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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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아름답게 머물다 가려면 끊임없이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잠시 넋놓고 있는 사이 나는 나를 도둑 맞고 말았다.]

잘로먼의 죽음(참고글 링크)에 대해서 생각했다. 시대를 앞선 통찰과 열정으로 사진의 역사를 새로 썼지만 자신과 가족의 비극을 막지 못했다. 나치의 박해를 피해 네덜란드로 피신했지만 그 곳의 국가사회주의자들에게 발각되어 아우슈비츠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가족과 함께 한줌의 재가 되었다.

아우슈비츠는 나치 최대 규모의 강제수용소가 있던 곳이다. 이곳에서 산업적 수단을 이용한 대량학살이 체계적으로 자행 되었다. 가스, 노역, 총살, 고문, 질병, 굶주림, 인체실험 등으로 학살당한 사람이 4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대다수는 유대인이었다.

이 생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잘로먼의 죽음에 기대어 살아 돌아온 사람의 이야기를 하려한다. 빅터 프랭클(Viktor Emile Frankl, 1905, 3~1997, 9)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빈 대학에서 철학,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신경정신과 교수를 지냈다. 그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에 이은 정신요법 제3학파라 불리는 로고테라피 학파를 창시했다. ‘로고테라피’는 강제수용소 경험을 바탕으로 창안하게 된 것이다. 조각난 삶의 가느다란 실오라기를 엮어 확고한 형태를 갖춘 하나의 의미와 책임을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바로 프랭클 박사가 독창적으로 고안해낸 ‘실존분석’ 즉 ‘로고테라피’의 목표이자 과제이다.

그의 삶에서 가장 극적인…참혹했으나 가장 큰 영향을 미친…시간은 강제수용소에서의 3년일 것이다. 유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강제수용소에 보내져서 3년 동안 다카우와 아우슈비츠에서 보냈다. 강제수용소에 생활하면서 그는 벌거벗은 실존과 만나게 된다. 가족의 생명과 함께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약탈당하고 추위, 폭력, 잔혹, 멸시, 절망, 공허 그리고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에 시달려야했다. 이런 참혹의 시간 안에서도 그는 삶의 가치를 찾고 그것이 부여한 책임을 다하려 했다. 그는 ‘생명 외에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 삶이 어떻게 부서지며 또 어떻게 살아나는지 생생하게 목도하고 경험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실존주의의 중심 주제와 만나게 된다. 즉 산다는 것은 시련을 감내하는 것이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시련 속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삶은 그럴만큼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삶의 의미를 찾아낸다면 그 사람은 어떤 모욕적인 상황에서도 지속적으로 성숙해 질 수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런 명제는 삶의 어떠한 경우에도 적용된다. 강제수용소에서의 삶은 상실이다. 평범한 삶에서 당연했던 인간의 모든 가치들이 철저히 박탈당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한가지만큼은 빼앗지 못하는 것이 있다고 그가 말한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는지 선택하는 것은 자신의 몫…자유’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꿀꿀했던 과거를 벗어던지라고 말한다. 무너진 그곳에서 다시 딛고 일어서려면 과거를 버려야 한다고 말하지만 원하기만 한다면 그 시간은 의미와 가치로 축적되고 숙성된다. 과거는  지나온 길이며 실존한 유일한 것이다. 과거를 벗어 버려야 한다는 전제는 시간을 급하게 한다. 긴장하고 당황하면 시야는 좁아지고 생각은 멈춰버린다. 동동 발을 구르지만 버벅 대기만 할 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다. 일 마다 꼬이고 소통까지 어려워진다.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붙은 발은 옴짝달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무기력은 충격과 공포 다음 단계에서 나타나는 절망의 과정이다.

빅터 프랭클과의 만남은 그 때 준비 없이 맞은 변화에 갈팡질팡하던 내게 냉정을 주었다. 닫혀 있던 ‘삶’의 성장판을 열어 깨워 주었다. 나는 더 이상 널부러져 있지 않기로 했다. 모든 오늘은 과거로 옮겨진다. 삶은 달력을 한 장씩 찢어내는 것이 아니라 한 장씩 떼어낸 달력 뒷면을 채우고 쌓는 것이다.

…평소에 나는 유럽 학생들과 미국 학생들에게 거듭해서 이렇게 타이르곤 한다. “성공을 목표로 삼지 말라. 성공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표적으로 하면 할수록 그것으로부터 더욱 더 멀어질 뿐이다. 성공은 행복과 마찬가지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것이다. 행복은 반드시 찾아오게 되어 있으며, 성공도 마찬가지다. 그것에 무관심함으로써 저절로 찾아오도록 해야 한다. 나는 여러분이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이 원하는 대로 확실하게 행동할 것을 권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 얘기하건데 언젠가는! – 정말로 성공이 찾아온 것을 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성공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Man’s Search for Meaning 서문에서, Viktor Emile Frankl)

존엄이 철저히 유린되고 파괴된 강제수용소에서 부모, 형제, 그리고 아내까지 잃었다. 더 이상 잃을 것이라고는 ‘생명’ 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삶에 대한 의지와 책임을 버리지 않았던 그는 별이 되었다.

그는 돌아 왔고 다른 그는 돌아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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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kl

빅터 프랭클(Viktor Emile Frankl, 1905, 3~1997, 9), 이미지 출처: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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