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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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무로(根室)에서의 둘째 날은 일본의 땅끝까지 가는 날이었습니다.
이번 여정의 최종 목적지였습니다.

아침 일찍 차를 빌려 히가시네무로(東根室)역으로 향했습니다. 역무원이 있는 역으로는 네무로역이 JR(Japan Railroad)의 최동단이지만, 전체 역 중에서는 히가시네무로역이 최동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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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가 사이에 숨어있는 역에는 플랫폼과 표지판, 시간표 정도가 걸려있었습니다.

열차가 오려나, 잠시 서성이다 셀프를 찍고 하나사키(花咲)항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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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北海道)자체가 그렇지만, 네무로는 서로 오오츠크(Okhotsk)해에 동으로 태평양에 닿아있습니다. 특히 러시아와는 40km 정도 밖에 떨어져있지 않을 만큼 가깝습니다. 네무로에서는 종종 러시아어로 쓰여진 간판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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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사키 항의 고요함이 이질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바람이 무척 불고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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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파제는 갈매기들이 점령한 것 같았습니다. 빨갛게 칠한 등대를 향해 걷다가 침입자 취급을 당하고는 멈춰섰습니다.

느릿느릿 입항하는 배와 방파제의 풍경을 뒤로 하고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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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 입구에서 보아둔 식당에서 하나사키라멘을 주문했습니다.
하나사키 한마리를 통으로 넣고 미역과 파로 맛을 낸 라멘에서는 바다의 향이 느껴졌습니다.

만족스럽게 배를 두들기며 네무로쿠루마이시(根室車石)를 보러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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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 옆으로 길을 내려가니, 원시 그대로의 태평양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한국에서 보던 바다와는 그 규모도 성격도 전혀 다른 바다인 것 같았습니다. 가까이 가면, 언제라도 집어삼킬 듯한 파도를 두려운 마음으로 바라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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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하게도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하다가 머리를 흔들어 떨쳐내고 돌아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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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되짚어오다 119년 되었다는 네무로 시립 초등학교에 잠시 들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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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예쁜 건물이네, 생각하며 돌아서다 길 건너편의 폐가를 발견했습니다. 돌아보니 인근에 폐건물이 많았습니다. 이쪽도 인구감소가 심각한가보다,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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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역 스완 44(道の駅スワン44)로 향했습니다.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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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역 스완 44는 네무로와 쿠시로(釧路)를 잇는 44번 국도 위에 있고, 일본 최대의 고니 도래지인 후렌(風連)호 조망지로 유명합니다. 그런 연유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습니다. 일본 최동단 휴게소이기도 한데, 스템핑을 하기 위해 찾아온 바이커(Biker)들이 북적거렸습니다. 철도역에서만 스템핑을 하는 줄 알았는데, 휴게소에도 스템프가 마련되어 있는게 신기했습니다.

비를 잠시 피하고 삼각우유를 마시고 오치이시미사키(落石岬)를 보러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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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사키항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민박집에 잠시 멈췄습니다. 이런 곳에 지내면 참 좋겠다, 생각하다가도 저 바다를 매일 보고 있으면 정말 뛰어내릴지도 몰라, 생각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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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치이시키미사키로 가는 길은 오랫동안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곳 같았습니다. 차량 출입을 막고 있는 게이트를 지나 초원으로 들어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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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걷다가 사슴가족을 만났습니다. 귀를 세우고 이쪽을 살피는 모습이 귀여웠습니다.

동물원이 아닌 곳에서 만나는 사슴은 야쿠시마(屋久島) 이후 두번째입니다. 이곳도 야쿠시마 못지 않은 원시지대인가보다,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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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 표지판을 지나 길의 끝까지 나아갔습니다. 다시 태평양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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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런, 또 뛰어내리고 싶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래도 바다에 홀리려나보다, 생각하고 돌아섰습니다.

본래는 등대를 찾아간 것이었는데, 길을 잘못 들어 곶의 끝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맘에드는 풍경은 발견했지만 초원을 헤매다 옷은 다 젖고 말았습니다. (풀이 허리까지 올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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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세워 둔 곳에서 여우를 만났습니다. 경쾌한 걸음으로 걸어오던 녀석은 차를 지나 풀숲으로 사라졌습니다. 네무로에 도착한 날도 여우를 만났었지만, 늦은 밤이라 잘 볼 수 없었습니다. 대낮에, 동물원이 아닌 곳에서, 사슴에 이어 여우라니, 뭐랄까 기분이 묘했습니다. 더 이상 보이지 않았지만, 숲속에 있을 녀석들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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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개비의 풍경을 뒤로하고 한참을 달려 마지막 목적지 노사푸미사키(納沙布岬)에 도착했습니다.

갑작스런 일본 종단 여행을 하게 되어,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왔습니다. 거리만으로도 3,600km입니다. 긴 여정으로 피곤했지만 꽤나 근사한 여행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동행에게 다시 한번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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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 등대로 가기 전 기념공원에 들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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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공원은 러시아와의 쿠릴열도(러이사명 ури́льские острова́, 일본명 千島列島)분쟁 선전물로 가득차있었습니다. 멜랑콜리와는 거리가 멀었고, 자꾸만 독도분쟁이 떠올라 씁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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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의 복잡한 계산과는 달리 태평양은 이곳에서도 의연하고 장엄한 풍경을 보여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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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끝 등대 뒤편으로 걸어갔습니다. 어쨌든 여기까지 왔군, 자축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무언가 한 고비를 넘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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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태평양을 한번 더 보고 숙소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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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의 고장답게 너른 초원에는 수많은 가축들이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소에게 인사를 건네다, 오사카에서 온 남자가 생각났습니다. 그의 행운을 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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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바람개비의 풍경을 지나, 오오츠크해를 바라보며 길을 달렸습니다. 태평양과 달리, 오오츠크해는 고요한 풍경을 보여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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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무로 시내로 이어지는 긴 길에는 어스름이 내리려 하고 있었습니다.

…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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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

  1. 스탈님 바다로 뛰어드시면 안돼~!
    부산 태종대의 자살 바위도 생각이 났기도 하구요

    암쪼록~잘 살아 돌아 오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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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제 이 여행도 마지막을 향해 가네요.
    나중 언제라도 따라가고픈 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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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극동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지만 정말 극동이 느껴지는 풍경들입니다. 조용히 다녀오면 더욱 어울리겠다 싶습니다. 훌쩍 가보고 싶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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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세상 끝에 다다른 마냥 육지는 한적해지고 바다는 장엄해지는 풍경입니다.
    흐리고 축축한 분위기가 그런 느낌을 한층 더 강조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긴 여정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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