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umann 을 기억하며… (1810-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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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던 길이었다.
가깝고 짧은 시간이기에 특별히 선곡을 하기보다는, 라디오를 틀어놓고 이야기를 경청하곤 한다.
그날은 클라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앙드레 가뇽의 영향 탓인지 (클라라에게 보낸 편지) 보통은 브람스의 이야기를 많이 하곤 하는데, 뜻밖에도 슈만 특집이었나보다. 진행자는 내가 알지 못한 슈만의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서정적인 슈만의 음악에 왜 음울한 요소가 있는가 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귀를 쫑긋 세우고 진행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나의 무지는 실로 엄청나서, 클라라가 당대의 천재 피아니스트였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나에게 있어 슈만은 낭만파를 대표하는 작곡가, ‘나비’ 를 작곡한 사람, 그리고 클라라는 브람스가 사모한 슈만의 부인 정도였다. 그러나 로베르트 슈만, 그는 당대의 사람들에게 ‘천재 피아니스트 클라라의 남편’ 으로 더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그가 큰 명성을 얻기 전까지는 9세때부터 천재 피아니스트로 주목받던 아내 클라라의 유명세가 더 컷던 탓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클래식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클라라에게 보낸 편지’ 에 담긴 사연에 관심이 있었으나, 슈만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알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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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만은 1810년 6월 8일, 작센 주 츠비카우에서 태어났다. 카메라광, 기계광들이 환장을 하는 독일생이다.
부친은 목사의 아들로 출판업 및 서점에 종사하였다. 라이프치히대학 문학부에 적을 두고 소설을 썼을 정도로 문학적 소질이 뛰어났다고 한다. 모친은 외과의사의 딸로 음악에 관심이 많은 분이었다.
슈만은 이들 부부의 5형제중 막내 아들이었다. 문학적인 그리고 음악적인 가풍속에서 자라난 슈만은  7세때부터 자기 스타일로 피아노를 치거나 무곡풍의 곡을 써서 음악적 소양이 풍부함을 천명하였다.
12세때 ‘시편 제150번’ 을 작곡하고 스스로 조직한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합창단의 초연까지 해낸 슈만의 미래는 누가 보더라도 음악가였다. 그러나 16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슈만의 장래를 걱정한 어머니와 후견인들의 조언에 따라 법률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법과대학에 진학하였음에도 음악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슈만은 돌고 돌아 다시 음악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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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만의 꿈은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었다. 그는 라이프치히의 유명한 피아노 교육자, 프리드리히 비크의 제자가 되기로 한다. 비크 역시 슈만의 재능을 알아보고 자택에 하숙을 시키며 슈만이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레슨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미소년 슈만은 매력적인 여성들과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그중에는 정부 고위층 자제도 있었고, 클라라 라는 동명이인의 여인도 있었다고 한다. 그의 음악적, 문학적 재능이 이 영역에서도 유효하였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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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크에게는 신동으로 불리며 신들린 연주를 하는 딸이 있었다. 슈만의 아내가 될 클라라 바로 그녀였다.
클라라는 2남 3녀중 차녀로 태어났으나 무척 외로운 유년을 보냈다고 한다. 아버지 비크의 강압적이고 순종만을 요구하는 가풍에 반발한 어머니가 다른 자녀들을 모두 데리고 가출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교육이 아이에게 비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9세의 클라라는 천재적인 피아노 솜씨를 가지고 있었으나, 독일어로 자신의 이름을 쓰지 못했고, 자신의 의사역시 어눌하게 표현하는 파파걸이었다고 한다. 그런 클라라에게 있어 슈만은 외부와 통할 수 있는 지적 통로였고, 슈만의 달콤한 언변과 필력은 어린 그녀를 감동시킬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열정적인 사내, 슈만은 자신의 약지손가락의 움직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약지손가락을 천장에 매단 채, 피아노를 연습하는 기행을 저질렀고, 결국 손가락이 부러져 피아니스트의 길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피아니스트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그리하여 슈만이 몰두한 것은 ‘작곡’ 과 ‘평론’ 이었다. 문학적 재능을 발휘하여 평론지를 발간하고 ‘프로레스턴’ 과 ‘오이제비우스’ 라는 두가지 필명으로 극단적인 성향의 평론을 기고했다고 한다. 그의 평론은 너무나 날카롭고 비판적이어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평론영역에서 슈만의 영향력은 점점 커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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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되어가는 클라라의 곁에서 슈만은 큰 산과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가 미친 영향 또한 지대했을 것이다. 그 둘은 시나브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를 탐탁치 않게 여긴 클라라의 아버지 비크는 이 둘을 갈라놓으려 방해공작을 시작한다. 16세가 된 클라라는 슈만과의 왕래를 오로지 비밀 서신으로만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시골출신의 장래 불투명한 바람둥이 평론가 슈만이 이미 피아니스트로서의 명성을 가진 금지옥엽과 같은 딸을 넘본다는 것이 탐탁치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어느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나 역시 미래에 딸들의 손을 잡고 있을 녀석들을 생각하면 본능적으로 주먹이 불끈불끈 쥐어지니 말이다. 슈만은 다른 여인과 약혼 및 파혼 등의 여러 일들을 겪게 되지만, 중요한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주위의 여인들이 정리되고 클라라만이 남았다는 것이다. 클라라가 18세가 되던 해, 둘은 결혼을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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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장인 프리드리히 비크의 집요하고 완강한 반대가 시작된다. 클라라와 슈만은 결국 결혼 허가를 법원에 요청하기에 이른다. 3년간의 법정투쟁 끝에 법원은 둘의 결혼을 인정했고, 둘을 갈라놓기 위해 온갖 술수를 부렸던 비크는 18일 금고형에 처해진다. 이 일은 3명 모두에게 큰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클라라의 21세 생일 하루전인 1840년 9월 12일, 둘은 결혼식을 올린다. 클라라는 이날 클라라 조제핀 비크 슈만(Clara Josephine Wieck Schumann)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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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안정된 결혼생활 속에서 슈만은 마음껏 창작열을 불태웠다. 클라라는 슈만의 곡을 연주 발표하여 슈만의 명성을 만들어가는 데 일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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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3년에는 부부가 라이프치히 음악원 교수로 초빙되고 1844년 드레스덴으로 터전을 옮기면서 독일과 오스트리아까지 명성을 날렸다. 1850년 뒤셀도르프 관현악단 지휘자가 되면서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지휘자라는 직책은 예술가이기 이전에 단원을 이끌고 그들과 소통하고 화합해야 하는 자리였다. 사교적이지 못한 슈만에게는 분명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예술가로서의 압박감이 그를 정서적으로 피폐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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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환이던 정신병에 시달리던 슈만은 1854년 라인강에 투신하여 자살을 기도한다. 다행히 이를 목격한 주변의 도움으로 미수로 그쳤다. 자신의 정신병이 극심하다고 자각한 슈만은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것을 선택한다. 이때 클라라 슈만은 뱃속의 막내까지 7명 자녀들을 양육하고 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미루어 짐작컨데 그녀의 충격은 실로 엄청나지 않았을까?
그의 정신병은 가족력에 원인이 있다는 추측이 있다.
영화나 소설속에서 묘사된 근대의 정신병원은 치료를 하는 곳인지 감금을 하는 곳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곳이었던 것 같다.  안타깝게도 슈만은 46세가 되던 1856년 7월 29일 엔데니히 정신병원에서 명을 달리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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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게레오 타입으로 촬영된 슈만의 사진, 46년의 생애동안 참 많은 일을 겪었고, 많은 곡을 남겼다.
아내와 7명이나 되는 자녀를 두고 먼저 떠나간 그가 참 무책임했다는 생각도 든다.
예술가의 삶은 험난한 것이다. 그 험난함 속에서 영감을 얻고 우리는 그 영감으로 파생된 작품들을 감상한다.
취미라는 나약한 변명뒤로 숨은 아마추어는 도달할 수 없을 예술가의 길…
당분간은 슈만의 음악속에서 그의 길을 기억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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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랑촐랑, 나풀나풀 빠르고 경쾌하게 움직이는 나비의 움직임을 표현한 ‘나비(Schumann, Papillons, Op.2)’ 라는 곡도 슈만의 대표곡중 하나이다.
어린이의 정경 (Traumerei Kinderszenen, Op.15) 이나, 아내 클라라에게 헌정했던 Song of Love 역시 무척 친숙한 곡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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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클라라가 사랑한 슈만, 클라라를 사랑한 브람스 : 황승경의 ‘눈으로 듣는 음악’ 10
클래식이 들리네 : 로베르트 슈만
위키백과 : 로베르트 슈만
나무위키 : 클라라 슈만
슈만과 클라라 : 위대한 작곡가의 아내들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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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 비크 슈만(1819~1896)은 유럽 단일 통화 유로화 때문에 현재는 통용되지 않지만 100마르크 지폐에 등장한 우아한 초상화의 주인공으로 독일인에게 매우 친근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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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화가 프란츠 폰 렌바하 Franz von Lenbach가 그린 클라라 슈만의 초상, 1878년, 벌써 클라라가 59세일 무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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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클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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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에 위치한 슈만과 클라라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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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만의 도시 츠비카우에 위치한 그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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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와 슈만 그리고 브람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로는
Schumann’s Song of Love, 1947
‘봄의 교향곡’ (Frühlingssinfonie, 1983)
‘클라라’ (Geliebte Clara,2008)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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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Essay태그:, , ,

1개의 댓글

  1. 송영훈의 가정음악 들으셨나봅니다. 슈만의 곡 중 Fantasiestucke. Op.12를 정말 좋아합니다.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라이브 녹음이 있어요. 꼭 들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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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쪽으론 아는게 참 없습니다만, 슈만과 클라라는 귀동냥으로 들어 그나마 조금 아는 스토리입니다.
    경주에 가면 맛난 커피를 내려주던 “슈만과 클라라”라는 커피숖이 있는데 주인분이 원래는 레코드 가게를 하셨다고 하더라구요. 카페의 이름으로 사용한 걸 보면 그분께도 꽤나 매력적인 이야기 였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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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늙어가는 클라라가 더 다가옵니다.
    좋은 글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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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오~ 평론을 넘어선 완전 한편의 논문입니다.
    선곡해 주신 곡도 완전 귀에 힐링 그 자체이구요.

    콴제이님 버젼의 클래식 이야기~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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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이런 글 좋아요.. ^^
    저는 예전부터 슈만은 미워하고 브람스만 좋아했던지라 얄미운 느낌이 여전히..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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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오! 너무 좋네요.
    술술 잘 읽었어요.

    에어팟 뽐뿌만 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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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음악 쪽 특히 클래식은 거진 아는바 없지만 슈만과 클라라의 사랑과 음악에 대한 한토막 이야기를 듣게 되어 기뻐요.
    저도 혹여 셔터누르는 검지가 맘에 안들면 매달아야겠..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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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몰랐던 사실을 또 알게 됩니다. 클래식 너무 어려워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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