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제동


작년 11월 말 즈음으로 기억한다. 친구의 SNS에 올라 온 골목사진들이 단박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느긋한 오후의 햇살을 끌어안은 골목길을 담은 사진 한장 그 자체로 포근한 느낌이었다. 방범을 위해 담 위에 꽂아둔 뾰족한 각양각색의 유리조각들은 유년기를 보낸 시골의 기억을 고스란히 환기시켰고, 이내 사진이 찍힌 장소가 궁금해졌다.

타임라인에 이어 올라온 글을 통해 여기가 소제동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운이 좋게도 친구의 감상까지 접할 수 있었다. 짧은 글이니 전문을 인용한다.

“소제동”

대전의 중심이자 상징이 어디냐고 꼽는다면 단연 대전역을 꼽고 싶다. 대전역은 대전의 현재 뿐 아니라 과거까지 품고있다. 수많은 인파로 붐비는 주말의 대전역 지척, 철길 바로 옆에는 소제동이라는 사람들에겐 낯선 작은 동네가 있다. 소제동에는 일제시대 철도관사촌이 남아있다. 육이오 전쟁시 폭격에도 살아남은 관사가 아직 남아있고 그곳에서 생활을 하시는 분도 계시다.

소제동 산책, 촬영을 마치고 교육장소로 소제동을 빠져나오는데 철도관사촌과는 좀 떨어진 곳의 이곳도 소제동이었다. 어르신 두 분이 대화 중이셨다. 먼저 인사를 건냈더니, 카메라를 멘 내가 혹시 시청이나 관공서에서 나온 것은 아닌가 생각하셨단다. 또 종종 사진기 들고 아주머니들이 이곳에 온다고도 한다. 20년, 아니 거의 30년 전부터 재개발 얘기가 나왔지만 아직은 명확한 계획이 없다.

그대로 흘러가다 마을을 더욱 쇠락해져만 간다. 재개발 얘기가 없다면 집을 가꾸고 최소한의 마을이 유지될텐데 그 재개발때문에 여기저기 빈집 투성이이다. 많은 빈집들은 서울 등 타지사람들의 소유라고 한다. 이곳서 50년을 살아오신, 그리고 40년을 살아오신 어르신들께 더 많은 이야기들을 듣지못해 아쉽고. 현재가 중요하지 왜 옛날 풍경은 찍냐는 어르신들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재개발이라는 미래가 오히려 마을의 자연스런(?) 변화를 가로막아 마치 박물관처럼 옛 모습을 보존케 했다는 역설적 사실… 어르신들은 10년도 전에 받았다던 동네 지도를 보며 빠른 개발을 두런두런 천천히 얘기 나누셨다.

©김상호 (페이스북: http://goo.gl/L9xSda)

 

대전?

다행히 대전엔 출장 갈 일이 종종 있다. 경부선과 호남선이 만나는 접점이니 전국 단위의 세미나를 하기엔 지리적으로 안성맞춤인 이유일 것이다. 맘 먹는다고 당장 대전으로 갈 수 있는 여건은 아니었으나 갈 일이 생긴다면 꼭 한번 가보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운 좋게 오래지 않아 대전으로 출장 갈 일이 생겼다. 나는 서류가방 한 켠에 카메라를 슬쩍 넣었다.

.

.

1월 말, 대전역 플랫폼에 마중나온 겨울 바람은 포항의 그것보다 확연히 차다. 출장길 목적한 바 일정을 완수하고서 오후 4시경 소제동으로 발길을 향했다. 대전역 동광장으로 걸어나와 역 주차장을 끼고 좌회전. 네이버 지도에 마킹된 소제동 위치와 내 위치를 번갈아 확인하며 계속 나아갔다. 10여 미터 앞서가는 아저씨도 같은 방향 같아보여 따라 걷는데, 갑자기 이 아저씨가 좁은 골목으로 쑤욱 빨려든다.

게을러 터진 내 직감이 이 날 작동한 것일까?
호기심에 얼른 나도 좁은 틈으로 들어섰다. 일방통행만 허용하는 무뚝뚝한 좁은 길에 원색으로 채색된 벽화를 따라 그 아저씨는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

.

.

찰칵!

.

1

leica m6, uc-hexanon 35/2, ilford hp5+

.

.

.

셔터를 누르고서 비좁은 골목에 행여 맞은 편 행인이 들어올까 서둘러 안쪽으로 접어드니 방금 그 아저씨는 온데간데 없고, 다소 내밀한 공간이 눈 앞에 펼쳐진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생경한 풍경에 나는 마치 앨리스의 토끼를 만난 기분이었다.

.

2

leica m6, uc-hexanon 35/2, ilford hp5+

.

.

.

청양슈퍼를 지나 소제동 골목을 좀 더 탐색해보기로 했다. 이곳은 한 집 건너 한 집이 빈집인 듯 했고, 군데군데 무너진 담벼락과 깨진 계단은 수십년 간 재개발의 덫에 묶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풍경은 우유부단함 그 자체였다.

.

3

leica m6, uc-hexanon 35/2, ilford hp5+

.

.

.

구불구불 좁은길이 익숙해질 무렵 골목의 끝에서 만난 건물은 프랭크 게리의 기상천외한 매스 배치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서너 채의 건물이 담쟁이 넝쿨처럼 가파른 경사지를 타고오르며 지어져 있고, 기댄 자리의 각도에 따라 자연스럽게 건물의 방향도 제 각각 결정된 듯 보였다. 짧지 않은 세월 하나의 덩어리로 온기를 주고받으며 지냈을 터인데, 어떠한 이야기가 있는건진 모르겠으나 지금은 부분적으로 철거된 후 마감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채 다소 을씨년스러운 풍경으로 변질되어 있다.

.

4

leica m6, uc-hexanon 35/2, ilford hp5+

.

.

.

이 건물이 소제동의 경계지점인 것을 확인하고 나는 다시 ‘앨리스의 광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청양슈퍼 가까이 도착하니 골목 안쪽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온다. 아저씨 세 분이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는데 내심 얼마나 반갑던지.. 처음의 생경한 풍경은 삼십분이 채 지나지 않아 익숙한 풍경이 되어 있었고, 그 익숙함을 근거로 나는 셔터를 한번 더 끊을 수 있었다.

.

5

leica m6, uc-hexanon 35/2, ilford hp5+

.

.

.

이번엔 슈퍼 맞은편 좀 더 비좁은 골목에 도전할 차례다. 미지의 통로로 스무걸음이나 걸었을까? 이런 막다른 골목이다.  아니 아니다. 일견 막힌 길이었으나, 왼쪽으로 그늘 진 곳으로 좁은 길이 끊어질 듯 아슬하게 이어져 있다. 이에 안도하며 잠시나마 가슴 졸이게 했던 괘념한 벽을 쳐다본다. 문득 벽의 크랙 하나가 해방의 몸짓으로 날카롭게 갈라진 것이 가슴 한 구석을 쿡쿡 찌른다.

.

6

leica m6, uc-hexanon 35/2, ilford hp5+

.

.

.

소제동의 담은 대체로 낮다. 행인의 눈 높이로도 본의 아니게 담 너머 풍경이 불쑥 찾아든다. 두 사람이 지나가기엔 어깨를 한 쪽씩 양보해야 할 만큼 비좁은 골목길에 만약 담까지 높았다면, 아마도 이곳은 적막한 수용소의 이동통로를 연상케했을지도 모를 일이니 담을 낮게 잡아 비록 좁더라도 답답하지는 않도록 골목이 동네 풍광을 배려한 듯 했다.

.

7

leica m6, uc-hexanon 35/2, ilford hp5+

.

.

.

낮은 담, 낮은 지붕 그리고 지붕 너머 신묘한 몸짓으로 춤추는 무당집 깃발

.

8

leica m6, uc-hexanon 35/2, ilford hp5+

.

.

.

낮은 담을 따라 조금 더 걸으니 드디어 친구의 시선을 멈추게 했던 유리조각 꽂힌 담을 발견했다. 나를 소제동으로 이끈 “바로 그 풍경”이다. 이 풍경을 어찌 갈무리할까 잠시 고민하다 까슬한 질감의 벽면을 존쓰리로 잡고, 베일듯 날카로운 유리조각과 그 곁을 아슬하게 지나는 전선을 잘 정돈하여 셔터를 끊었다.

.

9

leica m6, uc-hexanon 35/2, ilford hp5+

.

.

.

나는 사실 골목사진을 크게 즐기는 류는 아니다. 그럼에도 사진 핑계로 옛 향수 머금은 골목을 걸을 때면 내심 오래도록 보존되었음 하는 바램을 가지게 된다. 어린 시절 뛰어놀던 우리 동네 골목길을 김기찬선생님의 사진집에서만 감상하게 되는 건 싫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소제동 골목길은 어린 시절 내가 뛰어 놀던 그 골목이 아니었다.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죄수 마냥 점차 쇠락하여 을씨년스런 풍경으로 변해가는 이 곳은 불안함과 미안함, 연민과 안타까움 외 다른 감정이 끼어들 여지는 크지 않았고, 결국 두 시간 남짓 소제동의 시간은 친구의 SNS에서 보았던 온기 어린 풍경이 아님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

.

.

10

leica m6, uc-hexanon 35/2, ilford hp5+

.

.

.

사진적 행위가 결국 연속된 시간과 공간을 촬영자의 (의식하든 그렇지않든) 의도에 따라 재단(프레임)하고 박제(촬영)하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의식했든 그렇지 않든 간에) 나는 이 곳의 그늘진 모습을 강화시킨 것이고 내 친구는 이와 반대였던 것이다. 친구는 과연 어떤 인상과 과정으로 소제동을 만나고 온 것일까?

.

이번 주말 커피 한잔하자고 불러야겠다.

 

 

 

카테고리:Drifting, Essay태그:, , , , , , , , , , , ,

1개의 댓글

  1. 카메라 핫슈에 고프로 달고 찍은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현장감이 있는 글과 사진입니다.
    좋은 포스팅 고맙습니다.

    멋지네요.

    Liked by 1명

  2. 좋은 글, 좋은 사진 감사합니다.

    Liked by 1명

  3. 저역시 무척 흥미를 느끼던 소제동에 대한 사진과 글 너무 잘 감상했습니다. 그나저나 이런 필진을 모셔온 저에게는 인센티브라도 좀 줘야하지 않습니까? 스탈님, 피울님? 예를 들면 고정필진 한주 거르기 같은 ㄷㄷ

    Liked by 1명

  4. 찬스에 특히 더 강하신 주아비님!
    이번에도 좋은 구경했습니다. 좋은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Liked by 1명

  5. 주아비님의 사진에 대한 열정이 느껴지는 멋진 글과 사진 잘 보았습니다!^^

    Liked by 1명

  6. 대전에 이십년을 살았는데 부끄럽게도 처음 들어 보는 동네 이름이네요. 덕분에 잘 감상하였습니다. 🙂

    좋아하기

  7. 작은 공간에서도 깊은 사유를 가지시다니 부럽습니다. 언젠가는 없어질 풍경에 대한 기록 또한 잘 봤습니다^^

    Liked by 1명

  8. 제가 생각하던 포스팅과 비슷해서 좌절감을… ㅠ
    좋은 글, 사진 감사합니다.

    좋아하기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