 진압하면서 국정을 장악한 둘은 이후 주도권을 놓지 않는다. 진덕여왕이 후사 없이 죽자(후사가 없었는지 없앴는지 역사적 기록은 없으나) 춘추의 기나긴 기다림은 결실이 되었다. 51세에 즉위하여 왕으로 재위한 8년 동안 당의 힘을 빌어 백제를 멸하고(실제 백제가 멸망한 것은 문무왕 3년(663년)이다.) 확고한 통일의 기반을 다져 놓았다.

유신은 춘추가 죽고도 12년을 더 살았다. 강력한 세력으로 조카 법민(문무왕)을 도와 삼국통일의 중추가 되었다. 고비마다 진력하여 나라를 위기로부터 구해 냈으며 수없이 많은 전쟁에 직접 참전하였다. 고구려가 무너진 것이 668년이고 유신이 죽은 것이 673년이니 만년에 통일의 기쁨을 맛보았으리라.

두 영웅은 죽어서도 지척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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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듯 선명한 귀부와 이수. 조각의 역작으로 꼽히는 유물이다. 비문은 당대의 명필 인문(무열왕의 아들, 문무왕 동생)이 지었다. 조선시대까지 비신이 남아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흔적을 찾을 길 없다. 비문만 사라진 이유를 알길 없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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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열왕의 능 뒤로 3기의 분묘가 잘 단장되어 있다. 춘추의 일가묘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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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충효동 김유신의 묘. 12지신상을 병풍처럼 두른 화려한 무덤이다. 무덤의 규모와 장식만 봐도 그의 위상을 가늠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무열왕릉과 지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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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태대각간 김유신. 이 비석은 조선시대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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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를 병품처럼 두른 호석 사이사이에 12지신상이 조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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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

  1. 중고등학교 통학때마다 지났던 태종무열왕릉과 김유신장군묘입니다.
    천년을 넘어 지척에서 서로를 바라보았을 두 영웅의 그리운 눈빛을 가늠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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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확실히 매력있는 주제입니다. 한번 고민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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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이야기도 좋지만 이번편은 사진의 느낌이 참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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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역시 천천히 음미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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