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부터 한 그릇


2. 11~12 쿤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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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밍으로 돌아 온 다음 날 오전내 일어나지 못했다. 몸이 불은 국수같다. 지난 며칠동안 오전엔 고만고만하다가 오후가 되면 파김치가 되곤 했다. 계획된 일정은 무너지는 몸을 지탱해 주었다. 오후 일정은 명흥차행이다.

리메이! 촌실방하면서도 세련된 기품이 있다. 단련된 사람들에게서 나는 아우라는 감추어지는 것이 아니다. 멀리서 온 손님을 대하는 표정과 차를 내는 손놀림에 야무진 노련함이 뚝뚝 흐른다. 매장 구석구석은 주인과 닮아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정갈하고 담박한 고상함이 풍긴다. 내어주는 차와 닮은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오후 내내 차실에서 늘어져 귀한 차를 마셨다. 해가 넘어갈 무렵 안내된 식당에서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푸짐한 저녁을 먹었다. 주소 한 장 달랑 들고 찾아 와서는 ‘김선생’ 이름 한자락 팔아 눅진한 대접을 받고 보니 세상은 참 넓은 듯도 좁은 듯도 하다. 명흥에 맡긴 하루가 넉넉하게 저물고 있다. 보이차 인연으로 시작된 여행이었으니 이 시간은 이번여행의 화룡정점이어도 좋겠다. 차 공부가 많이 된 날이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위엔양에서 같이 돌아다녔던 상하이 할아버지 일행과 마주쳤다. 기특하고 반가운 우연이다.

다음 날, 차시장으로 가던 걸음을 옮겨 명흥으로 간다. 지친 몸으로 고만고만한 곳에서 에너지 낭비하지 말자는 심산에다 그녀에게 어제 진 신세를 조금 갚아야 할 것도 같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태어난 아이를 위해 백화점에 들러 옷가지를 사서 선물했더니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냐고 그녀가 물었다. 아이가 건강하고 무탈하게 자라라는 한국식 풍습이라고 말해주었다. 잠시 들러 선물만 전달하려던 걸음은 달달한 차 고문을 이기지 못한 채 해가 넘어가도록 묶여버렸다. 태족식당에서 간신히 저녁대접을 하고서야 공항 가는 길을 내어 주었다.

늦은 밤토록 공항 귀퉁이에서 늘어져 있었다. 아쉬운 곤함이 한 덩어리다. 새벽에 도착하면 반드시…꼭…무조건 라면부터 한 그릇 하리라!

나가며

여행은 떠나 있을 때 보다 돌아왔을 때 참맛을 우려낸다. 추억 가운데는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무너지는 기억 한켠에서 오히려 오롯하게 점점 선명해지는 대목들이 있다. 이것은 내안에 남은 어떤 것들과 상호작용 하는 것이어서 세월이 내려 앉을 즈음 멋진 이야기 한 덩어리를 만들어 놓는다. 되새김질은 이렇게 여행의 진미가 되는 것이다. 희한하다. 집 떠나 사서한 고생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 말이다. 방전되기 전에 또 떠나야 할 것이다. 그럴 수 있을 것이다.

10여년 전 첫 배낭여행 이야기를 마칩니다.

카테고리:Drifting, Essay태그:, , , , , ,

1개의 댓글

  1. 피울님의 생생한 여행기가 여기서~ 훌쩍~ 훌쩍~ 이랬는데~ (10년전~ ㄷㄷ)

    그동안 잘 읽었습니다.
    (사실, 피울님의 사진과 글은 항상 좋은 술을 숨겨두고 마시듯 넘기 듯 좋았었더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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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긴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다라터치도 생각나고 리펑도 생각나고 어느 밤도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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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꼭 책으로 다시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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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10년전이야기라고 생각을 못했는데.. 우아. 역시 사진은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힘을 가진것 같습니다:)
    좋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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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추억 가운데는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무너지는 기억 한켠에서 오히려 오롯하게 점점 선명해지는 대목들이 있다.”
    공감이 많이 가는 구절입니다,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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