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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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를 떠난 화살 같다는 따위의 표현이 마뜩찮지만 허망한 시간을 표현할 마땅한 문장을 만들지 못하겠다. 여행을 다녀 온 지 반년이 흘렀다. 돌아오는 비행기에 앉자마자 심장이 팔닥 거리며 조여 오는 것 같았다. 불편하고 불안한 기분은 어미품을 떠난 아이같다. 피안에서 멀어지는 듯 팍팍한 현실로 쾌속 돌진하는 비행기 소음이 몹시 거슬렸다. 잠을 청하려 눈을 감았으나 지난 시간들이 영사기를 돌려 놓은 듯 흘렀다. 3할 쯤은 투덜거리면서 보냈고 3할 쯤은 의무감으로 보냈으며 3할 쯤은 즐겁게 마시고 떠들며 보냈지 싶다. 잘난 척 하느라 1할 쯤 썼을 것이다. 작은 시비 때문에 심장이 새가슴처럼 촐싹거린다거나 여러 사람 빈정 상하게 한 일이 없지 않았을 것을 생각하면 면구하기 이를 데 없다. 사람이 어렵지만 또 그렇다고 사람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탓에 매순간 성찰할 수 있길 바랄뿐이다.

돌아와서 제법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운남에서 하얀 밤토록 나눈 여러 가지 모색들을 그려내거나 구체화를 도모하는 시도는 하지 못했다. 소심함이 병통이라 내지르지 못한 탓이다. 그런 와중에도 차 벗을 만나러 의정부, 광주, 이천, 괴산, 부산으로 짬짬이 다녔다.

“피 선생 뭐해”
“예~~서울이에요.”
“언제 와?”
“모레 내려가요.”
“주말에 우리 집에 차 한잔 하러 와”
“누가 오세요?”
귀한 차 벗을 만나고 똘 끼와 개그 충만했지만 진지함을 잃지 않은 농염한 다담이 늦은 밤토록 흘렀다.

“선생님! 뭐하세요?”
“풀 뽑아~~”
“한 번 내려오세요.”
집 근처 차방에 둘러 앉아 이 차 까고 저 놈 까면서 놀았다.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건강하고 생산적인 커뮤니티를 만들 수는 없을까. 뉴비(newbie)들을 위한 심플하고 담백한 아카데미도 필요할 것 같은데…이런 고민을 나누다 피곤해지면 다시 운남이야기로 돌아오곤 했다.

운남은 이렇듯 휴식 이었다. 계절이 두 번이나 바뀌고 있으니 다시 다녀와야지. 이번엔 대설산쪽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샹그릴라에서 시작해서 훑으면서 내려 와도 좋겠다. 호도협도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사람들 발걸음이 비교적 한적한 서쪽 변방이나 동쪽 변방을 타고 내려오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필름에 남은 흔적들 / Leica MP + Summicron 50mm 4th + 400TX & Minolta TC-1]

카테고리:Drifting, Essay태그:, , , , , , , , , , ,

1개의 댓글

  1. 운남 명예시민이 되셔도 괜찮으실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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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제겐 선생님께서 불러주신 ‘구름의 남쪽’으로 각인된 운남입니다.
    누군가에게 세상 아껴둔 마지막 휴양지와 같은 곳.. 궁금한 마음에 저도 언젠가 한번은 꼭 가보고 싶어졌어요.

    Liked by 1명

    • 누군가에게나 그만의 샹그릴라는 있을테니까요.
      그곳이 운남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저 제 느낌이고
      치우침이 심한편입니다.
      ㅎㅎㅎ

      좋아요

  3. 그동안의 기행문을 따라오며 신선한 감흥을 느꼈습니다. 깊이있는 위트와 안식이 느껴지는 글과 사진들이 너무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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