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띠엔에 남은 풍경


2009. 2. 8. 위엔양 띠띠엔元陽梯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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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들어섰더니 온 마을의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저희들이나 나나 서로 구경꺼리들이다. 조용하던 마을이 시끌시끌하다. 머물고 싶었지만 잠시 삐져 나온 중인지라 어쩔 수 없다.]

미리 약속해둔 가이드가 새벽을 깨웠다.  반사부는 5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날카로운 인상의 아저씨다. 잘 한다고 소개 받은 사람이었으나 첫인상은 밝지않다. 전속 가이드 하기로 했는데 일행이 두 팀이나 더 있다. 말하자면 초보 가이드 일행을 이 양반이 가이드 하는 모양인데 굳이 나무랄 입장은 아닌 것 같아 내색하지 않기로 했다. 관광객들을 피해 속닥하게 그들 속으로 들어가겠노라 약속한 터였으나 통 사정을 하는데 물리 칠 방법이 없다.

몸살기가 온몸을 돌았다. 눈알이 빠질 듯 하고 땀구멍까지 아프다. 오늘 하루는 매우 힘든 여정일 것 같다. 일출이 장관이라는 곳으로 일행은 이동했다. 중국 도처에서 몰려든 사진애호가들과 계란 파는 아이들이 뒤 섞여 이미 장사진이다. 출사지마다 넘치는 풍경인지라 익숙한지 오래되었다. 물론 이런 풍광을 보겠다고 아픈 몸을 이끌고 이곳까지 온 것은 아니다. 일출의 장관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시큰둥해 하는 모습이 반사부에겐 부담이었을까!

-왜 사진 안 찍어?
-나는 이런 거 안찍어. 별로야.
상황을 설명했다. 무슨 말인지 알아 들었다는 것을 표정으로 알겠다. 그는 오히려 반가워했다. 다른 일행에게 상황을 설명했더니 한 팀은 동행을 결정한 모양이고 다른 한 팀은 관광을 선택한 모양이다. 동행을 결정한 팀은 상하이에서 온 할아버지 사진가들이다. 상황을 정리하고 돌아온 반사부는 상기된 표정으로 오늘 하루 각오하라고 말했다.

겪을수록 반사부는 인상적인 사람이다. 날카로운 인상만큼이나 까칠한 사람이었는데 일에 있어서도 나름대로 완벽을 추구하는 듯 했다. 상황이 발생하면 더 좋은 선택을 하려고 노력하였으며 그 선택은 본인의 이익이나 편리보다 객의 입장을 고려한 것이었다. 새(굉장히 비싼 애완용)를 잡고 키워서 생계를 한다고 했는데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이곳에 사람들이 북적일 땐 가이드로 용돈벌이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의 초상이 필름에 하나도 남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쉽다. 그가 안내하는 코스는 많이 걸어야 했다. 각오하라던 이유가 이것이었나 보다. 종일 걸었다.

마을과 마을을 건너갈 땐 일삼아 들러 주었으며 때론 다른 일행을 먼저 보내기도 하고 또 때론 기다려 주기도 했다. 그가 안내한 풍광은 그대로 장엄이었다. 내가 가진 능력으로 이 장엄함을 표현할 수 없다. 자연의 위대함과 더 위대한 인간의 노동이 공존하는 이 곳! 이곳에서 신은 어쩌면 사람 스스로 일 거라고 생각했다.

어떤 마을은 아직 차가 들어오지 못하는 것 같다. 삼사십 분은 족히 걸어 마을에 들어섰다. 고립무원孤立無援. 이곳을 처음 찾아 들었을 조상을 생각했다. 이들은 개, 돼지와 함께 산다. 일층과 이층의 구획이 있다지만 의미 있어 보이지 않는다. 사람의 공간인 이층은 끓여 먹는 곳과 자고 번식하는 곳이 뒤엉켜 있다. 흔적으로 구분 될 뿐 구조물로 공간을 단절시켜놓지 않았다. 집단과 흙으로 만든 집들은 헐리고 콘크리트와 위성안테나가 들어찼다. 위성을 타고 들어 온 한류는 이들의 저녁시간을 잡아먹고 있었다. 이곳에선 모든 필요한 것을 이고 져서 날라야 한다. 너무도 선명한 노동은 젊으나 늙으나 예외 없다. 먹고 마시고 숨쉬는 모든 일이 노동에 물려 돌아간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이곳에서 나고 이곳에서 살았다. 머지않아 이곳에서 돌아갈 것이다. 빈약한 세간과 깊은 주름이 그렇다고 슬퍼보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 옆에서 건조한 셔터질만 해댔다.

감탄과 안타까움은 늘 함께였다. 고단한 삶의 흔적들이 떠나온 사람들에겐 보여지고 즐기는 것에 그친다. 아름다운 것들의 이면에 베어있는 고단함이 딱 그만큼 이었다. 인간의 노동이 아름다운 것인지 그 노동의 결과가 아름다운 것인지 분별되지 않는다. 지극한 아름다움은 결국 피와 땀의 흔적들인 것이다. 썩은 감탄사가 튀어나왔지만 결국 삼킬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럴 자격이 없다.

해질녘 반사부는 일행을 일면 포인트란 곳에 데려다 놓았다. 혼자 남아 돼지와 개와 아이들과 더 놀고 싶었지만 이 나마 영감이 많이 양보한 것임을 알고 있다. 벌써 한 무리가 삼각대 진을 펼치고 있다. 전통복장을 한 젊은 여자와 어린 여자아이가 무리 속에 섞여 있다. 젊은 여자는 봉긋하게 물이 올랐는데 뿌리에 흙이 다 마르지 않은 들풀이 담기 바구니를 메고 있다. 어린 여자아이는 젊은 여자의 조카쯤 되어 보였다. 예쁘다. 카메라들 들이 밀었다. 젊은 여자는 손사래를 쳤는데 어린 아이는 카메라를 능숙하게 받았다. 외지인이 모이는 장소 어디에고 어린아이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몇 장의 사진을 더 찍었다.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었다. 사람들이 어깨를 부벼야 할 정도다. 짜증이 올라오기 전에 멀찌감치 벗어났다.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조금 전 그 여자아이를 두고 연신 셔터질을 해댄다. 포즈를 잡아주기도 하고 손에 쥐어 주기도 한다. 한발짝 떨어져서 보기에도 여자아이는 이미 너무나 익숙하게 카메라를 받았고 손에 쥐어주는 것은 더 익숙하게 받았다. 나는 더 이상 이곳에서 찍지 않았다.

띠띠엔의 역사를 누구는 1200년이라고 하고 또 누구는 그보다 훨씬 오래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1200년 전의 원시농경을 그대로 간직한 채 21세기를 흘러간다. 논두렁이 높은 곳은 수 미터에 이른다. 험준한 산 덩어리 허리 살을 삐져내어 고르고 어루만져 물을 가두고 씨를 뿌렸다. 사람은 그 언저리에서 같이 살았다. 곡괭이가 허공을 가르면 그 허공의 크기만큼 산 덩어리의 허리 살은 삐져나온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곡괭이는 허공을 가르고 하나씩 하나씩 손바닥만한 논댕이, 밭댕이들이 생겼다. 이 와중에 여자들의 배는 불렀고 생명은 이렇게 서로에게 기대어 천년을 훌쩍 넘어왔을 것이다. 여자들의 노동은 더 간절해 보인다. 생명의 잉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배가 불러서도 젖을 물리면서도 노동은 늘 붙어있었다. 지긋지긋 잔인함일지언정 그네들이나 나나 어쩔 수 없다. 속수무책인 것이다. 아이들은 자라서 망아지처럼 뛰어 다녔다. 맨발에 쓰레빠를 신고도 2,000미터 고지를 풀쩍풀쩍 뛰어 다니는 녀석들에게서 어릴적 모습이 떠올랐다. 오지의 땅으로 나를 이끈 힘이 이런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구름위에서 이렇게 살고 있었다. 동화책 속의 구름 위 세상은 찾을 수 없었다.

늦은 저녁 숙소로 돌아왔을 때 몸은 이미 녹아내렸다. 여전히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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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

  1. 너무 좋습니다. 프린트 한장 소장하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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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언젠가 가축과 인간이 함께하는 삶이 가져온 인류사의 전염병들이 생각납니다.
    물론~ 너무 오랜 세월~ 그마져도 서로 면역력을 키워 일상이 되어 버린 역사 속 이야기~ 그리고 뒤엉킨 삶이 일상이 되어버린 행복감 같은게 말이죠.
    더불어 다랭이 논들 모습은 뭉클하게 끓어 오르는 생명력이 느껴집니다.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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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파노라마 사이즈가 딱 저희집 거실 소파뒤 공간과 기가막히게 맞아들어갈듯해요.
    적당한 사이즈로 걸고서 두고두고 바라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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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어마어마한 풍경이네요. 실제로 마주하면 주저앉아 눈물만 흘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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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너무나 귀한 경험과 사진들이네요. 요즘은 특히 용기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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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진짜 너무너무 좋네요..
    역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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