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왜 찍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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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로먼은 이 사진을 찍기 위해 모자에 카메라를 숨겨 법정에 잠입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법정 안은 촬영금지 구역이다. 이 한 장의 사진으로 대중의 욕구를 풀어 준 덕분에 잘로먼은 명성을 댓가로 얻었다…1928 / 이미지출처 Google]

“너 이거 왜 찍어?”
“허락 맞고 찍는거야?”
이 정도 공격이나 욕은 언제든지 감수할 수 있다. 길거리 사진가로 나서는 자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명예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왜 쌍욕을 감수하면서 오늘도 거리에 있는 것일까?

‘필요한 것’ 보다 ‘원하는 것’
연출되지 않은 생생한 사진을 캔디드 사진(candid photo:솔직한 사진) 또는 스냅 사진(snapshot)이라 한다. 이 분야의 창시자로 알려진 사진가가 있다. 에리히 잘로먼이다. 베를린에서 출생한 그는 법학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변호사로 활동했다. 어떤 이유로 사진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가식 없는 인간의 모습을 기록하는데 천착했다. 이때만 하더라도 초상권에 관한 인식이 생겨나기 전이었다. 그는 당대에 유명한 사람들의 자연스런 모습을 기록했다. 은밀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세상에 드러냈던 것이다. 높고 위대하고 근엄하게만 보이던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 온 사진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열광했다. 사회적 가면을 벗은 그들의 모습은 흐트러지고, 찡그리고, 웃고, 화내고, 피곤했다. 사람들은 그들의 자연스런 모습 즉 나와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 안도하고 즐거워했다. 그들에게 잘로먼의 사진은 어쩌면 위안이었을 것이다. 잘로먼은 대중의 이런 욕구를 간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카메라는 이런 대중의 욕구에 철저하게 부역했다.

‘그곳에 스며들어라’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덕목 가운데 하나가 현장에서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피사체가 사진가를 인식하지 못할 때 정직한 순간을 담을 수 있다. 현장의 분위기를 잡아내기 위해서는 카메라가 없는 듯 조용하게 스며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잘로먼의 활동무대는 주요한 외교적 모임이나 정부행사 그리고 고위층의 사교모임이었다. 이런 모임에 나타날 때면 정장에 나비 넥타이를 메고 작은 카메라(에르마녹스)를 숨겼다. 법조인 출신인 잘로먼은 유창한 어학실력과 세련된 메너로 그들에게 스며들어 역사적 인물과 사건의 배후를 자연스럽게 포착했다. 소리 소문 없이 나타나 조용히 찍고 사라지는 잘로먼은 이런 측면에 있어서도 선구적이었다. 목적을 위해 변신할 수 있는 유연함이야말로 바탕경영의 중요한 덕목이다. 까만 고양이면 어떻고 하얀 고양이면 어떤가. 우리는 지금 쥐를 잡아야 한다.

‘경쟁이 없는 곳으로 가라’
잘로먼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소형카메라의 출현 덕분이다. 초창기 카메라는 아무나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커다란 마차에 싣고 다니면서 몇 시간씩 노광을 주어야 한 장의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부자들이나 특별히 훈련된 사람들의 전유물이었던 셈이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카메라도 점점 소형화 되어갔다. 최초의 소형카메라는 1925년에 독일에서 만든 Ermanox F2라는 카메라로 알려져 있다. 이 카메라가 놀라운 것은 1/1000초까지 셔터스피드를 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 삼각대나 플레쉬 없이도 실내촬영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 카메라 는 말하자면 잘로먼을 위한 것이었다. 포토저널리즘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잘로먼과 소형카메라 덕분에 자연스럼움, 솔직함을 표방하는 캔디드 미학이 등장했다. 잘로먼은 기술의 발달을 활용해서 경쟁이 없는 길을 갔다. 잘로먼이 사진가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열정을 세상의 요구에 부합시켰기 때문이다.

살면서 나는 거절의 공포에 두려워했다. 벽이 아닌 것이 없었다. 회사 일도 그랬고 강단에서나 산업현장에서도 그랬다. 밥이 되는 일에는 예외 없이 벽을 만났고 그것은 언제나 공포였다. 상황을 주도할 수 없었다. 밥 때문에 당하는 선택은 숙명적 슬픔이다. 내상없이 버녀낸 적도 있지만 대부분은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어쩔줄 몰랐다. 이럴 때면 나는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간다. “이거 왜 찍어?” “몰카 찍는거 아니야?” 다시 거절 앞에 직면하지만 더 이상 공포스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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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잘로먼 Erich Salomon 1886년 4월 28일, 독일 – 1944년 7월 7일
포토저널리즘 최초 확립, 사진가, 법학박사, 변호사, 나치에 의해 아우슈비츠에서 가족과 함께 죽었다.

링크: 잘로먼의 사진들

400px-Erich_Salo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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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

  1. 피곤하고 잠이와서 침대를 벗어나기 싫은 주말 아침에도 사진 찍으러 몸을 일으키는 저를 보면
    내가 카메라를 들고나가는건지 카메라가 나를 데리고 나가는건지 헷갈릴때가 있습니다.
    힘들어도 그렇게 끌려나가 셔터 몇번 누르면 어김없이 ‘그래 역시 잘 나왔어’ 하게 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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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호랑이를 잡기 위해서는 호랑이 굴로~ ㄷㄷ 아~ 아닙니다.

    내몸을 던지는 곳~ 받아주는 곳~ 이런 일련의 느낌적 느낌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잘읽었습니다.

    Liked by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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