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산과 삼탑에서


2009. 1. 31
따리(大理) 창산(蒼山. 412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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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리의 아침은 맑고 높았으나 처연하다. 여독인지 손발에 붓기가 올랐다. 7시가 넘어가고 있으나 아침을 시작하는 인적은 드물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길을 넘으면 꾸청(古城)의 남문이다. 옛 사람의 것인지 지금의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성곽은 길게 뻗어 있다. 지금의 것이거나 옛 것이거나 어쨌든 단사평이 일양지를 연마하던 그 곳임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이곳은 대륙의 서남 변방에서 가장 강력했던 왕조의 심장이 아니었던가! 왕조의 흥망을 가늠하던 성곽은 지금에 이르러 산책길이 되었다.

성곽 너머로 옛 마을이 넓고 깊게 드리웠다. 물통을 이고 진 아낙들이 종종걸음을 옮기고 나귀무리 한때가 아침을 서두른다. 관광객을 맞으러 가는 모양이다. 삽작앞에서 발바리 한 마리가 오줌을 지렸다. 친한 척 하려 했지만 다가간 만큼 뒤로 물러섰다. 고약한 녀석이다.

백족의 전통복장으로 갈아입은 젊은 여자아이들이 삼삼오오 무리지어 바쁜 걸음을 옮긴다. 고단한 출근길일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경적을 울리는 허름한 택시들이 반들반들한 돌길을 내 달린다. 그 사이 남문밖으로 거대한 관광버스에서는 이방인들을 쏟아내고 있다. 노란 깃발, 빨간 깃발들을 따라 병아리때 마냥 쪼르르 사람들이 열렸다. 이곳은 옛스럽지도 그렇다고 지금의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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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에서 바라본 창산은 평온하고 가지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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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창산에 오르자 했다. 히말라야의 마지막 자락인 푸른 산이다. 정월이라 눈 쌓인 산을 기대했건만 눈은 보이지 않는다. 창산에 오르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리프트를 타거나 케이블카를 탈 수 도 있고 걸어 오를 수도 있다. 우리는 말을 탔다. 마부의 인상이 좋다. 마부는 몇마디 단어를 알아듣게 지껄였다.
-이랴! 이랴!
-빨리가자.
한국인들을 많이 만났다고 했다. 이름을 알아왔는데 어디다 적어놨는지 잊었다.

말들은 두어시간을 뚜벅뚜벅 올라 8부나 9부 능선무렵에 내려 놓았다. 능선을 따라 길게 포장된 길이 놓였다. 길에 올라서서야 비로소 얼하이에 안긴 따리의 전경이 시원스럽게 시야에 잡힌다. 긴숨을 몰아 쉬었다. 맑고 찰지다. 이렇드 청명하고 찰진 숨을 쉬어 본 지가 언제였던가! 아득하다. 얼하이를 통째로 삼킬 듯 몇 번이고 긴 숨을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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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을 따라 길을 놓았는데 길고 판안하다. 아름다운 경관이 병풍처럼 펼쳐졌다. 얼하이 맑은 습기를 담은 공기가 세상에 가득했다.]

걸었다. 길게 걸었다. 산은 말없이 길을 열어 주었다. 산세가 가파르지 않고 포근하다. 때때로 깊은 계곡과 거대한 바위로 힘찬 기운을 뿜어내기도 하였으나 산은 평안했다. 손을 뻗어 내밀면 얼하이에 닿을 듯 하다. 손가락 끝에서 얼하이 맑은 옥수가 뚝뚝 떨어질 것만 같다.

중허사(中和寺)에 닿았다. 더 갈 수 있으나 가지 않았다. 중허사는 도교사원이다. 이곳의 토속 신앙과 조화롭게 섞여 이들만의 믿음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들의 신에게 향을 피워 소원을 빌었다. 그들의 기원이 우리의 기원과 다르지 않을 것인데 그들의 신과 우리의 신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중드는 할머니의 눈가에 따스함이 번졌다. 이방인의 소원이 밉지않았을 것이다.

중허사에서 내려다 보는 경관은 참했다. 하늘에 걸린 외줄에 몸은 놓았다. 계곡쯤을 지날 때면 머리끝이 서고 심장이 오그라 들었다. 얼하이가 다가오는 만큼 봉우리는 점점 멀어졌다. 삭도레일의 끝이 보일쯤 돌아보니 지나온 길이 아득하다. 하늘에 걸린 외줄은 길게 땅과 닿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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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쓰고 있는 아저씨가 내내 똥꾸리하게 쳐다보고 있었더랬다. 이 아저씬 말하자면 승려(?)인 셈이다. 낮엔 수금하다가 저녁엔 집에 간단다. 내내 이 아저씨 눈치보면서 절간을 어슬렁 거리다가 어디서 생긴 용기였는지 후다닥 들이대서는 이렇게 한 컷 남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뭐라고 고함을 치는데 다소 격한 것을 보니 아무래도 욕 같다. “찍지 말라는데 왜 찍고 난리야 엉! 필름내놔 이 셍퀴야~~” 뭐 이 정도쯤 되지 않았을까!

최대한 상큼하게 웃으며 허리를 접어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한마디….“스미마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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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허사 공양간에는 몇 분의 할머니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끼니를 담당한다. 아직까지 이 음식들을 입으로 가져가지는 못했다. 할머니들과 눈이 마주치고도 한참동안 카메라를 들지 못했다. 곁을 내어주고 먹을 것을 권하던 당신들이 보살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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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는 할머니와 하루종일 절에서 보낸다. 할머니는 중허사 전망대에서 망원경 사용료를 받고 있다. 이방인에게 익숙할만도 한데 아이는 오랜동안 경계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귀엽고 예쁜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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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산에서 내려온 오후!
따리삼탑을 찾아 걸었다. 탑이 손에 잡힐 듯 하다. 탑을 향해 걸었다.

여행은 길과 맞닿아 있다. 하늘 길, 바다 길, 땅 길 … 그 길들을 따라 사람들은 먹고 자고 혹은 싼다. 길을 따라 걷는 것은 행자의 본분이다. 한 낮의 태양이 제법 따갑다. 그늘을 찾으면 서늘하고 벗어나면 땀이 밴다. 손에 잡힐 듯 한 탑은 한참을 걸어도 그 자리다. 신기루 같다고 생각했다.

따리삼탑은 황금빛으로 높게 솟아있다. 천년을 넘어 무거운 몸둥아리를 버텨낸 것이 갸륵하다. 수많은 비원을 담고 모진 풍파와 땅을 갈라놓는 거대한 지진에도 견디었다. 옛사람들의 지혜와 힘은 그 끝을 헤아리기 어렵다.

강이나 산 하나를 넘으면 족속이 다르고 말이 다르다. 고을이 나라고 나라가 고을이었다. 운남 최초의 통일왕조 남조를 세운 시노루는 이들을 부처님의 이름으로 하나로 묶으려 하였다. 초기 왕조에는 힘과 기운이 넘친다. 차고 넘치는 기운으로 거대한 탑을 빚었다. 간절한 기원을 담았을 것이다.

이 거대한 탑을 보면서 내 나라에 있었던 거대한 기원을 그리워했다. 황룡사 9층탑이 사무친다. 살아남았다면 웅장함과 아름다움이 이것에 비할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조상들의 기운이 뻗쳐와 허리가 곧추선다.

잡히지 않는 것을 잡으려 닿지 못하는 것에 닿으려 떠나지 못하고 한참을 서성였다. 우비한 사유가 저들의 천년에 어찌 닿을 수 있겠는가! 용렬하다.

등 뒤 창산에 해가 목을 매고 있을 무렵 탑은 오롯이 황금을 뿜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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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탑이 있는 숭성사 입구, 입장료가 기억나지 않지만 입을 딱 벌릴만큼 이었다. 주위를 걸어 탑을 보기로 했다. 덕분에 한나절을 터덜터덜 걸었다. 손에 잡힐듯한 탑은 걸어도 걸어도 가까워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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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 : Hasselblad X-PAN + 45mm
BW : Leica M6 + Summicron 35mm 5th

카테고리:Drifting, Essay태그:, , , , , , ,

1개의 댓글

  1. ‘대리’가 ‘따리’로 불리는 것을 보니~ 어릴적 중국영화를 보는데 한부분이 생각납니다.
    ‘대왕만세’가 ‘따왕만쉐이’로~ 첨에는 듣고 뭔~ ‘왕따’를 만세하고들 난리인지~ 아~ 아닙니다. ㄷㄷ

    화노라마 슬라이드로 보니 풍광이 날아갈듯 시원하기만 합니다.
    거기에 피울님 글까지~ 버물어지니~ 좋은 음식을 삼키는 기분이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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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최대한 상큼하게 웃으며 허리를 접어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한마디….“스미마셍~~~”’

    ㅍㅎㅎㅎ~ & 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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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절간의 인물사진은 압권이네요.. 저도 저런 사진 찍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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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주말에 핸드폰으로 포스트를 읽었는데, 사진이 너무 작아 오늘 다시 차근차근 감상했습니다.
    핸드폰 작은화면으로도 좋고 큰 화면은 더 좋네요.
    똥구리한 표정의 아저씨 사진.. ‘똥구리’하다는 의미 설명에 아주 적절한 예제 사진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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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사진이며 글이며 역시 명불허전입니다!!!
    멋진 풍광에 눈이 호강하는군요~~

    그나저나 파노라마 슬라이드 현상비가 만만찮았을텐데…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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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언제가 됐든, 가봐야할 것 같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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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저도 가보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듭니다. 그 속에 녹아든 것 같은 사진들이 잊혀지기 힘들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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