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 마드리드


바로셀로나에서 시작한 여정은 장장 2,000여 킬로미터를 달려 마드리드에서 마치는 일정으로 짜여졌다. 이곳에서 무려 3일 밤(8/14~16)을 머물렀지만 느낄 수 있게 허락된 시간은 넉넉하지 않았다. 도착하던 날 밤은 수업이 있었고, 이튿 날은 뻗었고, 다음 날은 전체 모임 일정이 있었다. 여행 막바지에 이르러 아쉬움은 커져만 가고 누적된 피로탓에 짜증스러웠다. 결국 마지막 일정(아빌라, 세고비아)은 소화하지 못하고 호텔 신세를 져야만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 전 부터 벼르던 마드리드의 밤은 허락되지 않았다. 떠나기 전 메모를 보니 아쉬움은 커져만 간다.

‘ 여행 일정표를 보니 우리가 마드리드에 머물게 되는 날이 제법 된다. 8월 14일에서 16일까지 3일을 마드리드에서 자게 되며 8월 15일 오후부터 자유일정이다. 막바지 여흥을 즐기며 많이 아쉬워 하게 될 것 같다. 더불어 그 아쉬움이 우리들을 더욱 여행에 몰입하게 하지 않을런지…하여 마드리드의 밤은 우리들에게 의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밤은 또 역사의 자궁이지 않은가! 육감적인 밤일래나? 따뜻하고 포근한 밤일래나? 아니면 두가지 다! 뭐든 좋을 것이다. 여행 막바지에 우리는 좀 더 친해져 있을 것이고 서로에게 많이 젖어 있을 것이다._2014. 7. 11 여행 떠나기 전 메모’

#1 마드리드 왕궁(Palacio Real de Madrid) 인근_8/15일 

똘레도 일정이 오후로 바뀌면서 첫 일정으로 찾은 곳이다. 막 도착했을 무렵엔 아직 이른 탓이었는지 한적하고 편안했다. 잠시 머물러 몇 컷 사진을 찍었다. 마드리드 왕궁은 스페인 왕실의 공식 관저이나 왕과 가족들이 머물지는 않는다. 국가의 공식적인 행사에 사용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한다. 이 궁전은 서부 유럽을 통틀어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2,800여 개의 방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아직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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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프라도 미술관(Museo del Prado)_8/15일 

마드리드 왕궁에서 잠시 머물다 프라도 미술관으로 왔다. 새똥 뒤집어 쓴 고야의 동상 아래 서니 두근거린다. 프라도 미술관은 스페인 왕가의 수집, 소장품을 한곳에서 보관하여 관리할 목적으로 1819년 페르난도 7세 때 건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미술관은 특히 다른 유수의 미술관들과는 달리 약탈에 의한 예술품이 없다고 한다. 스페인 역사를 투영해 볼 때 믿기 어려운 주장이라 주목된다. 유럽 여러 나라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나 그 중에서도 스페인 3대 거장이라고 하는 엘 그레코, 디에고 벨라스케스, 고야 등의 작품들이 질과 양적인 측면에서 압도한다. 가이드의 설명을 따라가 보지만 애시당초 그림에 관한 식견이 없는 터라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다만 신화에 대한 공부에 진전이 있던 터라 고전회화를 읽는데 도움되었다. 화보집에서나 보던 벨라스케스, 고야의 작품을 친견한다는 것에 대한 만족이 컸다. 구성, 빛 처리 등 사진적 영감을 얻을 뻔(?) 했던 귀한 시간이었다.

가이드에게 물었다.
“오후 스케줄 빼고 개인적으로 미술관에 있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짧은 일정에 조금 무리가 있겠지만 똘레도 가세요~~거기 더 좋아요~~”
도록과 수첩 몇 개를 담아 계산하고 일행을 쫒아 나섰다. 아쉬움이 켜켜히 쌓인다.

입장료 15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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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솔 광장(Puerta del Sol)을 위시한 거리 풍경._8/15일 

미술관을 뒤로하고 밥먹으러 간다. 도중에 짬을 내어 걷고 그늘에 앉을 수 있었다. 역시 도시는 밤이다. 한 낮의 태양은 광장과 거리의 맛을 느끼기에 적당치 않다. 어울리는 궁합이 아니다. 바람도 사람도 이글거리는 거리를 잠시 걸었다. ‘태양의 문’이라는 솔 광장은 마드리드 배꼽이다. 마드리드 여행은 이곳에서 시작된다. 사방팔방으로 연결되며 수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곳으로 2011년 금융위기 때 시민 집회가 열린 곳이며 새해맞이 카운트 다운을 외치는 장소가 바로 솔 광장이다. 카를로스 3세의 동상이 가운데 자리하고 있으며 곰 동상과 시계탑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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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마요르 광장(Plaza Mayor) 그리고_8/16일

다음 날 아침 결국 일어나지 못했다. 몰아 부치는 일정이 호흡에 맞지 않았다. 늦은 아침까지 침대에서 몸을 빼지 못했다. 점심 때가 되어서야 겨우 일어나 호텔 인근 대형 쇼핑몰로 나섰다. 간단한 쇼핑과 함께 끼니도 해결할 요량이다. 상당한 규모의 건물에 빼곡히 매장이 늘어섰다. 와인 말고는 공산품 가격이 비교적 높은 편이다. 아이 신발과 옷가지를 챙기고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웠다. 긴 시간을 이곳에서 어슬렁 거렸다.

어정쩡한 시간에 쇼핑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다. 세고비아로 떠난 일행들이 마드리드로 돌아올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 마요르 광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호텔에서 약 20여분, 택시비 약 20유로 거리다. 호텔 프론터에서 시내지도를 하나 받아 들고 나섰다. 마드리드의 주요 갈 곳들은 솔 광장을 중심으로 걸어서 간단하게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있다. 마요르 광장은 마드리드의 정치, 종교, 문화를 간직한 마드리드의 살아있는 심장이라고 할 수 있다. 가로 122미터, 세로 94미터의 광장으로 4층으로 이루어진 건물들이 사방으로 둘러 싸고 있다. 가운데 펠리페 3세의 청동 기마상이 자리하고 있으며, 투우, 종교재판, 공연, 축제가 쉬지 않고 벌어졌던 정치와 축제의 공간으로 산 미겔 시장과 선술집이 밀집한 Meson거리가 담을 함께 하고 있다.

멀리서 손을 흔들며 일단의 무리가 나타났다. 함께 저녁을 즐기려던 계획은 여행 정리 모임이 예정되어 있다는 말에 물거품이 되었지만 잠시 마요르에서 느꼈던 해방감은 강하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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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는?

스페인 중심부에 위치한 수도 마드리드는 해발고도 635미터의 메세타 고원에 위치한 분지형 도시로 스페인을 점령한 무어인들이 기독교인들을 물리치기 위해 이베리아 반도의 심장부에 자신들의 전략적인 요충지로 건설했다. 코르도바 왕국의 무하메트 1세가 854년 건설한 도시가 오늘날 매혹적인 마드리드의 시작이다. 해발고도 635미터로 유럽의 수도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연강수량 419mm로 건조하다.

중세

현재의 마드리드가 선사시대 이래 줄곧 사람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보임. 로마 시대 때 이 지역은 그리스도교의 관구에 속함. 9세기 이르러서야 마드리드는 역사에 처음으로 등장, 무함마드 1세가 지금의 마드리드 왕궁인 작은 궁전을 짓도록 명령. 궁전 주위에 작은 성곽인 알무다이나(스페인어 : al-Munaina)가 지어짐. 이 요새는 1085년 카스티야 왕국의 알폰소 6세에 의해 점령되었으며 교회와 모스크를 세우면서 이 지역 일대를 신격화. 1329년 스페인에 처음으로 의회 제도가 도입됨.(스페인 의회: the Cortes Generales ) 세파르딤(영어 : Sephardi 한글 : 스페인 및 포르투갈 계의 유태인) 계열의 유태인과 무어인(영어: the Moors 아랍계 이슬람)은 15세기 말엽 추방될 때까지 마드리드에 상주했다.

르네상스

톨레도를 수도로 했던 카스티야 왕국과 사라고사를 수도로 한 아라곤 왕국은 가톨릭 왕국으로 통합하여 근대 스페인 건설.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와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 두 사람의 손자였던 카를로스 1세가 마드리드를 좋아했지만 톨레도에서 마드리드로의 천도가 이루어진 것은 1561년이었으며 카를로스의 아들이었던 펠리페 2세 대에 이루어졌다. 황금의 세기, 즉 16-17세기 동안 마드리드는 여타 유럽 수도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으며 거의 궁정의 사업에 경제를 의지했기 때문에 특별한 역사적 활동을 하지는 않았다.

19세기~현대

19세기 후반이 되자 이사벨 2세는 더 이상 정치적 긴장 상태를 통제할 수 없게 되고 계속된 반란과 폭동에 스페인 전역이 휩싸이며 최초의 스페인 공화국이 탄생한다. 처음의 공화국은 다시 군주제로 바뀌었으며 이후에 다시 스페인 공화국이 들어선다. 그러나 곧 스페인 내전으로 번지게 된다. 마드리드는 내란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겪은 곳이었으며 시의 거리들 곳곳이 전쟁터가 되었다. 마드리드가 공화파의 근거지가 되면서 서쪽의 교외만이 전쟁터로 직접적인 피해를 보게 된다. 스페인 내란 동안에 마드리드는 비행기로 폭탄 세례를 당한 최초의 도시가 되었으며 다수의 시민들이 피해를 입었다. 프라시스코 프랑코의 독재기간 특별히 1960년대에는 마드리드 남부 지역이 급격하게 산업화에 돌입하게 되어 다수의 농민들이 도시로 이동하게 된다. 마드리드의 남동쪽이 노동자 계층의 거주지가 되었고 또한 정치적, 문화적 개혁의 장소가 되었다. 독재자 프랑코가 죽자 민주주의 세력은 프랑코의 바람에 따라 후안 카롤로스 1세가 통치권을 계승하도록 한다. 이후 스페인은 헌법상 입헌군주제를 택한 곳이 되었으며 마드리드를 수도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레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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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

  1. 스탈님께서 호루뚜깔 여행 마치시고~ 국경 갈아타셔서~ 습훼인 여행기를 쓰시나? 이랬는데~
    글을 읽다가 보니~ 왠지 스탈님 스탈(?응)과 다른 느낌적 느낌~
    다시 앞으로 가서 봤더니~ 피울님이셨습니다. ㄷㄷ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읽었습죠. 네~ 그랬었습니다.

    맏으리드를 레알로 머리 속에 담아 봤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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