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찍은부산


청접장이 도착했다. 어릴적 고무신 신고 개울서 같이 뛰놀던 녀석의 늦은 결혼이다. 식은 주말에 멀지않은 부산! 대충 축의금만 보내고 말일은 아니기에 아내에게 하루 갔다와야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아내는 이왕 내려가는거 부산 한바퀴 돌아보고 사진도 찍고 그리 하란다. 우왕 성은이가 무지망극이다.

아내의 승인도 떨어졌겠다 본격적으로 지인찬스와 인터넷 검색 등으로 부산에 가볼만한 곳 몇 군데를 후보로 올리고, 도보여행인 점을 감안하여 이동거리가 짧은 코스로 다음과 같이 선정하였다.

“자갈치시장 – 보수동(책방골목) – 국제시장”

죽도시장에 대한 애착이 다른 도시의 어판장으로도 이어지는 것인진 모르겠지만 자갈치는 꼭 가고 싶었다. 최대한 일찍 가서 운이 좋으면 경매현장도 볼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리고 부산여행 관련 블로그에서 이미 익숙해져버린 보수동 책방골목과 군것질로 허기도 채울 겸 먹자골목이 유명한 국제시장을 코스에 끼워넣었다. 대충 장소도 정해진 만큼 이젠 장비를 고민할 차례였으나, 한창 필름찍는 재미에 빠져있는 나에겐 필름바디에 35미리 초점거리의 렌즈 하나 그리고 일포드 HP5+ 흑백필름 서너롤이면 차고넘쳤다.

이렇게 저렇게 친구의 결혼식 날이 밝았고, 이른 아침 터미널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노포동에 떨어진 후 다시 지하철을 타고 남포역에 당도했다. 구멍을 빠져나오니 하늘에 구름이 빼곡하다. 야외에서 수동카메라 쓰기엔 참 좋은 날씨다. 카메라 셔터속도 다이얼과 렌즈의 조리개링을 적당한 값에 세팅하고 영도다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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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ilford hp5

스무걸음 남짓 걸었나? 약재상을 하시는 할머니와 강아지를 만났다. 잠시 물건가지러 가시는 할머니와 놀아달라고 조르는 강아지의 실랑이를 첫 컷에 담았다. 뭔가 재밌는 순간을 잡아낸 듯 했으나 필름카메라기에 당장 확인할 길이 없다. 디지털이었으면 재생버튼 눌러 그 자리에서 확인했겠건만.. 스냅 결과물에 대한 궁금증이 잠시 일었으나 어찌할 도리 없이 영도다리 쪽으로 걸음을 재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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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ilford hp5

영도대교를 건너지 않고, 반세기 전 점집들이 성황을 이루던 다리 옆 좁은 계단으로 내려갔다. 익숙한 바다 냄새가 코 끝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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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ilford hp5

평일 같았으면 분주했을 어판장 옆 해산물 창고도 한가한 일요일 오전을 보내고 있었다. 잉? 잠깐만..혹시 어판장도 한가한가? 아니나 다를까 서둘러 도착한 자갈치 어판장은 고요했다. 아뿔싸! 내심 기대했던 경매풍경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고, 하릴없이 노점 몇 개를 지나 탁 트인 바다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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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ilford hp5

음.. 과연 부산하면 갈매기 갈매기 하면 부산이로구나. 포항보다 백배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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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ilford hp5

바다를 품은 사내는 버거운 일상의 의연함을 잠시 내려놓고 센티멘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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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ilford h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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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ilford h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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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ilford hp5

자갈치 주변을 돌며 게으른 시장의 일요일 풍경을 필름 몇 컷에 구겨넣은 후 국제시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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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ilford hp5

텍스트는 강력하다. 이미지와 형태 따위보다 수만배 힘이 있다. 우리 안구는 자동인식기능이 탑재된 양 흘러넘치는 텍스트들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고 조목조목 색인한다. 그리고 나와 1이라도 관계된 것들은 연결점을 생성하여 붙잡아두는 흡인력을 가지고 있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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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ilford hp5

걸어서 도착한 광복동 젊음의 거리는 간밤의 술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고약한 풍경이었다. 젊은이들의 이런 모습에 혀를 차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나도 이제 40줄 어엿한 아재임을 셀프로 인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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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ilford h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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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ilford h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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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ilford hp5

여기는 보수동 책방골목. 흘러가며 몇 컷 찍고 금세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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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ilford hp5

1분 간격으로 재밌는 순간을 발견했던 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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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ilford hp5

별 흥미 없었던 보수동 책골목에서 보다 외려 여기서만 족히 20분 가량 머물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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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ilford hp5

삼거리 코너를 돌아 가파른 언덕을 지긋이 밟으며 올랐다. 숨이 가빠질 무렵 용두산공원 부산타워를 품은 옛 부산의 아기자기한 풍광을 만났다. 그래 바로 이게 부산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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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ilford hp5

언덕을 내려와 국제시장 먹자골목으로 들어선다. 이른 아침부터 버스에 지하철 그리고 바지런히 걸었던 탓에 꽤나 허기가 진다. 뜨끈한 오뎅국물도 좋고, 내 평생 페이보릿 떡볶이도 무지 맛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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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ilford hp5

이리저리 재지않고 적당한 식당을 골라 곧장 들어갔다.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음식 나올때가지 가게 안을 살폈는데,  개업할 때 시집와 가게의 역사를 묵묵하게 목도하고 있는 벽시계와 오래된 등유난로 그리고 좁은 가게 안에서 긴 시간동안 최적화된 테이블과 조리도구들의 배치까지.. 모든 것에 사람 냄새가 진하게 배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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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ilford hp5

간단하게 배를 채우고 이제 친구의 결혼식장으로 이동해야 할 시간이다. 이곳에 도착했던 남포역으로 되돌아가는 길에서 우연히 용두산공원을 안내하는 표지판을 발견했다. 손목시계는 시간이 빠듯하다고 아우성이었으나 언제 또 이곳에 오겠나 싶어 다녀와보기로 했다. 용두산은 실제 해발 49m로 높지 않은데다 광복동 방향에서 손쉽게 올라갈 수 있도록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었으므로 부담은 훨씬 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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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ilford hp5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는 도중 용두산 어깨치에 마련된 야외 체육시설이 흥미롭다. 어르신들 모두 기구 하나씩 맡아서 각자의 운동에 열중하고 계신다. 20년 뒤 나는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사진은 계속 찍고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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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ilford hp5

용두산공원을 마지막으로 지하철에 올랐다. 오전 내내 부지런히 걸었던 탓에 딱딱한 철제의자임에도 꽤나 아늑하다. 노곤함을 친구삼아 목적지까지 꾸벅꾸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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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6, ilford hp5

친구야. 결혼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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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

  1. 주아비님적 감성으로 녹여낸 부산의 모습~ 사모님의 성은은~ 옳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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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필름 한 롤에 담겨있는 스토리텔링이 너무 멋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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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모처럼의 자유와 여유를 즐기시면서도 시선만은 긴장을 유지한채 돌아다니셨군요. 이야기와 엮어지니 더욱 사진이 좋습니다. 부러운 컷들이 많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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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아….. 좋아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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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사진 한장 속 이야기까지 텍스트로 설명해주셔서 더 재미있었던거 같아요. 같이 부산 간 느낌이랄까요? 좋은 포스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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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몇 개월 지난 여행이었기에 기억이 가물가물했는데, 저 역시 한장한장 사진넘기며 사진 속 단서로 잠시 잊고지냈던 부산냄새를 다시 맡을 수 있었습니다. 같이 걸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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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마치 알던 동네같은 … 좋은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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