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방 옛길에 남은 풍경


2017. 2. 21 고육대차산 겉핥기_의방 만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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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쾌하다. 어둑한 새벽에 맞는 아침이다. 샤워기로 쏟아지는 따근한 물이 피부에서 부서진다. 맛이 좋은 날이다. 멋진 하루가 될 징조로세. 척추가 곧추선다. 물을 끓여 찻잎을 띄웠다. 땀구멍이 열리면서 감각이 살아난다. 홑으로 된 창을 열었다. 늦도록 흥청이던 거리는 가지런하게 내려앉았다. 머그잔에 몸을 풀고 누운 찻잎이 육덕지다고 생각했다. 아침 공기를 담은 차 한 모금을 머금고 바라보는 창밖 풍경이 좋다. 이 맛이지. 이 맛에 차질을 못 끊는다. 목구멍으로 넘어갔던 찻물이 콧구멍으로 돌아 나온다. 쌉싸름한 풀 비린내가 콧김이 되어 탄성처럼 퍼진다. 죽이네.

짐을 챙겨 내려가니 꺽다리, 건군이는 이미 아침식사를 마쳤다. 걸쭉한 닭국물에 국수를 말았다. 이 국수를 먹을 때마다 한국으로 가져가서 국수집을 하면 대박날까 생각하곤 한다. 물한모금 삼키지 못할 때 이 국수만큼은 괜찮을 거라며 말아주던 십년 전 대리 민박집 아줌마 생각이 났다. 그러니까 국수 먹고 살아난 덕에 어이없게도 미시엔은 늘 감격이다.

이제 상명으로 간다. 수려하고 깊은 산세를 병풍삼아 몽환적으로 깔린 안개 속을 달려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창문을 한껏 내렸다. 태고의 에너지가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두 시간 반쯤, 꿈길을 달렸다. 상명에 도착하니 일행은 이미 차산으로 떠났다. 영영 만나지 않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건군도 차산여행은 처음이라고 했다. 죽천향님은 이미 현지인 필이 날 만큼 익숙하시고 꺽다리는 안방처럼 주변을 꿰고 있었다. 거침없이 달린다. 우리는 모두 상기되어 있었다. 신난다.

의방 옛길에 닿았다. 무척 엄청 열나게 와보고 싶던 곳이다. 황제가 쳐들어 왔을 때 토호였던 조당재는 철저히 황제의 편에 섰다. 난리가 평정된 후 조당제는 황제로부터 차산에서 제일 높은 지위를 받았다. 남은 이야기는 조당제가 비열하고 비겁했다고 전한다. 어쨌거나 차산은 조당제가 우두머리가 된 후 급속하게 발전하였다. 만송산에서 딴 찻잎으로 황제를 기쁘게 했으며 도로를 정비하고 차산을 다듬었다. 떠났던 사람들이 돌아왔고 또 많은 한족들이 기회의 땅을 찾아 들었다. 의방가는 아름다운 건축물과 상점들이 늘어섰고 홍등가엔 불이 꺼지지 않았다.  이렇게 높고 험한 곳에 한 때 2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의방의 전성기를 이끈 조당제는 여섯 차산의 우두머리로 영화를 누리다가 1773년 아들에게 영광을 물려주고 세상을 떠났다.

1942년, 국민당 정부의 폭정에 지눠족이 들고 일어났다. 당시 국민당 군대가 주둔하던 의방가에 들이 닥친 이들은 닥치는대로 부수고 불질렀다. 수백년 쌓아올린 정교하고 아름다운 마을은 3일 밤낮을 타오르며 사라졌다. 그 후에도 가뭄과 역병으로 의방가는 사람씨가 마른 저주의 땅이었다. 근래 보이차가 각광 받기까지 이곳은 철저하게 버려진 가난의 땅이었다.

옛 영광은 한 귀퉁이 남은 돌길로 전해올 뿐 지금은 콘크리트 먼지만 흩날린다. 옛길을 걸었다. 이미 일행이 휘 젖고 지나간 모양이다. 동네사람들 표정에서 알 수 있었다. 아~~그러게 조용히 속닥하게 왔어야 한다니까. 계획대로라면 이곳에 머물러야 한다. 그러기엔 이미 글렀지만 미련이 남아 질척거린다. 이곳까지 와서 한나절도 머물지 못하고 떠나야 한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피선생! 다음에 조용히 다시 옵시다. ㅎㅎㅎ”

구름위로 난 길을 돌아 나가니 벼랑위에서 공사가 한창이다. ‘지묵당의방초제소’란 간판이 아니었다면 이곳에 늘어선 차량행렬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을 거다. 이무에서 옮겨 놓은 옛집 하나가 너른 마당에 덩그러니 놓였다. 초제소와 객잔을 만들 거란다. 초제소 마당으로 열린 풍경이 좋다. 그림 같은 곳이 될 것이다. 일행과 합류했다.

바로 옆 펑뚜이네서 감동적인 점심을 먹었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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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

  1. 무척 엄청 열나게 잘 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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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눈에 음란마귀가 씌었나봐요.
    잠시 착각을…

    세 분이 앉아있는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Liked by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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