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랑산 자락


2017. 2. 24 포랑산, 노반장

젖은 솜덩이처럼 몸이 무겁다. 천근만근 머리가 지끈거린다. 새벽까지 달리신 선생님은 체력이 국력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 주셨다. 언제나 가뿐한 아침을 맞고 계신 듯하다. 지난밤은 겨드랑이에서 바람을 너무 많이 일으켰다. 버스 뒷자리에 고꾸라지듯 쓰러졌다. 눈을 떠보니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리고 있었다. 한참을 달렸을 것인데 그 사이 도끼로 쪼개는 듯 아픈 머리와 마가린과 버터를 비벼서 두 대접쯤 들이킨 듯한 속을 부여잡고 몇 번이나 지옥문을 들락거렸다. 아이고 머리야~~그러게 작작 좀 퍼 마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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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랑산 마을에서 점심을 먹었다. 딱 좋아하는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었으나 두 발짝 옮기는 것이 곤란한 컨디션에는 도리 없다. 두어 숟가락 뜨는 둥 마는 둥 거리로 나왔다. 버스가 출발하기 전까지 몇 컷이라도 찍어 볼 요량이다. 이마를 뚫을 듯 태양이 작열한다. 작열하는 거리를 뒤틀리는 속을 부여잡고 걷기는 어려웠다. 한 블록쯤 갔을까. 식당 옆 석모가게 그늘에서 주인아저씨랑 노닥거리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버스는 다시 자갈이 빼곡하게 깔린 길을 달렸다. 노반장까지 대형버스로 간다? 상상하기 어렵지만 현실이다. 변화의 속도와 크기를 극명하게 대변하는 증거로 이보다 더 간명한 것이 있을 것 같지 않다. 비만 좀 와도 접근이 어렵던 마을이었다. 이렇게 궁벽한 곳까지 자갈로 포장된 길이 열렸다. 어렵긴 해도 꾸역꾸역 버스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버스회사엔 포랑산 입구까지만 간다고 계약한 모양이다. 이 곳까지 가자고 하면 택도 없을 것이었다. 희뿌연 흙먼지와 함께 아련한 어떤 것들이 함께 빨려 나가는 듯 사그러 들었다.

노반장 보다 노만아에 머물거나 적어도 들러 갔으면 싶었다. 지금은 사라진 복족의 후예들이 가장 먼저 차를 심었다는 곳이다. 인근 마을에서 수백 년 된 차밭을 갈아 엎어 옥수수를 심을 때 조차 조상나무를 벨 수 없다며 기꺼이 배 곯기를 선택한 사람들이 지킨 차밭이 건재한 곳이다. 운남땅 흙 한번 밟아보지 않은 제갈량을 신으로 숭상하면서 그에게 전수 받은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 최초 차농의 후손답게 차나무를 가꾸고 지켜낸 사람들이 노만아에 살고 있다. 길고 긴 세월동안 전쟁과 돌림병을 피해 산을 넘어 마을을 다시 이룰 때 마다 가장 먼저 차나무를 심었던 사람들이다. 이렇게 번진 차나무들이 마을마다 차왕수가 되었을 것이다. 노만아 차 맛이 지독하게 쓴 까닭은 쓰디 쓰게 살아 온 그들 조상의 역사를 배태한 까닭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금싸라기보다 비싼 이 곳의 차나무도 노만아에서 왔다.

버스가 부서질 것 같은 길을 돌고 돌아 무뢰배 두목 같은 패루 아래서 내렸다. 노반장이란 커다란 패찰을 마빡에 이고 선 폼새가 생뚱맞기 이를데 없다. 유명하다 못해 관광지가 되어 버린 이곳 사정을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실경을 목도하는 것은 차가운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마을 가운데를 가로 지르며 새로 닦아 놓은 너른 시멘트 길을 터덜터덜 걸었다. 진승차창 초제소가 점령의 흔적처럼 버티고 있다. 몇 걸음 더 들어가니 인민폐 자판기까지 육중하게 들어 앉았다. 자본은 돈이 되는 곳을 제발로 찾아간다. 철이 되면 마오를 이고 진 인파들이 구름처럼 들이 닥친다고 하지 않던가! 마을로 들어서니 집집마다 커다란 번호를 달고 있다. 찻잎 무게보다 더 무거운 인민폐로 치환되는 차나무가 해마다 순을 터트릴 즈음이면 이 번호들은 각각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로또가 된다. 누구네 아버지가 아니라 몇 호집으로 불리는 아재들은 목에 두른 금붙이 두께만큼이나 무거운 배를 실룩 거리게 되었다. 지독하게 가난했던 지난 세월의 보상이라면 더할 바 없겠다. 마을마다 있는 차왕수를 본다고 일행들이 사라진 틈에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고쳐지은 집들은 거대 했고 마당엔 그만큼 거만한 자동차가 드러 누워 있었다. 간혹 만나는 사람들에게 목례를 해 보지만 외지인은 이미 호감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모차 값 걱정을 하다말고 당주에게 말했다.
“해마다 때 되면 차떼기로 돈을 싣고 와서 줄을 서는데…사람들이 돈을 더 못 줘서 안달이라니…턱 괴고 앉아서 손님 골라 받으면 되는 … 딱 일년만 이 사람들처럼 살아봤으면 좋겠어요. ”
“그건 나도 그래!”

돈은 돈이 되는 곳을, 글은 글이 되는 곳을, 인은 인이 되는 곳을, 덕은 덕이 되는 곳을 저절로 찾아가게 마련이다. 그러니 내가 돈이면 돈이 올 것이고, 문이면 문이 올 것이며, 인이면 인이 올 것이고, 덕이면 덕이 제발로 찾아 올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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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죽음이 되어서 징홍으로 돌아왔다. 반나에서 마지막 밤이니 곱게 넘길 수는 없는 일이다. 징홍은 언제나 활력이 넘친다. 삐끼도 없고 강요도 없다. 표정은 밝고 행동은 친절하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야시장이지만 깨끗하고 밝아서 좋다. 땀으로 빠진 원기를 보충하는 데는 빠이주가 직빵일테지만 오늘 저녁은 삼겹살에 소주다. 살짝 그 분이 오실쯤 과분하게 좋은 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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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서.

 

카테고리:Drifting, Essay태그:, , , , , , , , ,

1개의 댓글

  1. 어느 문장 하나 쉬이 넘길 수 없는 멋진 글입니다.
    글에 나오는 지명도 낯설고 차에 관한 이야기도 낯설지만
    과도한 드링킹 후 어김없이 찾아오는 괴로운 날에 대한 고통은 꽤나 공감이 가고요.

    Liked by 1명

    • 관심 고마워요.^^
      사진 찍으러 간 것이 아니고 사진 찍을 짬도 부족하고 결정적으로 실력이 안되니 맘에 드는 사진이 없어요.
      게다가 후기나 여행기 따위의 글을 염두에 두지 못한 탓에 필요한 때 기록을 남기지 못했더군요.
      많이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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