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더 당기면 한 컷 더 찍을 수 있을 것 같은데..


IMG_6940

36컷이나 24컷짜리 필름을 사용해보시면 실제로는 몇 컷이 더 찍힙니다. 36컷이라고 표기된 필름은 ‘최소 36컷 촬영을 보장’의 의미이고 필름을 카메라에 로딩하기 위해 당겨져 밖으로 나오는 부분, 현상할 때 필름의 맨 끝부분에서 당겨져 잘려나가는 부분 등이 있어서 서너 컷 정도 길이 이상의 여유분 길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카운터가 36을 넘어도 한두 컷이 더 찍히기도 하고 어떤 수동카메라에서는 잘 로딩하고 찍고 그러면 40컷이 나오기도 합니다. 자동카메라인 경우도 한두 컷 더 찍히다가 드디어(!) 다 찍었다고 되감기곤 합니다.

그러다 아무튼 36, 혹은 한두 컷을 더 넘어서 37이나 38 정도가 되면 와인더를 당겨도 더 당겨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절반 정도 당겼는데 더는 안 당겨지고 셔터는 아직 장전되지 않았고…

“조금만 더 당기면 한 컷 더 찍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많은 분들 공감하시죠?
실제로 힘을 주어 조금 더 당기면 어떻게 될까요?

[1번 상황]
힘을 주어 조금 더 당기니까, ‘우드득’하면서 와인더가 조금 더 돌아갑니다. 아 뭔가 조금 불안하죠. 셔터는 장전이 됩니다. 그래서 일단 한 컷 더 찍습니다. 다시 와인더를 돌려봅니다. 다시 뭔가 드득 하는 소리가 납니다. 낌새가 좀 이상합니다. 그래서 그냥 되감기로 합니다.

[2번 상황]
힘을 주어 조금 더 당기려는데… 툭 하고 풀립니다. 셔터는 장전이 되었는데.. 일단 찍을 수도 없고 느낌이 싸아 합니다. 셔터를 릴리즈하고 다시 당겼더니 헛돕니다. 아. 끊어진 겁니다. 망했습니다. ㅠㅠ

[3번 상황]
조금 당기는데 힘이 좀 더 들어가긴 하지만 돌아가는 느낌은 없어도 와인더는 당겨지고 셔터는 장전이 됩니다. 일단 한 컷 더 찍기는 했습니다. 다시 더 돌리려고 하는데 처음부터 안 당겨지기에 필름을 되감습니다.

와인더를 당겨 한 컷씩 장전하는 수동카메라가 아니고 모터와인더나 아니면 배터리를 넣고 쓰는 자동카메라라면 위의 상황들이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다 찍으면 자동으로 되감기거나 아니면 일부 기종에 따라서는 처음에 필름을 끼우면 다 반대쪽으로 감겼다가 찍히면서 한 컷씩 필름 파트로네 안으로 감겨 들어가기때문에, 다 찍으면 그냥 뚜껑을 열어 꺼내면 됩니다.

각 상황들이 실제로는 어떻게 된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번상황]은 필름은 끊어지지 않았는데, 퍼포레이션(필름 양 옆의 구멍들)이 찢어지는 경우입니다.

IMG_6914

많은 카메라들은 와인더로 감을 때 필름을 정확한 간격으로 이송하기 위해서 톱니바퀴에 걸린 구멍의 갯수를 이용합니다. 필름이 실제로 감기는 부분의 회전수를 이용하려면 필름이 감길 때마다 굵기가 굵어지기 때문에 정확히 제어하기가 어렵거든요. 그래서 와인더를 돌리면 정확히 몇 구멍만큼 감겨 이송되고 뒤쪽 스풀에 필름이 감겨들어갑니다. 이 때 무리하게 감으면 톱니바퀴에 물린 필름 퍼포레이션 부분이 찢어지고 실제로 필름은 진행되지 못합니다. 사진을 찍으면, 제대로 필름이 다음 컷으로 이송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마지막 찍었던 컷과 겹쳐버립니다.

20160927_182136이렇게 살짝 찢어지기도 하고

20160712_194151이렇게 한쪽 톱니만 사용하는 카메라일 수도 있고

20170801_125804이렇게 과격하게 찢어지기도 합니다.

위의 세 경우 모두 필름이 제대로 이송되지 못하고 마지막 컷 부분에 겹쳐 촬영된 게 보입니다. 심지어 위의 두 컷은 와인더가 힘없이 헛도는데도 여러 컷을 더 촬영하셔서 새카맣게 다중노출이 됐습니다.  겹친 부분의 사진들은 다 못 쓰게 되었구요.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나는지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현상소에서는 대개 저렇게 망쳐진 마지막 컷 부분을 잘라내거나 하면서 작업하게 됩니다.

위의 좀 과격하게 찢어진 필름 같은 경우 좀 더 심하면 아래처럼 되기도 합니다. 일단 필름이 되감겨 들어가기는 했는데, 현상하기 위해서 다시 꺼내지면서 필름 입구에 걸려 찢어지는 겁니다.

20171030_160757

이렇게 되면 필름이 망가져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1번 상황은 그래도 운이 좋은 편입니다. 그냥 마지막 컷과 겹쳐진 컷들만 버리게 되고 그 이전까지의 사진들은 아무 문제가 없거든요.

[2번 상황]은 필름이 끊어진 경우입니다. 실제로 카메라 안에서 필름이 끊어져 현상소나 사진관에 카메라째로 가져가야 하는 사건의 원인들 중 99%는 이렇게 무리해서 한 컷 더 찍으려고 강제로 와인더를 당기기 때문입니다.

필름은 뭔가의 물리적인 강제력이 없으면 끊어지지 않습니다. 코닥 필름들은 파트로네 맨 안쪽에서 가운데 기둥에 스티커로 붙어 있고 후지 계열의 필름들은 필름에 구멍을 내어 물려 있습니다. 경험상 그 부분에서 후지보다는 코닥 필름들이 훨씬 더 잘 찢어집니다. 톱니바퀴가 퍼포레이션을 걸고 당기는 힘보다 스풀이 필름을 당기는 힘이 더 세면 끊어지게 되는 거죠. 카메라에 따라 확률이 다르기는 합니다만 퍼포레이션이 찢어지기도, 필름이 끊어지기도 합니다. 필름이 끊어졌다면…

필름이 끊어지면 그 필름을 어떻게든 꺼내지 않으면 다음 필름을 로딩해서 촬영하지 못하는 게 가장 큰 어려움입니다. 밝은 곳에서 그냥 뚜껑을 열고 꺼내면 필름에 빛이 들어가 찍은 사진들을 다 못 쓰게 되기 때문에 보통은 카메라째로 현상소에 가져가 꺼내달라고들 하십니다. 그 때까지 카메라를 못 쓰게 되는 건데요.

중요한 행사라도 촬영하러 갔는데 마지막에서 한 컷 더 찍으려고 당겼다가 필름이 끊어졌다면..

해외여행이라도 갔는데 한 컷 더 찍으려고 당겼다가 끊어졌다면….

그래서 암백 같은 장비 하나는 구비하시면 좋습니다. 필름을 판매하는 쇼핑몰 같은 곳에서 암백도 같이 판매하곤 하는데, 가격은 비싸지 않습니다. 필름을 구입하셨을 때 반투명 말고 완전한 검정색의 플라스틱 통을 구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암백에 카메라를 넣고 필름을 꺼낸 다음 검정 플라스틱 통에 감아넣고 뚜껑을 닫은 후 혹시라도 잘못 열릴 수 있으니 테이프로 밀봉하신 다음 ‘끊어진 필름이 들어있으니 암백에서 작업해주세요’라고 메모를 붙여 현상소에 가져가시면 안전합니다. 검은 필름통은 하나쯤은 비상용으로 준비해두시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암백이 없으시다면 이불속 같은 곳에서는 약한 빛이 있을 가능성이 있어 추천하지 않고, 화장실 같은 창문이 없는 곳에 들어가 불을 끄고 작업하시는 게 좋습니다. 화장실 안 조명이 형광등이라면 불을 꺼도 잔광이 잠시동안 남아 있으므로 재킷이나 불투명한 보자기 같은 것으로 싸거나 넣어 작업하시는 게 낫습니다. LED 조명이나 할로겐 같은 종류라면 불 끄고 바로 작업해도 됩니다. 문틈으로 빛이 새어들어올 수 있으므로 바깥의 불도 끄시는 게 안전합니다. 간혹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이는 빨간색 암등은 종이에 사진을 뽑는 ‘인화’작업용입니다. 필름을 작업할 때는 절대 암흑이어야 합니다. 빨간 등 켜시면 필름에 빨간 빛이 먹게 되죠.

필름이 끊어졌을 때 일부 카메라들은 필름을 꺼내기도 참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라이카 카메라를 쓰시는 분들은 마지막 컷 이후에 무리해서 더 당기지 마세요. 꽃잎처럼 펼쳐진 스풀에 단단히 감긴 필름을 꺼내는 건 매우매우매우 어렵습니다.

[3번 상황]은 그나마 가장 나은 경우입니다. 일정 세기 이상으로 돌리면 와인더와 스풀, 톱니바퀴가 헛돌게 설계되어 있는 몇몇 드문 카메라의 경우죠. 물론 그렇다고 해도 실제로 필름이 이송되지는 않았기때문에 마지막 컷들은 겹치게 됩니다. 더 찍으시면 계속 겹쳐 위의 사진들처럼 새카맣게 다중촬영이 되고 맙니다.

1번이든 2번이든 3번이든, 마지막 부분에서 욕심을 내어 한 컷 더 찍으려고 무리해서 당기면 어쨌든 불상사가 발생하게 됩니다.

‘조금만 더 당기면 한 컷 더 찍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싶지만, 그냥 거기에서 되감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참, 되감을 때는 카메라 바닥의 버튼을 누르고 감는 거 잊지 않으셨지요? 그거 안 누르고 힘으로 막 되감는 분들도 아주 간혹 계시긴 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됩니다.

20170706_160755_HDR

어찌어찌 현상까지는 됐지만 아마 어떤 업소에서도 스캔하기 어렵다고 할지 모릅니다. 스캐너가 저 찢어진 부분을 물고 들어가야 하는데 말입니다. ㅠㅠ 요즘은 스캔하지 못하면 종이사진으로 인화도 못하지요. 자가로 스캔하시는 분들도 이런 필름은 어떻게 할 수 있을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카메라와 필름, 무리해서 힘으로 다루지 않으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포스팅을 마칩니다.

카테고리:Review태그:,

1개의 댓글

  1. 이런 주옥같은 리뷰를 비급 매거진에서 볼 수 있게 된 점 영광입니다.^^
    입성 축하드리옵고
    입성 고맙습니다.

    매주 하나 이상씩…업무에 참조 바랍니다.^^
    ㅋㅋㅋ

    Liked by 1명

  2. 첫 포스팅 축하합니다.
    역시나 오랜 경험과 노하우에서 나오는 리뷰네요.

    좋아요

  3. 인생은~ 헝그리정신과 수습가능한 상황과의 줄다리기 같기만~ ㄷㄷ 아~ 아닙니다.

    근데, 은근히 이루님의 첫글부터 느낌이 좋다는 거 말입니다.

    좋아요

  4. 드디어 오셨군요. 역시 이루님 짱입니다.
    앞으로 좋은 글과 사진들 많이 부탁드립니다.

    좋아요

  5. 이런 깨알 포스팅 너무 좋아요. 앞으로 계속 연재해주실거죠? ㄷㄷ

    좋아요

  6. 저에게는 금과옥조 같은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좋아요

  7. 마카오 여행 마지막날 말아쓰는 필름을 다 찍고 숙소로 돌아가는데 딱 한컷 더 찍고 싶은 장면이 딱 눈 앞에 있었습니다. 아 저거 찍어야되는데 하면서 반바퀴밖에 안도는 레버를 강제로 당겼더니 툭!하며 로딩.. 싸~한 기분이 들었지만 일단 한컷을 찍고는 돌아오는내내 여러가능성에 대해 혼자 추측하고 대비책을 생각해봤습니다. 최악의 경우는 아무래도 마끼 안쪽 스카치테잎이 끊어져 되감기 자체가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럴경우 암백에서 카메라를 열어야겠다는 대책까지 세워두었습니다만, 다행히 1번 케이스였습니다. 바로 앞 사진과 살짝 겹쳐 찍힌 것이죠. 식은땀나게 한번 식겁하고나니 ‘당기면 안되요’라는 단어를 새기게 되었습니다. 미리 이루님 포스팅을 보았더라면 식은땀 흘릴일도 없었을텐데 말이죠.

    좋아요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