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야


2017. 2. 17 / 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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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어대가리 같이 건조한 기자회견 초입]

“오늘은 일 좀 해”
“…”
“밥값 해야제~~”

어디로 잡혀가는지도 모르고 끌려간 커다란 회의실엔 이미 사람들로 가득하다. 다른 손님들은 대만조각가 부부를 따라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몇 명의 도공을 앉혀 두고 젊은 기자들이 늘어서 앉았다. 기자들의 질문은 권태롭고 따분했다. 인터뷰이에 대한 준비도 공부도 없었던 모양이다. 도공들을 앉혀 놓았으니 흙과 불 이야기뿐이다. 한 도공이 계통 없는 주관을 말하면 다른 도공이 질세라 다른 주관을 말한다. 작게는 맞는 이야기일지 모르나 크게는 계통에 닿지 않는 질문과 대답이 이어졌다. 지루하다 못해 짜증이 날 지경이다. 국면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물론 그런 측면도 있지만…”

말꼬리를 잡고 상황 속으로 차고 들어갔다. 가운데 가장 선임인 듯 한 친구가 눈을 반짝이며 따라 들어온다. 무대를 선호하지 않지만 멍석이 깔리면 마다하지 않는다.

“너 누구냐?”
“이태백이 술 마시다 죽은 것처럼 차 마시다 죽을 사람이다.”

늘어져서 책상만 쳐다보던 기자들의 시선이 송곳처럼 날아들었다. 비로소 공기에 텐션이 걸리는 것을 느꼈다. 적당한 긴장과 기대가 엉킨 이 정도가 딱 좋다.

“나는 여기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도공들이 그릇을 만들고 여기 김선생 같은 분들이 차를 만들면 나는 골라서 즐긴다. 이분들의 노고 덕분에 이렇게나 좋은 차를 펑펑 마시고 놀 수 있어 행복하다. 노동은 그들의 몫이고 나는 온전히 연구하고 즐긴다. 어떻게 하면 더 멋지게 놀 수 있을까 그것이 고민이라면 고민이겠다”
대략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던 것 같다. 이어서 질문이 쏟아졌고 대답 했지만 아시다시피 약을 판 것이므로 꼼꼼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뭐 대략 나쁘지 않은 이야기였다.

여기서 나눈 이야기들이 칼럼성 기사로 엮어졌다.

http://column.chinadaily.com.cn/article.php?pid=27520&from=singlemessage&isappinstalled=0

보이차를 연구하게 된 계기와 운남과의 인연에 대해서 기자가 물었다. 호구조사 따위가 빠질리 없겠으나 통속적인 이런 질문이 상념이거나 그리움이 되기도 한다. 때때로 나는 현실과 단절되길 원했다. 그럴 때면 십여 년 전 홀린 듯 찾았던 운남 기억이 자동으로 재생된다. 한 새벽에 닿은 쿤밍공항에서 긴 호흡으로 들이마시던 첫 느낌을 잊지 못한다. 그렇게 보낸 보름의 여행은 탐색이었고 성찰이었으며 치유였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차도 운남도 인연도 그렇게 흐르고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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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람한 점심을 먹었다. 매 끼니마다 식당엔 백여명은 족히 될 법한 사람들로 가득찼다. 이 많은 사람들을 끼니마다 대접하려면 기둥 뿌리가 크고 튼튼해야할 것이었다. 어떤 밥은 우리끼리 또 어떤 밥은 그들과 함께 먹었는데 따로 말해 주지 않으니 부르는 대로 안내되는 대로 찾아가서 함께 즐길 따름이었다. 며칠 째 준비가 한창인 행사장으로 내려왔다. 한쪽에선 공사로 여전히 분주하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무대에선 리허설이 한창이다. 반가운 얼굴들이 많다. 멀리 맹해에서 올라 온 차창마을과 차산 친구들도 보인다. 꼬박 이년만인데 녀석들도 반가운 모양이다.  민속공연을 위해 버스를 대절해 8시간을 달려왔다고 했다. 며칠 째 대기하면서 행사준비 중이다. 차실은 벌써부터 손님들로 가득 찼다. 천진에서 온 누구입니다. 청도에서 온 누구입니다. 당산에서 온 누구입니다. 태주에서 온 누구입니다. 인사들을 시켜주는데 하나 둘이어야 기억이라도 하지. 다시 건물 앞마당에서 차산 친구들과 노닥거리면서 따가운 오후를 어슬렁 거렸다. 오후가 깊어 갈수록 차실은 발디딜 틈 없이 손님들로 가득찼다. 각지에서 행사를 위해 초대된 사람들이다.

만찬은 바야흐로 축제의 서막이다. 일찍 도착한 손님들이 거대한 방에 가득 찼다. 넘치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술과 음식과 이야기와 노래가 넘쳤다. 사람들이 술과 잔을 들어 건배를 청한다. 주는 대로 받아 마시다가는 주태백이라도 견딜 수 없겠다. ‘开心’ 가슴이 열리는 것이 이들에겐 더 없는 기쁨이었던 모양이다. 모두 ‘开心’

전야는 ‘开心’이다.

 

…이어서

카테고리:Essay, Drifting태그:, , , , , , ,

1개의 댓글

  1. 멋지십니다! (2)
    근데 모바일로 링크 기사가 안 뜨네요.
    체크 부탁드려요.

    Liked by 1명

  2. 차도 모자라 선녀까지~ 여정 자체가 정답입니다. ^^;

    Liked by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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