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길 #1


2009. 2. 4_호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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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도협 트래킹을 시작하는 초입의 풍광이다. 드러누운 산들의 실루엣만으로도 심장이 벌렁거렸다.]

세상에서 가장 깊은 협곡 호도협! 5,000m가 넘는 히말라야 마지막 봉우리 옥룡설산과 하바설산 사이의 대협곡이다. 하늘 끝에서는 만년설이 옥처럼 부서지고 세상에서 가장 길다는 장강이 금사강으로 이름을 바꿔 호기롭게 흐르면서 갈라놓은 16Km에 달하는 길고 거대한 협곡은 하늘에 닿을 듯 2,000m 상공으로 열려있다. 마방들이 목숨을 걸고 넘었던 길! 저 멀리 남쪽 시솽반나에서 출발한 차마고도는 보이를 지나 따리, 리장, 샹그리라를 거쳐 토번(티벳) 라싸에 이른다. 호도협은 이 장도 가운데 리장에서 샹그리라 사이에 자리잡은 거대하고 아름다운 협곡이다. 생명의 차를 담고 이 길을 건넜을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가장 젊었던 지구의 한 덩어리 속으로 간다.

리장에서 출발한 버스는 두어 시간을 달려 차우터우에서 일행을 내려놓았다. 이곳이 호도협 트래킹의 시작점이다. 제법 큰 마을 한켠으로 벌써부터 옥빛 계곡이 호랑이의 기운으로 쏟아져 내린다. 입산표를 끊기도 전부터 호객꾼들이 극성이다. 그들이보기에도 어수룩해 보이나! 한때는 마방이었거나 그 마방의 후손일 터였으나 지금은 그 말로 여행객을 실어 나른다.

길이 힘들 테니 말을 타고 오르라고 꼬신다. 걸어서 넘겠노라고 한사코 거절했으나 28밴드까지는 힘들다고…편히 넘으라고…유혹을 뿌리치고 협곡 속으로 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자처럼 따라 붙은 마방아저씨! 언제부터인가 일행을 멀찌감치 따라 붙었다. 무시하고 모른척해도 연신 싱글싱글 하면서 아랑곳 하지 않는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포즈까지 취하면서 능글거렸다. 걷다 지치면 말을 타게 될 것이란 걸 알고 있었던 것인지. 탈거리가 있다는 안도감에 의지가 무너진 것인지…주저앉고 싶을 때 탈 꺼리가 눈앞에 있다는 것은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다. 이들은 적어도 이곳에서 만큼은 나보다 스무 배쯤 슬기로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두어 시간을 걸어 첫 번째 휴식지인 나시객잔에 도착했다. 노란 옥수수가 걸려있는 풍경 아래 걸터 앉아 내어 온 허브차를 마시며 땀을 식혔다. 지금부터 호도협의 난구간이 시작된다. 높은 고도 탓인지 숨이 차고 걸음이 더디다. 땀은 그렇게 많이 흐르지 않는다. 건조한 기후 탓일 거다. 차우터우부터 따라 왔던 마방아저씨가 여전히 같은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 붙었다. 우리가 이대로 28밴드를 넘으면  그는 하루를 공치게 되는 것이다. 28밴드를 코앞에 두고 결국 말을 타고 말았다. 동정심이건 약해빠진 체력 탓이건 어쨌거나 아내와 나는 짐을 말에 싣고  교대로 말에 올랐다. 말 삯은 입구에서보다 오히려 더 비싸게 불렀으나 깎았다. 말이 한마리밖에 따라 붙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마바리 아저씨는 연신 누런 이를 내어놓고 입을 귀에 걸었다.

28밴드를 올라서면서 말을 내려 걸었다. 여기서부터는 능선을 따라 걷는 길이라 험하거나 힘들지 않다. 오른쪽으로 처녀봉 옥룡설산과 새까맣게 아득한 아래로 협곡과 다락논들과 때때로 만나는 작은 마을 그리고 그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시간을 나누다 보면 사람들의 찬사가 뻥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알게 될 것이다. 4시간여를 더 걸어서 차마 객잔에 여장을 풀었다.

 ‘밝아져서 올 것이다. 좀 더 겸손해져 올 것이다.’ 떠나오면서 끄적거려 놓은 일기를 보니 이렇게 써 놓았다. 바로 눈앞은 이렇게 치열한데 먼 산은 언제나 고요하다.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휘말리지 않는다. 그 분도 결국 휘둘려서 휘말렸고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없는 것이다. 설령 있다한들 너나 나 같은 사람이 알아서 분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 에게 좀 더 너그러울 수 있길 간절히 바랬다. 더 나다운 결로 세상을 만날 수 있을까! 이 여행은 그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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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시객잔, 옥수수 아래 걸터 앉아 허브차를 마셨다. 계란후라이에 토마토를 곁들인 것도 한접시 먹었다. 꿈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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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터우에서부터 마바리 아저씨가 따라 붙었다. 호구인걸 눈치 챘던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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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돌아갔나보다. 웬 걸…손까지 흔들며 따라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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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호갱이 되는 걸로…이렇게 편한 걸…애용들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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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도협을 건너려면 1박을 해야 한다. 이미 수십 곳의 객잔이 길가에 늘어섰으나 입소문으로 여행객들이 묵어가는 곳은 대략 정해진 모양이다.

차마객잔!
이곳에선 닭백숙을 먹을 수 있다. 주인아주머니의 눈썰미는 세계 각국의 음식을 흉내 내고 있었다. 김이 오르는 백숙 뒷다리 하나를 들고 보니 먼 저간 행자의 발자국이 선명하다. 객잔의 주인아저씨는 40대 중반이다. 젊은 시절 광산에서 벌어먹었다. 벌어먹는 일이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이 깊은 계곡에 여행객들이 지나면서 그의 아내는 객잔을 꾸렸다. 손끝에 인심이 묻었으니 사람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조금씩 객잔이 커졌고 아저씨는 광산일을 그만 둘 수 있었다. 지금은 호도협 수십 곳의 객잔 중 으뜸이라고 한다. 첩첩산중 오지에서 나고 자란 부부의 지혜는 어디서 얻은 것일까 생각했다.

지혜로운 부부의 객잔에 수많은 별과 함께 밤이 내려앉았다. 아름다운 밤이다. 객잔의 방에 불들이 모두 꺼지도록 뒤척거렸다. 모두들 잠 든 늦은 밤. 별구경 삼아 마당으로 나왔더니 어디선가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주방에서 나는 소리다. 염치를 무릅쓰고 함께 하고 싶다고 했더니 흔쾌히 자리를 내 주었다. 비로소 일손을 놓고 그들만의 시간이 찾아왔다. 공부에 재능이 없는 큰 아들,아버지 일을 잘 도와주는 군인이 되고 싶다는 작은 아들, 일손이 바쁘면 언제고 와서 도와주는 매제 녀석, 관연하게 익은 막내여동생, 대처에 일 나갔다 늦게 돌아온 이웃의 아들 친구 녀석까지 부엌에 걸터앉은 채 가양주에 땅콩안주면 족하다. 아주머니는 아직 설거지 손을 놓지 못했다. 옥룡설산에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가마꾼을 하고 있다는 아들 친구녀석의 표정이 무척 밝다. 사관학교에 가고 싶다는 작은 아들은 다부져 보인다. 취기가 오른 주인장의 옛 이야기가 굵은 목소리에 묻어 나직하게 깔리는 밤이다. 별이 쏟아진다.  이 밤은 언어로 형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싶다. 이들처럼 맑고 깊은 잠을 이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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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잔의 뜨락에서 본 옥룡설산, 처마끝에 설산이 열렸다. 석양무렵과 해뜰무렵의 장관을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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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장은 마을 이장쯤 되는 듯 하다. 새해엔 뒷산에 나무를 심어서 마을 사람들 생계를 꾸려 낼 꿈이 있었다. 이렇게 성공한 몇 집을 제외하고 마을은 아직 궁박하다. 모자를 쓴 작은 아들은 사관학교에 가고 싶은데 부모는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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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제녀석이다. 우직하고 순박한 느낌이 좋은 청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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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메론을 안주로 내어 놓았다. 다 익은 막내동생은 참하고 아름다웠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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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들보다는 큰 아들 녀석이 걱정이다. 이 녀석은 공부에 취미가 없다. 착하기만 하다고 걱정이었다. 아들 친구녀석은 이웃에 산다. 옥룡설산에서 가마꾼으로 생계를 꾸린다. 20대 초반의 청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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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장 연설중이신 주인장, 목소리가 나직하게 깔리는 깊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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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 바닥에 걸터앉아 한 새벽이 되도록 술과 이야기가 넘쳤다. 평생에 기억 될 아름다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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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아름다운 마을이다. 하얀 빵과 수유차를 먹었다. 성찬이었다.]

카테고리:Drifting, Essay태그:, , , , , , ,

1개의 댓글

  1. ㅋㅋ 마바리 아자씨~ 재미집니다.
    근데, 여정이 차마고도와 함께 하셨는가요? 이제사 짐짓 눈치를~

    좋은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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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마고도를 가이드 삼아 갔습니다. 막 꼼꼼히 계획하고 움직인 건 아니고요. 몇 가지를 띄워 놓고 가면서 하나씩 … 못한게 더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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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 이 시리즈 책으로 만나볼 수는 없는건가요? 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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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정말 귀하고 아름다운 사진과 이야기입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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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꼼꼼히 읽었습니다. 네팔 가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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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저녁상 사진이 뭔가 아득한 옛 기억처럼 느껴지네요. 이어지는 이야기도 기대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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