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뒤안길


2017. 2. 22 고육대차산_만전, 이무, 마흑, 이무고진, 유락을 지나 다시 징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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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흥호 옛 터에서 동흥호를 본 적도 없는 젊은 아낙이 동흥호를 팔고 있었다.]

04:30 닭이 운다. 한 놈이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동네 닭들이 모조리 나선 모양이다. 계통 없이 짖었다. 뒤척이다 창을 열었다.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길에 트럭과 오토바이가 간혹 먼지를 일으킬 뿐 마을은 아직 새벽잠에 젖었다. 따끈한 물을 뒤집어 썼다. 안개 맞으러 나가 볼 작정이다. 아침 공기에서 흑백필름의 그레인처럼 입자감이 느껴진다. 잔뜩 쟁여온 필름이 아직 그대로다.  주마간산으로 지나는 통에 지긋하게 속살에 닿을 틈이 없었다. 지나다가 맘에 맞는 곳이 있으면 엉덩이 붙이고 눌러 앉아야 한다. 소통의 끈을 잡지 않고 셔터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런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 여명의 고요한 아침은 그래서 소중하다. 허락된 혼자만의 시간, 독락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카메라를 들쳐 업고 새벽을 걸었다.

이 작은 마을에서 조차 낮선 이가 새벽을 어슬렁 거려도 더 이상 낮선 풍경이 아닌 모양이다. 지나는 사람들에게 목례를 건내 보지만 돌아오는 인사가 박하다. 시즌이 되면 방방곡곡에서 사람들로 인산인해가 될 것이다. 차 덕분이다. 드물지 않게 貢茶라고 쓰여진 간판을 만난다. 황제에게 바친 차라는 것인데 아직까지 마을은 옛 그림자를 먹어야 견딜 수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이렇게 구라성 짙은 간판을 보면 오히려 안심이 된다. 안개만큼이나 짙고 두툼한 욕망이 차산마을에 내려앉았다. 두 달쯤 지나면 차보다 돈이 흔해질 것이다. 큰 길을 따라 마을 끝까지 걸었지만 도타운 장면을 만나지 못했다. 날이 밝을 무렵 객잔 옆에서 허름한 식당에서 미시엔을 마시고 만전으로 향했다.

차산 친구들 차를 나눠 타고 일행들이 먼저 떠났다. 우리는 아직 꺽다리(창사장)가 있으니 그나마 자유로운 편이다. 일행이 차밭으로 떠난 사이 꺽다리는 우리를 ‘권기호權記號차장’으로 안내했다. 이 친구가 아이었다면 여기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어찌 알았겠는가! ‘號’가 붙었길래 죽천향님께 물었다.

“(의미심장하게) 이게 그 호에요?”
“(같은 표정으로_음흉하게) 응. 권기호도 있었어!”

호급 시대의 영광을 나눈 역사의 편린이었다. 3대째 전승(?)자가 지키고 있는 차장은 시간의 그림자가 길게 내려 앉아 있었다. 떠난 버스와 떠난 영광을 돌려 세웠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순박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불쑥 들이 닥친 손님이 싫지 않은 것 같다. 꺽다리는 이미 인연이 있는 눈치다. 곱게 만든 묶음차를 마시면서 선생님과 내가 호급차 이야기에 빠져있을 때 꺽다리는 할아버지와 쇼부 볼게 있는지 정탐할게 있는지 짐짓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다.

“영감님! 모차 남은 거 있으면 좀 봅시다.”
늦게 합류한 당주가 말했다. 흥정이 되나 싶더니 두 마디도 안가서 거래는 끝나버렸다. 당주는 시세보다 두 배를 줬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달라는 것에서 딱 반이지만 뭐 그렇다니까 그런 줄 알아야지.

덜컹덜컹 이무로 향했다. 보이차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로망의 정점에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부자가 망해도 삼년은 간다지 않던가! 역사의 단물을 빨고 있는 변방의 남루한 마을이라지만 아우라가 어디 갈 것 같지는 않았다. 민국 초까지 이곳은 보이차 생산과 물류의 중심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침이 고이는 차장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는 고진에서 차마고도의 출발이었던 돌길을 걸어보길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공산당 세상이 되면서 차장은 전멸했다. 개인이 차를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차를 만들어 국영공장에 상납하는 것이 이들에게 부여된 과업이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남은 노하우는 멸절되고 말았다. 1990년대가 되어서야 뜻 있는 대만사람과 전직 향장의 노력으로 전통방식(?)을 재현해 냈다고 한다. 때마침 불어 닥친 보이차 광풍과 함께 비로소 이무의 재생이 가능하게 되었다. 커다란 패루에 서서 옛 영광을 생각했다. 비닐봉지 따위의 쓰레기가 먼지바람에 뒹굴었다. 말라비틀어진 천년고차수가 오늘 이무의 자화상 같다고 생각했다.

천년고차수를 만나고 마흑마을을 잠시 들렀다가 이무고진으로 향했다. 꺽다리도 고진은 초행인 모양이다. 하기야 사업상 다니는 사람이 돈 안 되는 곳을 애써 기웃 거려야 할 이유 따위가 있을리 없다. 동경호, 동흥호, 동창호, 복원창호, 차순호 등 이름만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는 흔적들을 만났다. 동흥호 옛터에서 마신 차 한잔이 유난히 쓰다. 고태가 흐르는 집에 조그만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전통이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뒷뜰에서 열심히 찍었을 그 때 그 차를 이 자리에서 마셨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다. 허약하고 남루한 흔적이다.

마오가 지켜보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유락을 들러 징홍에서 여장을 풀었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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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

  1. 만일 제가 발품을 많이 판다 쳐도 말입니다. 제 혀가 보증이 되지 못하는 관계로 제대로 된 거래는 애당초 어불성설 일 듯 싶고 말입니다.
    깊은 내공과 더불어 발굴해 내신 풍미도~ 감히 범적하기 힘들 꺼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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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니까 알게되면 보이는 것이 있는데 … 그때는 그게 밝아져서 삼비하다거나 독특하다거나 하지 않고 양치 하듯이 일상적인 것이 되더란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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