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나무에 열린 황금 알


2017. 2. 21 고육대차산 _의방, 혁등, 안락, 망지를 거쳐 상명으로

R0030613
[꽃 보다 더 꽃 같은 아이라고 생각했다.]

펑뚜이네 마을은 세 가구가 살다가 앞집이 대처로 나가고 지금은 두 집이 산다. 비탈 아래 아늑하게 내려앉은 곳에 지붕을 올렸다. 지금은 4륜 차가 드나들지만 몇 년 전만해도 오토바이가 아니면 들어오기 어려웠다고 한다. 궁벽진 곳이지만 펑뚜이는 천사 같은 아이와 더 이상 궁박하지 않다. 차 덕분이다. 펑뚜이네 차나무는 해마다 더 많은 인민폐로 치환될 것이다. 환금성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철저히 부역한다. 희소성이라는 변수가 더해져 커브는 어마무시하게 급해질 것이다. 이미 그 전조는 여기저기에서 목도된다. 40원 하던 차가 몇년 만에 2000원 한다. 백배나 아니면 몇 백배…아무도 모르지만 눈 밝은 사람은 한 동안 차 값이 더 오를거라는 걸 안다. 아무쪼록 차나무에 열린 황금 알이 그들의 생활과 삶에 부역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앞을 보지 못하는 할머니는 귀까지 어두우신 모양이다. 어머니는 서른명쯤 되는 손님들 음식을 쳐내고 계신다. 아내는 몸이 좋지 않아서 친청 갔다고 했다. 꽃 같은 딸랑구 토끼같은 아들 녀석이 해처럼 밝다. 옆집 자매들도 점심차림을 함께 거들고 있었다. 다 익은 녀석과 함박꽃 같은 작은 계집아이까지 왕방울 같은 눈망울에 차산이 몽땅 들어 앉은 듯 별 처럼 반짝거렸다. 해가 정수리에서 이글거릴 때 만공(의방)을 떠났다.

꼬불꼬불 하늘 가까운 능선을 달려 혁등에 닿았다. 지묵당의 또 다른 차산 스팟 ‘왕소저’가 있다. 대처에 나갔다가 산꼭대기 작은 마을 길가에 조립식 건물을 지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차가 대접을 받기 시작하면서 달라진 차산마을 풍광이다. 젊은이들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작은 차방에서 땡양지를 피했다. 당주는 할 일이 있다면서 일행을 맡기고 초제소에 남았다. 그러니까 여기서부터는 졸지에 가이드 노릇을 하게 된 것이다. 남루한 화장실이 내 탓은 아닐 테지만 투덜거림과 잔소리를 한바가지 마시고 마른 먼지 마냥 띵하게 나동그라졌다. 중국말 몇 마디 한다는 핑계로 쓴 덤탱이다. 그늘에 짱박혀 사람과 해를 피했다. 왕소저 차실에선 이미 난전이 펼쳐졌다. 몇 박스나 되던 모차가 순식간에 동이 났다. 꺽다리 녀석이 누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마이 마이(계속 사다…이때부터 이 친구는 일행을 ‘마이 마이 할머니들’ 이라고 했다.) 나이 나이”라며 놀렸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풍광이었던 모양이다. 대단한 바람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이렇게 사지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말을 들을 것 같았으면 어디 아줌마부대라고 했을라고…

안락이라는 작은 마을을 들렀고 망지차산을 거쳐 상명으로 돌아왔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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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

  1. 좋은 사진 대거 방출~!

    헌데, 고생 많으셨을 듯 싶으세요. 덕분에 저는~ ^^;

    암쪼록 ~~~ 이어서~~~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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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역시 흑백의 묵직함이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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