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한차우회


2017. 2. 18~19 / 지묵중일한차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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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공연을 준비 중인 차창마을 아낙네들. 8시간 버스를 타고 공연을 위해 참여했다. ]

엄청나다. 차우회 규모와 내용을 표현하는 단 한마디. 행사장 규모와 리허설을 보면서 상당한 규모라고 예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갖추어진 모습은 크고 성대했다. 상당한 수준의 전문사회자와 함께 한국어, 일본어 동시통역으로 시작부터가 장난 아니다. 오프닝은 간결하게 절제되었다. 주빈으로 초대된 지체 높은 사람들이 인형처럼 앉았다가 몇 마디 써 온 것을 읽고 빠져 나가면 따라온 꼬봉들과 부조차원에 들런 청중들이 썰물처럼 빠지는 따위의 행사와는 시작부터 다른 모습이다. 의전 하느라 귀한 시간 다 빼앗아가는 허례나 허식 따위는 애초부터 없다. 80년대 이후 민간에서 개최한 행사로는 가장 큰 행사일 것 같다는 말이 허언이 아님을 알겠다.

차창마을에서 온 태족 꾸냥들과 차산마을에서 온 와족 꾸냥들의 민속공연으로 차우회의 대단원이 시작되었다. 무용인지 무도인지 모를 아름다운 선무도, 한중일 다예 시연 등이 종일토록 빼곡하게 프로그램 되었다. 관중들은 자유롭다. 공연을 즐기다가 권태롭거나 목이 마르면 야외공연장 옆으로 마련된 간이 차실에서 언제든지 차를 즐길 수 있다. 지묵당에서 준비한 테이크아웃 보이차도 인기몰이다. 인근에서는 한중도자전이 열리고 있다. 공연이 지겹거나 차 마시기 지친 사람들은 고풍스럽게 꾸며진 전시장에서 도자기 삼매경에 빠질 수 있다. 한국에서 참여한 세분 도공의 역작이 가지런하다. 이렇게 즐기다가 지치면 차실로 간다. 촘촘하게 마련된 차탁에서 또 언제든지 먹고 마실 수 있다. 한식, 중식 일식으로 꾸며진 차실은 물론 통로와 대강의장까지 다탁으로 꾸며 놓았다. 안팎이 즐거운 사람들로 가득하다.

저녁이 되어도 초대된 사람들은 그대로다. 주빈들까지 빠진 사람이 없다. 정치적 포장이나 교조적 형식이 배제된 행사는 즐김이다. 우람한 저녁을 먹은 손님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차실로 모였다. 자연스럽게 공간이 마련되고 공연은 계속되었다. 춤을 추고, 금을 탄다. 한쪽에서 공연이 이어지고 있는 중에도 그 옆 차탁에는 빼곡하게 둘러앉은 사람들이 쉼 없이 차를 마시면서 놀고 있다. 식사 중에 거나하게 오른 취기는 춤과 차 덕분에 흥으로 바뀌었다. 선을 넘는 사람은 한명도 없다. 아끼던 차를 가져 온 사람은 자신의 다구를 펼쳐서 차를 나눴다. 무이 수선을 나누던 무리 가운데서 자리를 청한다. 차가 어떠냐고 물었다.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금을 타는 사람은 금으로 붓을 가지고 노는 사람은 붓으로 흥을 돋운다. 너른 차실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곳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교유交遊하며 즐겼다. 가성비나 생산성 따위에 길들여진 눈으로 읽어내기엔 벅찬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정해진 시간이 되자 정해진 프로그램이 어김없이 흘렀다. 늦은 밤까지 바쿠스와 육우를 알현한 사람들은 저마다의 시간에 저마다의 관심대로 자연스럽게 모여들었다. 달랑 쪽지 한 장이 행사를 알리는 전부였지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모이고 또 자연스럽게 흩어졌다. 때 되면 식당에서 만나고 또 때 되면 차탁에서 다시 만나졌다. 열 번 만나면 열 번 다 입이 찢어질 듯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한다. “니하~~ 니하~~ 니하~~” 신비로운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 매너가 없어서 그렇지 의리도 있고 예의도 있어!” 어제 당주가 한 말인데 무슨 뜻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오후엔 차우회 행사의 하이라이트이자 메인 행사인 세미나가 있다. 이 꼭지 덕분에 여기까지 온 것이니 귀한 자리가 아닐 수 없다. 세미나나 강의는 공연과 닮았다. 그렇지 않은 것이 없을 테지만 준비하지 않으면 상황을 장악할 수 없다. 청중이 있고 기라성 같은 전문가들이 하이에나처럼 눈을 희번덕거리는 것이 이 바닥이다. 공명하려면 그들의 묵시적 욕구를 이해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자료 준비정도는 이미 한국에서 해 온 터이고 어떻게 하면 이들과 공감할 것인가가 숙제인 셈이다. 이 곳에 온 며칠 동안 나름대로 파악 해 오고 있던 터였다. 통역에게는 어제 이미 발표할 자료의 원본을 전달하면서 내용을 설명해 두었다. 성패의 반은 통역에게 있을 것이다. 번체가 가득한 원고를 보여주면서 이 사람들이 이 정도는 알아보느냐고 물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그가 말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다행이다. ㅎㅎㅎ

그 사이 강당엔 한가락씩 하는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찼고 남은 공간엔 청중들이 포개듯 앉았다. 사회자가 패널들을 한명씩 소개하는데 프로필들이 장난 아니다.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기회이자 영광인 셈이다. 패널들의 발표내용은 평이하고 일반적이다. 주어진 시간이 짧은 탓도 없지 않았을 것이지만 깊이나 재미가 없다. 중언부언 늘어진다. 각자의 영역에서 일가를 이루었다 하더라도 세미나, 강연 따위에 단련되거나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내 시간이다. 오프닝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어저께 기자회견 생각이 났다. ‘이태백이 술 마시다가 죽은 것처럼 차 마시다가 죽을 사람’이라는 인사를 한 번 더 써먹었다. 폭발적이다. 청중 가운데 몇 사람을 기립박수를 쳐댄다. 아직도 난 이 멘트 어디가 그들에게 공명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 머리가 나쁜 대신 눈치라도 있어 다행이다. 기선을 잡았으니 지금부터 이 공간은 내 것이다. 반응이 나쁘지 않다. 준비된 시간을 배나 써버렸다고 당주에게 핀잔을 들었지만 이 정도면 뭐 괜찮은 편이다.

형식없는 형식으로 행사는 그렇게 마무리 되어가고 있었다. 시나브로 해가 턱을 빼물고 늘어져 긴 그림자를 드리울 무렵 다시 사람들로 북적이자 차실 분위기는 최고조에 이른다. 거나하게 저녁을 마친 사람들이 차실을 가득 채웠다.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세미나 덕담이다. 신선했고 재미있었단다. 같이 사진찍자는 아낙들과 웨이신을 따겠다는 메이뉘들이 제법있었던 것으로 봐서 중국에서는 먹히는 스타일인가! 다시 바쿠스의 밤이다. 해가 졌으니 마시고 놀아야지. 오늘 밤은 백가연회 멤버들이 흥을 돋울 모양이다. 시작부터가 어제와는 공기가 사뭇 다르다. 한쪽에서는 맨손으로 그림을, 또 한쪽에서는 바둑을, 다른 한쪽에서는 금을 탄다. 차탁마다 빼곡하게 들어 찬 사람들은 또 그들끼리 차를 즐기고 있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보기 힘든 멋진 풍광이다. 이런 멋진 사람들 같으니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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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

  1. 차 마시다 죽으실 분.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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