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다쇼지사진미술관


 

일본여행 마지막 날 아침, 숙소를 나선 우리는 요나고로 향했다.

천하태평 완행열차를 탄 덕에 사카이미나토 역에서 요나고 역까지 50분이나 걸렸다. 역 앞 편의점에서 대충 끼니를 때운 우리는 미리 조사해 둔 버스 시간표에 따라 10시 20분발 다이센 루프버스를 탔다. (하루 10회 운행하며, 봄/여름/가을 시즌제로 운행하므로 미리 운영 여부와 시간 체크) 다이센 루프버스의 주요 코스는 ‘요나고역 – 다이센지 – 다이센목장 – 우에다쇼지미술관 – 모리노쿠니 – 요나고역’으로 다이센산 기슭에 자리한 주요 관광명소를 순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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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을 출발한 버스는 이내 요나고 시내를 벗어나 교외로 접어들었다. 왕복 2차선 시골도로 주변으로 펼쳐진 논과 밭은 8월의 건강한 녹색으로 빛난다. 10분 남짓 더 달렸을까. 어느새 우리는 울창한 숲속으로 진입하였다. 창문을 살짝 열고 울창한 나무와 함께 건강한 호흡을 몇 번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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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까지도 화창하던 날씨는 환승지점인 다이센지에 이르자 거짓말처럼 폭우가 퍼부었다. 버스정류소에 발이 묶인 채 우산이라도 사야하나 고민하는 사이 비는 차츰 잦아들더니 저 너머 빼꼼히 해까지 보인다. 높은 산 중턱이 부린 변덕이었나 보다.

여행은 다시 시작되고 우리는 다이센목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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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센목장에서 점심을 먹은 후 소문난 밀크 아이스크림으로 입가심하며 다음 일정을 논의했다. 원래 계획은 우리 셋 모두 우에다미술관에서 한 시간 관람하고 감바리우스에 들러 수제 맥주 한잔 걸친 후 요나고 역으로 귀환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내가 일정을 바꾸면 어떨까하고 제안했다. 우에다미술관에 1도 관심이 없던 아내와 아이였는데 루프버스 오는 길에 ‘모리노쿠니(森の国)’라는 자연체험 테마파크(?)를 보고서는 미술관 대신 거기서 놀고 있을 테니 나더러 2시간 미술관 혼자 관람하고 모리노쿠니로 와서 합류하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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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극한 성은은 거두기 전에 낼름 받아먹어야 하는 법. 올레 앗싸라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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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센목장을 출발한 나는 우에다쇼지미술관에서 하차했고, 아내와 아들은 루프 버스에 남아 모리노쿠니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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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이 바로 우에다쇼지사진미술관의 첫 인상이었다.

절제된 선과 면을 이용해 조곤조곤 공간을 분할하며 착실히 그려 놓은 펜화 같은 풍경이다. 1995년에 개관한 이 곳은 우에다 쇼지(植田正治)의 대표작인 소녀사태(少女四態)를 모티브로 건축가 다카마스 신(高松伸)이 디자인했으며, 그의 사진 15,000점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정면에 보이는 네 개의 박스가 네 명의 소녀를 상징하는 것이리라. 버스정류장에서의 관점으로는 창문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기에 거대한 콘크리트 무덤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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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사태(少女四態) ©우에다 쇼지,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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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은 종종 자신이 품고 있는 예술품 못지 않게 예술적인 경우가 많다. 프랭크 게리의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이 그러하고 우리 가까이 승효상의 솔거미술관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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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다미술관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사실 내겐 우에다의 사진보다 다카마스의 건축물이 좀 더 매력적이었음을 고백한다. 친근한 피사체를 주어진 프레임 내에 재치있게 배치한 우에다의 명석한 사진이었지만, 그의 사진을 관통하는 연출적 요소는 결국 나의 테이스트완 결이 조금 달랐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미술관에 머문 두 시간 동안 갤러리에서 작품을 감상한 시간은 30분을 채 넘지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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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걷고 또 걸었다. 크지 않은 미술관이지만 기둥 하나, 창문 하나 놓칠새라 안과 밖을 쏘다니며 욕심스레 눈에 담고 또 담았다. 반듯하고 절제된 콘크리트의 육중한 직선과 다이센산의 자연을 허심탄회하게 실내로 들여오는 과감한 윈도우는 건축가의 조율아래 기가 막히게 균형을 이루며 관람자를 압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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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인지방에서 나고 자라며 평생 산인지방의 자연과 사람을 담아 낸 사진가 우에다 쇼지. 전날 돗토리 사구에서 만났던 전설은 다이센산 기슭에 터를 잡은 채 견고하게 전승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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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을 떠나기에 앞서 잠시 그의 옆에 섰다. 그리고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를 아쉬움을 우에다와 함께 한 이 사진 한장으로 달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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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Drifting, Essay, uncategorized태그:, , , , , , , , , , , ,

1개의 댓글

  1. 스치는 여행에서 담은 사진이라고는 믿기지 않습니다.
    사진가의 동선과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이 사람 참 열심히 찍는구나. 싶어져요.

    Liked by 1명

  2. 역시 이번에도 성은을 입으셨군요. 2시간이라지만 그 짧은 자유가 너무너무 달콤하지요. 들뜬 마음과는 달리 정제된 사진들이 너무나 인상적입니다. 가족들이랑 여행가서도 이런거 찍어오는 사람들이 제일 반칙이더군요 ㄷㄷ

    Liked by 2 people

    • 아내에게 잘해야겠단 생각을 다시 한번하게 된 계기였지요. 돗토리현은 동해항에서 배타고 갈수도 있으니 언젠가 포항지부 효도관광으로 한번 가보는 것도..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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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영혼가득한 예술품을 품은 건축물이 절제된 아름다움을 비치는 것… 그것을 참 이렇게 잘 표현하시는게 신기합니다. 저도 이 느낌 간직하고 언제 한번 우에다쇼지미술관에 방문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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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미술관이 참 멋지군요. 그나저나 전생에 우주를 구하셨나 봅니다.
    세상에, 여행가서 자유시간 주는 마눌이 이세상에 어디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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