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의 약속 –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얼마 전까지 우리 집 아이들에게 내가 붙여 준 별명은 5분 남매였다. 1시간 중 5분은 사이좋게 지내는 남매… 어린아이들이 서로 싸우고, 떼를 쓰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지만 6살, 4살 남매인 이 두 녀석은 서로 소리치며 싸우는 일이 제법 잦았다. 특히 큰 아이의 경우엔 그 정도가 점점 심해져서 나와 짝꿍이 걱정이 많았었다.

무엇보다 나빴던 것은 동생과 싸우고 화가 났을 때 너무 쉽게 손이 나가는 큰 아이의 습관이었다. 어린이집 생활이나 밖에서의 행동은 그렇지 않았는데 집에서는, 특히 어린 동생에게는, 어쩌면 ‘분노 조절 장애’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순간적으로 흥분하며 크게 화를 내는 일이 많았다. 그러한 행동이 심해지면서 아주 조금만 다투거나 화가 나도 바로 동생을 때리는 일 또한 빈번해졌다.

때로는 달래 보기도 하고, 때로는 눈물 쏙 뺄 정도로 혼내 보기도 하고, 여러 가지 말로 타일러 보기도 하고 갖은 방법을 동원해 보았지만 큰 아이가 동생에게 무섭게 화를 내며 때리는 일은 그 빈도도, 정도도 점점 더 심해져만 갔다. 그러다 보니 나 또한 큰 아이를 심하게 혼내는 일이 많아졌다. 서로 잘 놀다가 아주 작은 다툼으로도 동생에게 무섭게 큰 소리를 지르거나 때리는 오빠. 그러면 또 그런 오빠를 무섭게 혼내는 아빠. 반복되는 강 대 강의 충돌이었다.

지난 10월의 마지막 즈음, 아마도 그간 중 제일 무섭게 큰 아이를 혼냈던 날이었다. 동생과 싸우며 제 분을 참지 못하고 동생에게도, 아빠에게도 못된 주먹을 날린 큰 아이를 혼내어 펑펑 울렸던 날. 이러한 상황은 나에게도, 큰 아이에게도 잘못이 있겠지만 그래도 ‘내가 먼저 변해야 아이도 변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결심한 것이 큰 아이를 절대로 무섭게 혼내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가끔씩 생각하고 실천하다가도 쉽게 어기곤 했던 결심을 다시 한번 독하게 마음먹었다. 아이가 잘못한 것은 지적하고 이야기하겠지만, 절대로 큰 소리를 내지 않고 또 무섭게 얘기하지 않기. 우선 한 달 만, 한 달 만이라도 나부터 먼저 실천해 보자고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밥을 먹고 있는 큰 아이에게 얘기를 꺼냈다.

“주안아, 아빠가 앞으로 삼십 밤 동안 주안이가 잘못하고 동생 때려도 절대 큰 소리로 혼내지 않을게.”

아이는 살짝 이해가 안 가는 표정이었다.

“그럼 내가 잘못해도 혼내지 않는다고?”

“아니, 아니, 그건 아니고. 주안이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하지 마’라고 얘기할 거야. 큰 목소리 말고 그냥 작은 목소리로.”

“그래도 내가 말을 안 들으면?”

“그래도 그냥 ‘하지 마’라고만 얘기할게. 주안이 무섭게 혼내지 않을 거야.”

무언가 잘 이해되진 않아도 아빠가 자기를 혼내지 않겠다는 것이 싫지는 않은 눈치였다.

하루, 이틀, 사흘. 약속을 실천한 후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큰 아이가 갑자기 화를 내거나 동생을 때리는 일이 아주 조금은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아빠가 큰 소리를 내지 않으니 아이를 타이르는 방법에 더 요령도 생겼다. 제 풀에 화를 내고 소리 지르는 아이에게 무섭지 않게, 나긋한 목소리로 말하면서도 잘못했다고는 확실하게 얘기할 것. 물론 아이가 그걸 바로 수긍할리는 없겠지만 절대 아빠의 페이스를 아이에 맞추어 올리지 말 것. 무엇보다도 핵심은 아빠가 평정심은 잃지 않되 단호함은 유지하는 것이었다.

30일의 약속을 시작한 지 열흘째 되던 날. 부쩍 추워진 날씨에 어린이집이 끝나면 바로 집으로 돌아오는 하루 일과의 연속인 나날이어서 아이들도 알게, 모르게 답답함이 쌓여 있을 때였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날은 큰 아이가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동생과 싸우지도, 큰 소리를 지르지도, 때리지도 않았다.

그날 밤, 침대에 누운 큰 아이를 크게 칭찬하며 뽀뽀를 해 주었다.

“주안아, 오늘 동생과 안 싸워서 너무너무 잘 했어. 아빤 정말 주안이가 최고야.”

“… 나도 내가 못 할 줄 알았어.”

“아빤 주안이가 할 수 있을 줄 알았어. 너무 잘했어.”

동생에게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잘 되지 않는다고 저도 내심 걱정을 하고 있던 터인지 아빠의 칭찬에 기분이 으쓱하며 자랑스러운 모양새다.

그리고 30일의 약속을 시작한 지 이십 밤 째가 지난날. 그날도 무사히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이들이 서로 다툴뻔한 몇 번의 도화선이 있었지만 얼른 그 사이로 들어가 상황을 안정시켰다. 삼주의 시간 동안 아이들이 싸우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큰 아이가 갑자기 무섭게 화를 내고 동생을 때리는 일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단순히 큰 소리로 아이를 혼내지 않는다는 규칙 이외에 더 터득한 것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예전 같았으면 서로가 싸우는 도화선이 되었을 문제들에 대해 아빠 스스로 대응하는 방법이 달라졌다.

예를 들면 큰 아이는 어떤 이유로든 떼를 쓰는 동생에게 오히려 자기가 순간적으로 흥분하여 소리를 지르거나 때리곤 했다. 하지만 동생이 떼를 쓸 때 혼내거나 달래는 것은 아빠라는 것을 명확히 하고, 때론 떼를 쓰는 동생을 잠시 남겨 두고 큰 아이와 다른 일을 하며 갑자기 흥분할 필요가 없도록 도와주었다.

또 덕분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작은 아이를 달래는 요령도 아주 조금은 나아졌다. 예전 같았으면 더 엄격했을 아빠의 규칙을 조금은 느슨하게 바꾸어 떼를 쓸 일 자체를 줄였고, 떼를 쓰는 일이 있어도 조금 더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작은 아이의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어제, 무사히 삼십 밤이 지났다.

여전히 때때로 싸우고 토라지고 소리 지르는 오빠와 동생이지만 큰 아이의 태도가 달라진  것은 명확하다. 이젠 언제 동생을 그렇게 때렸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와 짝꿍이 걱정하던 습관은 확실히 없어졌다. 오빠가 자기에게 큰 소리를 지르고 때리는 일이 줄어드니, 작은 아이 또한 오빠에게 악을 쓰며 대들고 싸우는 일이 적어졌다. 아이들이 싸우고 큰 소리를 내는 일이 줄어 드니 아빠의 일상이 더 편안해진 것은 당연지사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전적으로 아빠가 변해서라고 할 순 없겠지만, 나의 바뀐 행동이 큰 아이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 ‘그래, 다 아빠 탓이었소’라고 자책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이번 기회를 통해 나 스스로 시시각각 변하는 아이들의 감정과 조금 더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마주할 수 있게 되었고, 아이들을 대하는 나의 행동거지에 대해 더 곱씹어 보게 되었다.

이제 이 30일의 약속은 굳이 말로 꺼내지 않더라도 다시 60일, 90일의 약속이 될 것이다. 이 결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나 먼저 더 많이 생각하고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말처럼 쉽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먼저 시작한 변화가 아이들에게도,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는지 확실히 깨달았으니 어렵더라도 조금씩 노력해 볼 것이다.

덧. 이렇게 적어 놓고 보니 우리 아이들이 엄청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핼러윈 파티 때 본 다른 집 자매가 서로 진심으로(!!) 헤드락 걸고 소리치면서 싸우던 것에 비하면 천사 같은(??) 아이들이니 오해는 마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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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

  1. 저랑 매우 비슷한 고민을 하는군요.
    저도 아이가 올해들어 조금식 과격해 지는 것을 느껴서 그때마다 그냥 넘어가주질 못하고 큰소리와 모습으로 야단을 쳤는데,
    야단치는 과정에서 제 행동 또한 좋지 못한 느낌이 많이 들어 반성하고 지금은 오로지 조용하고 침착한 톤으로 잘못에 대한 지적만 합니다.
    물론 아주 많이 반복해서 말합니다. 뭘 잘못했고 왜 그러면 안되는지, 참 답답하고 순간순간 욱하는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참 많이 힘들었지만,
    그 효과는 분명 반드시 아이에게서 나타납니다. 서서히 아주 천천히 아이가 달라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저도 서서히 아주 조금식 달라졌습니다. ㅎㅎ
    사랑과 관심과 배려는 꼭 큰 소리로 물리적 힘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전달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중요한 요소인 것 같습니다.
    우리 소중한 아이들 믿음을 가지고 이쁘고 올바르게 잘 지켜 보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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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제 자식 훈육만큼 감정조절이 어려운것도 없는듯 한데, 삼일도 아니고 삼십날이라니요. 대단하십니다.
    공감가는 글 순식간에 읽어내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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