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설모 천국, 호기심 천국


지금 사는 곳은 단지 내에 녹지가 매우 많고 또 굉장히 흔한 것이 청설모다. 과장을 보태지 않고 스무 걸음에 한 번 정도는 이곳저곳을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청설모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그렇게 매일 같이 보는 청설모가 아이들은 지겹지도 않은지 볼 때마다 말을 한다. 어린이집에 가는 길, 돌아오는 길, 동네를 산책하는 길에서 매번 터져 나오는 얘기들.

“어, 저기, 아빠! 저기 봐봐!”

“어, 저긴 세 마리다!”

“어, 땅에 묻어 놓은 걸 찾았나 보다. 뭐 먹는다.”

“어, 저기 봐! 둘이 싸운다. 먹을 것 가지고 싸우나 봐.”

아이들의 호기심은 청설모 구경에 그치지 않는다. 매일 지나는 꽃밭에서 보는 나비들.

“아빠, 나비가 입을 쭉 뻗어서 먹고 있다!”

흙을 찾아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지렁이.

“아빠, 지렁이가 흙을 찾아들어가려고 하나 봐. 바닥이 뜨거운가 봐.”

햇볕을 쬐며 앉아 있는 주황색 무당벌레 한 마리.

“무당벌레야, 여기 앉아 봐.”

도시 생활에 물든 아이들이 그나마 이 정도의 자연을 누리며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 고맙기도 하고, 늘 보는 풍경을 매일 같이 새로워하는 모습들이 귀엽기도 하다.

가끔은 청설모 먹이를 줄 겸 까지 않은 땅콩을 듬뿍 들고 잔디밭으로 산책을 가기도 하는데, 얼마 전엔 우리가 던져 주는 땅콩 때문에 점점 더 모여드는 청설모들을 보며 큰 아이가 말을 꺼냈다.

“우리가 땅콩 가지고 온 것이 소문났나 봐. 아빠, 많이 남았어?”

“음, 이제 별로 안 남았는데? 이제 그만 오라고 해야겠다.”

“어떡하지? 우리도 이제 별로 없는데. 얘들아, 이제 우리도 없어~.”

하지만 그런다고 물러설 녀석들이 아니다.

“아빠, 청설모들이 계속 땅콩을 달라고 해서 우리가 땅콩을 많이 사야 하면 어쩌지? 그럼 우리 가난 해질 텐데…”

생각보다 많이 몰려든 청설모 떼에게 땅콩 공급할 걱정에 가정 경제를 우려하기 시작한 큰 아이를 보며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작은 머리에서 뻗어 나온 상상의 나래가 드디어 엄마, 아빠를 걱정해 주기 시작한 것인가. 뭐, 단지 자기 먹을 밥 걱정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다 보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호기심과 반응에 나 역시 정신을 놓을 틈이 없다. ‘아빠, 이건 왜 그럴까?’ ‘음, 아빠도 모르겠는데. 한 번 같이 찾아보자.’ 더군다나 큰 아이는 이제 적당한 상상 답변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지라 나까지 더 공부를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때로는 조금 귀찮기도 하지만 그래도 궁금한 것은 알려 주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인지라 또 이리저리 뒤적이며 답을 찾아 주기도 하고, 같이 생각해 보기도 한다.

‘아이들과 있는 하루하루가 그저 축복이지요’라고 득도자 같은 말은 못 하겠지만, 그래도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이럴 수 있을까 싶어 이 시간이 소중하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은 이 시간을 훌쩍 지나서 커갈 테니까. 지금이 아니면 아빠에게 매달리며 이것저것 묻고 귀찮게 하는 것도 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 조금은 피곤하더라도 한 번 더 기운을 내어 아이들의 질문에 답하려 한다.

DSCF0215

무당벌레야, 여기 앉아 봐. / On the way to the Met Cloister. NYC. / Oct. 2017. / X-Pro 2 + CS 21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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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

  1. 부럽습니다. 뉴욕라이프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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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좋은 기록들이에요.
    시간이 묵을수록 깊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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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아, 따듯해. 가슴이 말랑말랑해져요. 그치ㅜㅠㅠ 땅콩 많이 사려고 아빠가 출근(?)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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