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곳, 섬진강


봄을 맞이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최고로 꼽는 봄 맞이는 매화를 보러 섬진강을 찾는 것이다. 2월부터 피어나기 시작하는 매화는 3월 중순이면 절정에 달하는데 섬진강 서안의 다압면에는 매실농원들이 자리하고 있어 이 시기에 장관을 이룬다. 섬진강의 포근한 풍경과 어우러지는 매화의 모습은 이보다 봄스러운 이미지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언제나 설레이는 장면인데 봄에 섬진강을 찾지 못하면 제철음식을 못먹고 지나간 듯 한 해가 아쉽다.

아침 7시경 출근하듯이 집을 나서 경남 하동을 향해 달렸다. 18만 키로가 다되어가는 내 똥차 96년식 아반테는 이틀전 엔진오일을 간 덕인지 오늘따라 제법 잘 달려준다. 밟으면 밟는대로 죽죽 나가는 평소답지 않은 놀라운 엔진파워를 보여주며 3시간여의 질주 끝에 하동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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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on 397

학교 다닐 땐 차가 없으니 청량리역에서 여수행 무궁화호 마지막 밤기차를 타고 하동으로 내려왔었다. 새벽에 하동역에 내리면 아직 해도 뜨지 않아 어둑어둑했는데 그 시간에는 다니는 차도 없고 택시를 타는 것은 사치였으니 그저 건강한 두 다리로 열심히 걸어서 섬진강가 하동 송림까지 가곤 했다. 아무도 없는 모래밭에 서서 동녘이 밝아오는 것을 기다리며 차가운 강바람에 몸을 움츠리고 있던 내 모습을 지금 생각하니 웬 청승인가 싶기도 하다만 그렇게 벌벌 떨며 섬진강의 일출을 찍고는 저 다리를 건너 광양 다압면 매화마을까지 걸어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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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on 399

섬진강의 재첩을 건지는 아저씨. 이른 아침, 카메라를 주렁주렁 들고 갑자기 나타난  낯선 이의 인사도 반갑게 받아주시며 많은 얘기를 들려주셨다. 매화꽃은 아직 좀 이르다며 다음주 정도는 되어야 절정에 이를 것이라는 말에 광양으로 건너가기에 앞서 약간 걱정이 든다. 재첩 요리는 재첩국 밖에 떠오르지 않아 다르게 먹는 방법은 없냐고 여쭈었더니 숙회로도 먹는다고 하셨는데 아직 먹어보진 못해 사뭇 궁금해진다. 섬진강에 들르면 꼭 맛보아야할 음식이 재첩국이다. 미각을 자극하는 전세계의 온갖 화려한 음식들이 흔해진 오늘날, 특별한 양념도 없이 재첩만을 넣고 끓인 국이 뭐 그렇게 엄청난 맛을 자랑하겠냐만 그래도  그 뽀얀 국물 한 숟갈을 입에 넣으면 섬진강과 봄의 향기가 온 몸에 퍼져오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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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on 401

섬진강 어민회의 낡은 컨테이너 건물. 섬진강은 아직도 그 맑은 수질이 유지되고 있는 몇 안되는 강 중 하나로서 재첩을 비롯하여 향긋한 수박향이 난다는 은어, 수질이 조금만 오염되어도 적응하지 못하는 민물참게가 잡힌다. 참게는 군사지역이라 보호받는 임진강 외에는 섬진강에서만 잡히는데 마침 군복무했던 부대가 임진강과 가까워 참게 매운탕은 종종 맛볼 수 있었다. 이번 여행길은 혼자라 양이 많은 매운탕은 먹기 뭐해 역시 재첩국을 먹으려다 참게장 정식을 시키면 재첩국도 따라 나온다기에 그리 했다. 꽃게장에 비해 살이야 비교할 수 없을만큼 적지만 향긋하고 깊은 맛이 썩 괜찮았다. 이 모든 섬진강의 혜택을 계속 누릴 수 있도록 맑은 수질이 유지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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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변 둑에 피어난 매화. 아직 좀 이른 시기라 흐드러지게 핀 상태는 아니었지만 접사를 즐긴다면 꽃잎이 싱싱한 이 시기가 더 제격일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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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on 407-1

다리를 건너자 넓은 부지에 매화축제를 알리는 애드벌룬과 행사장 천막들이 눈에 띄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늘 찾던 그곳으로 향했다. 평일이라곤 하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관광객들이 거의 없어 조용해서 좋았다. 풍경 속에 녹아든 어느 노부부만이 매화를 카메라에 담는데 열중이셨다. 연세가 제법 되어 보였는데도 DSLR을 사용하시는 것이 대단해 보여 인사를 드리며 잠시 얘기를 나눴다. 30년이 다되어 가는 내 롤라이플렉스를 보시며 요즘도 이런 카메라를 쓸 수 있냐 물으시기에 DSLR도 쓰실 정도로 저보다도 더 신세대이신 것 같다고 하니 우리야 잘 못찍으니 디지털을 쓴다며 쑥스러워 하셨다. 섬진강의 봄과 썩 잘 어울리는 두 분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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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on 406

봄은 봄이다. 매화가 점점히 피어나는 섬진강변의 마을에서 모종을 심고 밭을 손질하는 일손이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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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on 408

난 카메라에 담고 이 분은 캔버스에 담는 중. 파레트에 짜놓은 물감의 색채가 발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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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on 410

섬진강의 맑고 잔잔한 물, 깨끗한 백사장. 섬진강을 찾으면 언제나 마음이 포근해진다. 섬진강이 배출한 文人 김용택의 책을 가져올 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섬진강 15를 이 곳에서 읽는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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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15  -겨울, 사랑의 편지

산 사이
작은 들과 작은 강과 마을이
겨울 달빛 속에 그만그만하게
가만히 있는 곳
사람들이 그렇게 거기 오래오래
논과 밭과 함께
가난하게 삽니다.
겨울 논길을 지나며
맑은 피로 가만히 숨 멈추고 얼어 있는
시린 보릿잎에 얼굴을 대보면
따뜻한 피만이 얼 수 있고
따뜻한 가슴만이 진정 녹을 수 있음을
이 겨울에 믿습니다.
달빛 산빛을 머금으며
서리 낀 풀잎들을 스치며
강물에 이르면
잔물결 그대로 반짝이며
가만가만 어는
살땅김의 잔잔한 끌림과 이 아픔
땅을 향한 겨울 풀들의
몸 다 뉘인 이 그리움
당신,
아, 맑은 피로 어는 겨울 달빛 속의 물풀
그 풀빛 같은 당신
당신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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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on 411.jpg

2008.03.10. 섬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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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

  1. 좋은 사진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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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불과 십년!
    격세지감이 듭니다.
    하동은 나도 무척 좋아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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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피울님이랑 하동 왠지 잘 어울립니다. 하늘하늘 트렌치 코트 입고 강변을 거니는 시니컬한 모습이 뭔가 매칭이 잘되는 ㄷ 언제 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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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전라남도에 3년이나 있었으면서 왜, 봄날의 섬진강을 가보지 않았을까요…
    아… 좋은 글, 좋은사진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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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콘크리트 다리, 낡은 컨테이너 박스, 느긋한 전선들 마저 그대로 섬진강이 너그러이 품어 아늑한 풍경으로 완성하네요.
    완연한 봄의 문턱 시의적절한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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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6년에 가서 먹어본 재첩~ 다시 먹고 싶어 집니다.

    다시 가보고 싶어지는 그곳~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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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그러고보면 구례, 하동, 섬진강 왜 단 한번도 못가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싸돌아다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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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언젠가 봄에 잊지 않고 꼭 가 볼 수 있도록 적어 놔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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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4년 전에 하동에서 하루 잤던 기억이 있네요. 참 좋았는데 다시 가고 싶게 만드는 글과 사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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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지금도 저기가면 그 곳의 재첩국을 먹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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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섬진강은 벚굴이죠.
    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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