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차산이나 같이 가시죠?


2017. 2. 20 징홍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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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헐렁하고 느릿하게 차산이나 기웃거릴 작정이었다. 한국에서부터 죽천향님과 다짐 같은 계획을 했었다. 어디 갈지 뭘 할지 정하지 말자. 발길 닿는대로 속닥하고 자유롭게 다니자. 지난 며칠은 말하자면 공식적인 스케줄이었던 셈이다. 멋진 잔치였다. 맡은바 소임도 잘 감당한 것 같다. 홀가분하게 남은 시간을 채울 수 있으리.

어제 밤, 모여 앉은 사내들은 어디로 어떻게 도망가면 멋진 일탈이 될 지 궁리했다. 다가형은 돌아가야 하니 침만 참켰고, 당주는 행사에 참여했던 일단의 팀(이하 ‘대군’이라 칭함) 인솔 걱정을 했다. 뭘 해도 다 좋은데 당주 따라 가는 것만 안하면 된다. 어떤 일이 있어도 대군에게 인질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죽천향님! 내일 차산이나 같이 가시죠?”
내 눈치를 살피던 당주가 공격목표를 바꾼 것 같다. 큰일이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뭐 좋지. 피선생 어때?”
아~~~(주르륵)
내 이럴 것 같아서 미리 신신당부를 했었건만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신다.

“저기~~~~음~~~~그게~~~~”
“의방 안갈꺼요? 거긴 한번 가봐야 할건데! 피선생 딱 좋아할만한 곳이야. 좋아~~”
“…”
“거기까지만 가자고… 갔다가 우리는 남던지 하면…”
“아니~~~저~~~”

헛점을 놓칠 리 없는 당주께서 결정타를 날린다.
“피울아~ 저녁에 나 혼자 뭐하고 노냐? 누구랑 마셔?”
“어이 피선생!”
“피울 아우는 좋겠다. 차산도 가고 꽃밭에서 가이드도 하고 좋겠네.”

“하~~~우리는 비행기표도 안끊었는데요?”
회심의 일격이라고 질렀더니

“뭔 걱정이야! 내일 차도 한 대 움직여. 두 사람은 그 차 타고 내려오셔.”
뜨억!

차로 보낼거면 일찍이나 출발시켜 주던지 점심때가 되도록 출발할 기미가 없다. 결국 대군을 다 보내고 오후 두시나 되어서야 낡은 SUV에 배낭을 실었다. 천진서 왔다는 창사장(이하 ‘꺽다리’)과 중국판 지니어스 건군, 죽천향님 이렇게 시커먼 사내 넷이서 장도에 올랐다. 대군의 잔상이 남은 머리속은 복잡하고 괴롭다.

징홍까지 꼬박 8시간 거리다. 그나마 고속도로 사정이 좋아져서 이 정도다. 자~~ 달려보자 까짓 꺼. 신나게 달리던 차가 비실비실 하더니 결국 퍼지고 말았다. 파란만장의 전조인가. 고장난 차 덕분에 동관이란 곳에 들렀다. 차 고치는 동안 시골 도시를 산책하고 장에 가서 귤과 대추도 샀다. 뜻밖에 만난 행운이다. 여행에서 만나는 우연은 언제나 옳다. 벌써 해가 길게 혀를 빼 물었다. 허벌나게 밟고 달려도 예정된 일정을 맞추기는 어렵겠다. 징홍에 도착하니 벌써 9시가 넘었다. 상명까지 가려던 계획을 접고 징홍에서 짐을 풀었다. 쿤밍을 나설때는 제법 두꺼운 옷을 입었는데 징홍에 도착한 저녁은 잠자리 날개 같은 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들이 흐느적거리는 이국적 풍광 속에 있다. 테라스가 태족스러운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바나나잎이 깔린 커다란 대나무 소반에 건강한 음식이 넘치고 빠이주는 달고 깊다. 아름다운 밤이다.

까슬하고 뽀얀 객잔에서 잤다.

[동관에 남은 풍경 몇 장이다. 먹고 마시고 노는 장면은 이 날 한장도 남지 않았다. 왜 없지?]

 

…이어서

카테고리:Drifting, Essay태그:, , , , , , ,

1개의 댓글

  1. 에이. 그러지 말고 얼렁 보여줘요.
    다 아시는 분이 왜 이러신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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