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시타소학교


뉴튼의 운동 제1법칙은 이국의 땅에서도 여전히 유효하고 강력했다. 전날 새벽, 가고시마 어시장을 시작으로 사쿠라지마와 센간엔으로 이어지는 여정에 스마트워치가 기록한 걸음수는 27648걸음. 다음 날 느긋한 아침 잠을 예상했으나, 냉정한 생체시계는 어김없이 나를 7시에 기상시켰다. 지속된 일상(日常)의 관성(慣性)은 잠시의 일탈도 쉬이 허락하지 않았다. 눈을 좀 더 붙여볼까 고민했으나 가볍게 식전 산책이나 하자는 마음으로 숙소를 나섰다.

호텔이 위치한 대로변(大路邊) 모퉁이를 돌아 2~3블럭 안쪽으로 접어드니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학생 하나가 횡단보도에서 교통 당번을 서고 있다. 길을 건너기 위해 그 옆에 잠시 멈추어 섰는데, 갑자기 내게 꾸뻑 인사하며 “오하요 고자이마쓰(おはようございます)” 그런다. 어색한 일본어 발음이나마 나도 반사적으로 아침인사를 건넸다. 신호를 기다리며 잠시 서있는데, 2학년이나 되었을까 싶은 초등학생이 단정한 빵모자를 쓰고 란도셀 가방을 메고서 이쪽으로 걸어온다. 어라? 반바지네? 아무리 가고시마의 겨울이 젠틀하다고는 하지만 2월 초의 아침은 섭씨 5도 안팎으로 꽤 쌀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는 반바지를 입고 교복 윗도리 마저 미니멀하다. 그리고 나와 시선을 마추치더니 어김없이 “오하요 고자이마쓰”

대체 지금이 몇 시지? 손목시계는 7시 30분 가리키고 있었다. 왜 이렇게 일찍 학교에 가는걸까? 한국에서는 8시 반까지 등교라 8시 이전엔 아이들을 보기 힘든데 말이다. 아장아장 병아리처럼 귀여운 아이들은 학교졸업을 기념하는 듯한 벽화가 그려진 길을 따라 등교하고 있었다. 구글지도에서 현위치를 확인하니 아마도 이 곳은 야마시타소학교인가 보다. 山下小學校라고 적힌 교문 안으로 들어서니 운동장은 구보하는 아이들로 활기차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가볍게 뛰고 있었는데, 이 아이들 마저도 나랑 눈이 마주치니 단체로 “오하요 고자이마쓰”다. 정신차리고 눈 앞의 낯선 풍경을 한 장 찍기까지, 나는 운동장 한 켠에 서서 운동하는 아이들과 심지어 같이 뛰고 있는 체육선생님과도 아침인사를 주고 받았다.

일본 초등학교의 아침은 흥미로웠다. 학교 주변을 더 살펴보고 싶어 인사 받아주느라 정신 없었던 운동장을 나섰다. 교문을 나와 학교 경계를 따라서 걷는데 선생님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학교 주변 바닥에 떨어진 빈 캔 따위를 줍고 있고, 담 안쪽으로는 빗자루 든 아이들이 후미진 건물 뒷 편을 청소하고 있었다.

30년전 내가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 이후 길을 걷다 모르는 이에게 인사를 하거나 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초등학생 내 아이는 어떤가. 같은 통로에 사는 이웃 어른들을 만나면 인사하도록 교육하고 있으나, 아이가 길에서 마주치는 낯선 이에게 하는 인사는 오히려 말리는 편이지 않았나. 일본 부모들은 소학교에 갓 입학한 듯 보이는 어린 아이까지도 학교에 혼자 보내는 걸까? 조금이라도 추워지면 내복에 거위털 파카까지 입히는 우리는 아이들을 너무 꽁꽁 싸매고 있는 것일까.

야마시타 소학교에서 만난 소소한 풍경은 이렇게 나로 하여금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끄집어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질문의 중심에는 ‘자립심 함양’과 ‘인성교육’이라는 화두가 묵직하게 자리하고 있음을 느꼈다.

우리는 이른바 무한경쟁과 강자생존이라는 비정한 자본주의 논리를 통해 세계사에 유례없는 급속한 산업발전을 이룩하고 단 시간 내에 배고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성공의 단맛은 발전논리에 정당성과 권위를 부여했고, 부모세대는 자식세대에게 오로지 경쟁우위 승자독식의 풍요를 누리는 방법을 교육 아니 주입해 왔다. 공부 잘하는 엄마친구 딸은 말을 잘 듣는 것이며, 돈 잘 버는 옆집 남편은 착하다는 가치판단기준에 익숙해져 버린 우리가 이젠 그 기준에 뭔가 커다란 오류가 있음을 뉴스를 통해 목도하고 있다. 최고의 대학을 나와 최연소 사법고시를 패스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말 잘 듣는 아들 중 한 명이 저질러 온 부정과 부패, 우리나라에서 가장 돈을 잘 버는 착한 남편 중 하나가 비리에 연루되어 구속되는 우리의 자화상에서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소학교의 아침풍경이 던지는 이슈는 결코 작지 않았다. 그리고 그 해결의 실마리를 앞서 이야기 한 ‘자립심’과 ‘인성’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양심을 가진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개인들이 다른 구성원들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사회라면 한번 살아 볼만한 세상 같지 아니한가.

호텔로 돌아와 야마시타소학교 이야기를 했더니 초등교사인 아내는 일본에서 초등교사가 아닌 게 참 다행이란다. 하긴 아내는 일상의 관성이고 뭐고 9시 반이 되어서야 겨우 일어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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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

  1. 작은 일상에서 떠올리시는 생각의 깊이가 놀랍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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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일본에 갈 때 마다 참 배울 점이 많다고 느낍니다. 물론 마냥 편하게만 받아들일 수 없는 그들의 이중적인 면모 때문에 머릿속이 늘 복잡해지지만 말이지요. 아침 한 나절의 산책같은 촬영에서 좋은 사진과 합리적인 감상으로 이어지는 글이 참 좋습니다. 그리고 사모님은 다 필요없고 늦잠이 최고셨나 봅니다 ㅋ 사진 찍는 남자들은 같이 사는 여자보다 감수성이 더 풍부하다는게 느껴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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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내와도 일본 소학교의 빡셈(?)을 공유하고 싶었는데, 다음날이 토요일인 관계로 다음 일본여행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네요. ㅎ
      가깝지만 알면알수록 멀게 느껴지는 일본이에요. 아마 당분간 가족 겨울 여행지는 일본으로 고정일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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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정말 예리한 관찰력을 가지셨고, 생각의 깊이가 ~~ㄷ
    여행가서 식구들이 자는 새벽시간에 짬내서 사진찍어야하는 우리들의 운명…ㅠ
    하지만 참 좋은 사진을 담아오셨군요!
    두번째 사진 정말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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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복되는 일상에 무뎌진 관찰력도 낯선 여행지에서는 잠시나마 제 기능을 수행하는 것 같습니다.
      사진하시는 선배 유부님들 이야기 들어봐도 다들 그렇게 가족들 잠든 새벽시간 쪼개서 사진 찍어오셨더라구요. ㅠ
      저는 불평불만 하나 없습니다. 그저 여행갈때 데리고 가주는 것만으로도 아내에게 감사할 따름이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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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후기가 특히 재밌었습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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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뭔가 참 배울점이 많은 곳인데…그게 참, 이중성도 같이 보일때가 많아서 또 그게 참…
    엘리베이터에서 인사를 서로 나누는 정도는 하지만 그 이상 발전하지 못하는건
    아직은 서로간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변에 좋은 휼륭한 부모들이 많이 보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차차 좋아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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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인들 입장에서도 한번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분명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살텐데도 (보통 이중적이라고 표현들하지만) 겉으로는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참 반듯하고 예의 바르다는 것은 사회문화적으로 개인들을 억누르고 있는 압력이 큰지에 대한 방증이라고 생각되더라구요. 그래서 반대급부로 헨타이문화가 발달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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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좋은 사진 글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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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멀리 포항까지 내려오셨는데 못뵈어 많이 아쉬웠습니다. 피요님 이야기 들어보니 늦은시간까지 즐거운 시간 보내고 가셨다 들었어요.
      게다가 선물까지 쾌척하셨다고.. (y)
      오버홀 한 후에 저도 빌려 써보기로 벌써 예약 걸어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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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일관되게 대상을 쫓는 시선이 부럽습니다.
    매번 독창적인 주제가 불쑥불쑥 나오는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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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두 귀 쫑긋하고 숙연히 듣게하는 깊이있는 이야기에 많이 배우고,
    두 눈 또렷하게 하고 보게하는 그윽한 깊이의 생동감 담긴 아침 풍경에 정말 고맙구나…

    아침에 영운이와 함께하는 등교길 생각도 나고…
    어쩃든 사진과 글 둘다 너무 좋타…
    멋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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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웃나라 등교풍경 아들한테도 보여주고 싶었는데 엄마랑 호텔에서 쿨쿨~ 다음에 또 일본가게 되면 아침에 좀 서둘러서 근처 초등학교 같이 가보려해. 공감해주고 응원해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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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짧은 여행동안 담은 월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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