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명으로


2017. 2. 25 / 곤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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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이 없는 날이다. 오늘처럼 손이 비는 날은 찌짐에 막걸리를 마셔야 한다. 아침부터 과년한 남자들이 한방에 모여 앉아 차판을 벌렸다. 보이차가 재미있는 여러 가지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야기 꺼리가 많다는 것이다. ‘오~~차 좋네요.’ 이러고 나면 할 말이 심심한 다른 차들과는 차별되는 점이다. 독특한 역사, 문화, 풍광을 지닌 운남이라는 지역적 배경과 광대하게 펼쳐진 차밭들, 산을 넘을 때 마다 달라지는 족속들과 그들의 차별적 문화, 보이차 시장의 폭발적 성장에 따른 작용과 반작용들, 노차에 얽힌 전설과 실체적 흔적들, 공산화와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일어난 질곡들, 이런 여러 가지 요소들이 뒤섞여 쏟아내는 이야기들은 화수분이다. 까야 제 맛이라고 성토로 끝나기 일쑤인 차판 이야기가 오늘은 무척 건설적이다. 총론은 언제나 옳다. 이해관계가 첨예해지는 각론에서 사단이 나는 거지.

차 마시다 지겨워지자 강가를 어슬렁거렸다. 한적한 곳이라 산책 말고는 할 것도 없다. 사람 구경이라도 하려면 차를 타던지 해야 하니 성가신 일이다. 정돈된 길을 따라 식당과 차방들이 늘어섰고 사이마다 별장들이 무식하리만큼 고급지게 들어앉았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과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반동이 함께 일렁거렸다. 욕망하지만 땅을 딛고 선 발은 현실을 벗어나지 못한다. 뱉어내지 못한 욕망은 그렇게 반동이 되고 외소하고 영세한 현실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호텔에서 점심을 먹고 공항으로 움직였다. 이제 이 여행도 서서히 저물어간다. 돌아가야지. 15시에 출발한다는 비행기가 온다간다 말도 없다. 30분, 한 시간, 두 시간 … 아~~역시 짱꼴라야. 이래야 중국스러운거지. 어째 너무 순탄하다 했어. 당주와 건군이는 잠시도 쉬지 않고 상황을 추적하고 있었으나 두 사람 모두 항공사 대답을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항공 경로도 확인하고 날씨도 확인해 보지만 어째 느낌이 좋지 않다. 기다리는 시간은 기약 없이 길어진다. 세 시간, 네 시간 … 일행들은 지치다 못해 꺼져버릴 지경이다. 돌겠네 진짜.

15시에는 떠야하는 비행기가 22시가 되어서야 취소되었다. 느닷없이 28명의 난민이 발생한 것이다. 당주와 건군이 한참 이야기를 하더니 힘들더라도 오늘 올라가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내일도 기상상황이 나아진다는 보장이 없거니와 나는 내일, 일행은 모래 한국으로 떠나야하니 버스로 돌아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것이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신경에 텐션이 걸린다. 당주와 건군이 상황을 체크하고 스케줄을 조율하는 사이 나는 일행들을 인솔해서 역 수속을 밟아야 했으며 실어 보냈던 짐을 다시 찾아야 했다.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흐트러진 좌중의 멘탈도 수습해야 했고 돌발적인 행동들도 통제해야 했다. 찾아 놓으면 금방 없어지고 또 찾아 놓으면 다른 사람이 사라졌다. 화장실 같다는 사람을 면세점에서 찾아오는 따위의 촌극이 수시로 벌어졌다. 겨우 수속을 마치고 빠져 나왔는데 또 몇 사람이 안보인다. 아이고야~~

“선생님들! 지금부터는 개인행동을 삼가 해 주십시오. 화장실도 혼자서는 안 됩니다. 움직이실 때는 반드시 2명 이상 함께 움직이시고 저나 여기선생님께 이야기하고 움직이셔야 합니다. 이동 간에 서로 착오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각자의 짐은 각자가 챙겨 주십시오.”

늘어져 꺼질 지경이 되어서야 우리 일행을 태우겠다고 버스가 왔다. 살펴보니 곤명은 고사하고 징홍을 벗어나기도 전에 분해되고 말 것 같은 중형버스 두 대였다. 상황이 점점 꼬여간다. 일행은 스트레스와 기다림에 파김치가 되어갔다. 갖은 삽질끝에 다시 버스를 섭외했으나 징홍까지는 알아서 이동해야 했다. 빵차, SUV, 승용차등 여러 대에 짐과 사람을 실었다.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아직까지 멘붕 상황을 호소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행이다. 환자라도 발생하면 정말이지 낭패지 않은가. 몇 팀으로 나눠 이동한 탓에 다시 모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들 간에 의사소통 역시 한번 만에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아후~~이 징그러운 놈들!

한참 만에 이고 진 사람들을 다시 만났다. 여기저기 흩어져 도착한 사람들을 수습하고 보니 하늘이 뱅글뱅글 돈다. 인원파악만 수십 번은 했나보다. 비행기 요금 보다 비싸게 대절한 버스는 침대가 놓인 럭셔리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일행들이 하나 둘 버스에 타는데 버스 기사가 뭐라고 떠들더니 급기야 고래고래 고함을 지른다. 일행 가운데 한 분이 지 놈 자리를 차지했던 모양이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일행들이 알아 들을 리 없을테지만 그 놈은 저 하고 싶은 욕지거리를 실컷 쏟아내고 있었다. 자정이 넘어서야 일행은 징홍을 출발할 수 있었다. 침대버스가 처음인 일행들은 버스가 출발하자 셀카를 찍는다거나 하루를 회상하는 수다로 다시 시끌벅적하다. 전쟁 같은 시간을 겪은 사람들 같지 않았다. 다행이다. 피곤한 하루였다. 불편하나마 머리를 둘 수 있는 자리를 얻었으니 이제 좀 쉬어야지. 꺽다리(창 사장)가 사다준 옥수수를 빨면서 깜깜한 밤을 달렸다. 오후 내 굶었더니 속이 쓰리다. 차나 한 사발 들이켰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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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카테고리:Drifting, Essay태그:, , , , , , ,

1개의 댓글

  1. 이래야 짱골라지 ㄷㄷ 험난하네요 역시. 또 그게 맛이기도 하겠습니다만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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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단편단편 읽고 있고 차는 잘 모르지만 몇편씩 이어 보다 보면 참 흥미로운 중국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주행 해야 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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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까도까도 다 못깔 듯한 매력이 넘치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라는 사람은 많은데 마음내기가 쉽지 않아서…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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