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5


러시아(Russia)에는 네 종류의 버스가 있습니다.

보통의 대형버스와 트랄레이부스(더듬이 달린 전기버스), 트람바이(트램), 마르쉬루트(마이크로버스)입니다. 서로 다른 노선으로 섞여서 다니는데, 마르쉬루트를 제외하고는 안내양이 탑승하고 있습니다. 주로 장년 또는 노년의 여성인데, 버스에 오르면 소리없이 다가와서 요금을 받고 승차권을 내줍니다.

좀 의아했습니다. 기술이 낙후되어서 그런가. 그런데 IC교통카드가 있는 겁니다. 당연히 승하차 단말기도 있었습니다. 그럼 왜 안내양을? 궁금해서 물어보니 걸작인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모두 자동화하면 일자리가 없어지잖아요.”

러시아박물관과 에르미타주에는 전시실마다 안내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박물관 전체에 몇 명이 있는데, 러시아는 전시실마다 적어도 한 명, 큰 곳은 여러 명이 있더군요. 에르미타주라면 천 명 이상의 가이드가 있는 셈이죠. 마찬가지로 장년 또는 노년의 여성인데, 영어도 조금씩 하시고 안내도 친절하게 해주시더군요.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짐작으로는 버스 안내양과 같은 이유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카렐리야 공화국에 다녀올 때 기차에서 희안한 장면을 만났습니다. 입석 승객들이 편안히 서있을 수 있는 ‘입석 공간’이 별도로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잡담도 하고 아이들과 놀이를 하는 모습이 마치 공원에 온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버스와 박물관의 일자리 나눔에도 놀랐지만, 이 장면에서는 제대로 뒤통수를 얻어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우리도 입석 티켓을 팔지만, 입석을 구입한 사람의 권리는 어디에도 없죠. 좁은 통로 사이에 끼여있던가, 연결통로에 어정쩡하게 서있거나, 좌석 뒤 좁은 공간에 몸을 구기고 있어야 하죠. 입석 티켓이 좌석 티켓에 비해 별로 저렴하지도 않다는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짐짝 취급은 기본, 그저 타고 갈 수 있으니까 된거 아니냐는 식이니까요.

러시아를 여행하면서 본 몇몇 장면들은 생각할 거리를 줬습니다. 철학에 관한 문제, 인간을 대하는 태도 같은 것 말입니다. 러시아 국내의 인권 문제라던가, 과거 조지아공화국, 체첸, 최근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폭력적 역사는 분명 존재하지만, 버스와 박물관, 기차에서 본 장면은 오히려 우리보다 인간 위주의 정책을 펴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어쨌든 사회주의국가이기 때문일까요?

정작 우리는 왜 저들보다 인간을 경시하고, 그걸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일까 궁금해지는 장면이었습니다.

카테고리:Drifting, Essay

1개의 댓글

  1. 스탈님 뽐뿌 받아서 올해는 꼭 러샤에 함 가볼라구요.. 상트페테르부르크나 모스크바 같은 곳은 여행 최적기가 언젠가요? 애들 데리고 갈라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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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공동체적 인식과 배려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우리 사회가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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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러시아도 좀 다녀보고 싶네요. 가까운 블라디보스톡이나 가봐야할까요 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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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남의 동네가서 속살을 느끼고 오기에는 늘 시간이 부족하더군요.
    러시아…가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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