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풍정도


2009. 2. 1 오후_남조풍정도에 들다.

남조풍정도 여행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가이드가 있고 교통편과 음식과 평안한 잠자리까지 제공되는 풍성함과 안락함은 배낭여행길에 나선 가난한 행자에겐 제법 사치스럽지만 여행의 한 토막쯤은 이래도 좋을 것이다.

늦은 오후!
일행을 태운 빵차는 한 시간을 더 달려 선착장에 일행을 뱉어 놓았다. 일행이라고 해 봐야 조를 맞춘 다섯이 전부다. 하늘은 여전히 아득히 멀고 맑았으며 호흡마다 파고드는 매끈한 공기는 청량하다.  눈앞에 보이는 작은 섬은 꿈처럼 누웠고 긴장했던 심신은 늘어져 흐물거렸다.

해질 무렵 얼하이는 몽환적이고 신령스러웠다. 섬을 돌아 구석구석 산책길은 앙증맞고 깨끗했으며 얼하이의 맑디맑은 옥수는 몸속까지 밀려왔다 밀려갔다. 여전히 향기로운 바람은 세포하나하나를 간지럽혀 깨웠다. 깔끔하게 정돈된 백족전통가옥에서 맞이하는 얼하이의 석양은 바야흐로 “영광”이었으며 핑계 삼아 취해도 좋을 밤이었다. 얼하이 어머니의 호수에 잠겨 맞이하는 만찬은 바쿠스의 그것이었을까! 좋은 안주와 마실 술이 넘쳤다. 이날은 밤새 마셨고 밤새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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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일_남조풍정도에 머물다.

프로그램대로라면 이른 아침을 먹고 나서야 했지만 밤새 취한 몸은 허물어져 꼼짝할 수 없었다. 결국 일행과 같이 섬을 나가지 못했다. 나가지 못한 것인지 나가지 않은 것인지 분간할 수 없다. 다시 하루가 저물도록 토하고 또 토했다. 한 모금 물조차 넘길 수 없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여전히 높고 얼하이는 아름다웠다. 얼마나 토했던지 가슴에 멍이 들었다. 더 이상 토해 올릴 수 없을 것 같은데도 기어코 기어 올라와 토해졌다. 토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토해낼 듯 했으나…그러나 한 덩어리! 삼키지도 뱉어지지도 않는 그것. 그것은 끝내 뱉어내지 못했다.

호숫가의 집은 아름다움의 절정이다. 자연스러웠고 그 자연스러움이 고졸하고 담박한 사치의 극치라고 생각했다. 돌아나가는 수로에서 한 바게스의 물을 길어 쏟아놓은 것을 내리던 깨끗하고 소담스런 화장실이 그립고, 묵은 나무둥치로 엮어놓은 고풍스런 세면장엔 노란 놋대야 세 개가 올망졸망 놓여서 차가운 얼하이 옥수에 허물어진 몸을 추스르던 시간이 또 사무치게 그립다.

아내는 내가 시체놀이를 하는 동안 섬 구석구석을 탐사했던 모양이었다. 여긴 이래서 좋았고 저긴 저래서 좋았다고 재잘거린다.

다 저녁때가 되어서야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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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_남조풍정도를 나선다.

예정보다 하루가 지체되었으나 오히려 다행이다. 이런 기회가 아니었다면 저승과 천국을 언제 또 경험해 볼 것인가! 안색이 돌아온 나를 본 주인 아주머니가 다시 살아 돌아 온 것을 축하한단다. “미씨엔(쌀 국수)”으로 마련해 준 아침은 꼬박 하루 만에 접하는 곡기다. 국수는 먹을 수 있을 것 같다며 마련해준 아주머니의 세심함이 고맙다. 한 젓가락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국수는 감격이다. 어제 타국의 낮선 부엌을 빌려 아내가 마련해 준 죽은 거의 먹지 못했다.

살아있음에 아름답고 거룩하여라. 밤새 찰방찰방 속삭이던 얼하이는 아침 햇살에 찬란하다. 짐을 챙겨 나서는 걸음에 주인아주머니가 선착장까지 배웅한답시고 따라 나선다. 다시 꼭 오라는 인사와 함께 아쉬운 작별을 하였다. 얼하이는 아주머니만큼이나 따뜻했다. 어머니 품속이거나.

이제 리장으로 간다. 새로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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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뒤로 돌아나가면 조그만 백사장과 호수에 산다는 인어를 만날 수 있다. 아름다운 뒷 마당을 가진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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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이라고 하는데 성수기에만 운영하는 모양이다. 이때는 아직 비어있는 듯 했다. 없어져도 좋겠다 싶은 건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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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자고 토했던 아름다운 집이다. 백족 전통가옥을 게스트 하우스로 사용하고 있었다. 손을 내밀면 닿을 듯 하늘과 얼하이를 담은 포근한 침상에서 허물어 졌고 다시 그 침상에서 살아났다. 굉장히 너른 방이었으나 아내와 둘이서만 사용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주인 아주머니의 배려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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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 많이진 주인 아줌마. 덕분에 살았다. 아직도 눈빛엔 측은지심이 가득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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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 : Hasselblad X-PAN + 45mm
BW : Leica M6 + Summicron 35mm 5th

카테고리:Drifting, Essay태그:, , , , , , ,

1개의 댓글

  1. 완전 물에 닿아 있는 게스트하우스가 인상적입니다.
    근데 여행지에서 술을 얼마나 많이 마셨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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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책이 없는거죠. 네~~마시지도 이기지도 못하는 걸 하려고 하는 건 객기입니다. 욕심인거죠. 사는 것도 딱 이모양이네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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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그또한 추억이고 그리움으로 남겠지만 무슨 술을 그렇게 ㄷ 이 쯤되면 형수님이 천사이신 걸로. (뭐 이쁘다고 죽까지 끓여주시고 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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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지금도 가면 저럴 수 있을까요? 당시여서 가능한 낭만이 느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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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프로그램대로라면 이른 아침을 먹고 나서야 했지만 밤새 취한 몸은 허물어져 꼼짝할 수 없었다”
    이 말씀은 지난 일요일 죽도출사를 하이패스하신 시츄에이션에랑 꽤나 겹쳐보입니다. 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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